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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예술의 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앙코르 유적지

 

13세기 이곳을 방문했던 중국인 주달관(周達觀)의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와 19세기 프랑스인 앙리 무오(Henri Mouhot)의 글과 스케치에서 묘사되었던 사원의 웅장한 모습은 그동안 지진과 자연(식물에 의해 파괴된 따프롬 사원)에 의해 상당히 손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여전히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앙코르라는 용어는 서기 9~15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거대한 호수 똔레삽(Tonlesap) 북쪽 지역에 성립했던 크메르 왕국의 일대를 일컫는다산스크리트어 나가라(성읍의 의미)’에서 파생된 앙코르는 이제는 거의 크메르 왕국의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앙코르와트라는 용어가 이 일대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사원을 뜻하는 와트에 근거하면 단지 사원 유적지에 있는 한 사원의 명칭이다

14세기 중엽 아윳타야의 세력 하에 놓이기 이전만 하더라도 앙코르는 동남아 대륙부에서 인도문화를 흡수한 강력한 왕국을 구축했다. 802년 자야바르만 2세는 힌두교적 개념을 빌려 그들만의 독특한 왕권을 상징하는 신왕(神王, Devaraja)’ 사상을 창출하여 통치의 정당성으로 내세웠다그 결과 앙코르 국왕들은 자신을 힌두신 시바와 비시누의 화신으로 여기는 새로운 왕권 개념으로 절대 권력을 누리고자 했다국왕 자신이 신을 표방하는 왕권사상은 신권적 과시에 의존해야 했는데사원을 건축하는 것이 그러한 신왕사상을 뒷받침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다그러한 개념으로 인해 앙코르 지역 일대에 힌두교와 대승불교를 표방하는 수많은 종교 사원이 건축되었고그 사원 내부는 부조조각 등으로 치장됐다사원 건축에 필요한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전쟁이 필요했고 안정된 식량 보급을 위해 대규모의 인공 저수지도 만들어졌다

대륙부에서 유일하게 사원 건축 재료로 사용된 사암이 꿀렌 산에 다량 존재했다는 사실도 앙코르 사원 건축에 한몫을 했다현재 롤루오(Roluos) 지역인 앙코르 남쪽 벽돌 사원을 제외하면 주로 사암이 건축 재료로 쓰였다앙코르 사원은 외벽 보강재로 홍토석인 라테라이트를 사용하고 사원 내부와 치장재로 사암을 활용했는데이것은 건축술이 발달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됐다게다가 사암이 지니는 가공의 유연성으로 인해 그 어디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예술적 가치를 지닌 조각 세계를 구축했다앙코르 방문의 진정한 의의는 사원의 외양뿐만 아니라 힌두신의 신화를 빌려 정교한 가공 기술로 새겨놓은 부조와 조각상을 감상하는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박장식 교수(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지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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