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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보타닉 가든"에 깃든 건국과 다민족 공존의 역사

 

 

보타닉 가든은 식민시대 문화 경관으로서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영국 런던의 큐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 Kew)에 이어 전 세계에서 식물원으로는 세 번째, 열대지역의 식물원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유산 반열에 올랐다.

 

 

 

영국의 식민 통치 시절인 19세기에 조성된 보타닉 가든은 독립기를 거쳐 오늘날 글로벌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한 싱가포르의 역사를 반영하듯 그 성격이 변해왔다. 1만 여종의 다양한 수목과 희귀한 난초류 등이 자라고 있는 보타닉 가든은 20세기 초 주요 상업 작물로 급부상한 고무 재배 연구와 확산을 주도함으로써 동남아시아 고무 시장의 붐을 몰고 왔다. 이후 독립 시기에 보타닉 가든은 국민국가 건설의 일익을 담당한다. 싱가포르를 동남아의 오아시스로 만들겠다는 리콴유 초대 총리의 ‘가든 시티(Garden City)’ 비전에 맞추어 도시 전역을 녹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목을 고르고 배양하는 중심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국화인 하이브리드 난초 ‘반다 미스 조아킴(Vanda Miss Joaquim)’ 역시 이곳에서 배양되었다. 또한 리콴유 총리는 이곳에서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싱가포르인들의 화합과 공존을 위해 다문화주의 비전을 강조하는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요가나 기공을 수련하는 노년층, 산책과 조깅을 즐기는 청년층,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과 연인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주말이면 결혼식이 열리거나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등 여가공간으로서의 중요한 역할도 담당한다. 여러 세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만큼 싱가포르 시민에게는 급변하는 싱가포르의 도시경관에서 얼마 남지 않은 기억의 장소이자 정체성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간 4백만 명이 찾는 것으로 추산되는 이곳은 다민족으로 구성된 싱가포르인은 물론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으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다양한 열대식물이 가득한 이곳 보타닉 가든에는 다양한 민족의 공존을 모색해온 싱가포르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글/ 임시연 박사(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