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기록에서 성서로: 말레이시아 꾸란을 통해 본 이슬람 제책술과 종교예술

아세안 문화유산
기록에서 성서로:
말레이시아 꾸란을 통해 본
이슬람 제책술과 종교예술
 
김미소(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꾸란(Quran)은 이슬람교를 창시한 선지자(Prophet) 무하마드(Muhammad)가 유일신 알라로부터 전해 들은 계시들을 집대성한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성서(Sacred ure)입니다. 본래 구전으로 전해지던 꾸란은 선지자 무하마드의 예언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점차 가죽이나 돌, 양피지, 야자수 잎, 대나무, 직물 등과 같은 재료에 문자로 기록되었습니다. 경전의 형식으로 제작된 꾸란은 11세기 이후 동남아시아에 이슬람교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이슬람 상인들과 선교사(Missionary)들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항구도시(port cities)를 거점으로 중계무역으로 크게 번성했던 말레이시아에는 이른 시기부터 이슬람 선교사들이 진출하여 종교의 확산과 전파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6세기에는 말레이시아의 믈라카(Melaka) 왕국을 통치하던 왕이 공식적으로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이슬람교의 정치 지배자를 의미하는 “술탄(Sultan)”이라는 칭호로 불리기도 했지요. 말레이시아에 도래한 이슬람 선교사들은 말레이시아의 왕실의 존경을 받으며 종교적 교리에 대한 교육뿐 아니라, 아라비아에서 발전한 신진 기술과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유사한 시기에 조호르(Johor)와 끌란딴(Kelantan), 뜨렝가누(Terengganu)와 같은 여러 주(州; state)에서도 실질적 권력을 가지고 있던 유력자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말레이시아의 여러 왕국들이 이슬람 율법에 따라 운영되었습니다. 이처럼 이슬람교라는 새로운 문명과 신앙의 범위가 말레이시아 전역으로 확장되는 데에는 종교예술품이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1,2] 카자르 왕조 꾸란
이슬람화된 말레이시아에서 꾸란은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경전이자, 아라비아에서 발전한 신진 기술들이 결합한 종합적인 종교예술품이었습니다. 특히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의 이슬람 문화권에서 활동한 명망 있는 서예가와 장인이 제작한 꾸란은 말레이시아에 전해져 말레이 술탄의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물이자, 왕실소장품으로서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전해진 꾸란들은 수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이슬람예술박물관(Islam Arts Museum Malaysia, 이하 IAM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9세기 이란(Iran)의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 장인들이 만든 꾸란을 보면 표지에서부터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사진 1~2). 인간과 동물의 묘사를 금지하는 하디스(Hadith)의 내용에 기초하여 카자르 왕조의 꾸란에는 생명체가 묘사되지 않고, 형형색색의 꽃들과 덩굴들을 추상적·기하학적으로 배치하였습니다. 하디스는 무하마드의 행적과 가르침을 담은 경전으로 꾸란과 함께 이슬람교의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성서입니다.
 
서아시아의 꾸란은 전형적으로 표지 중앙에 펜던트(Pendent)의 형식으로 꽃, 구름, 캘리그라피(Calligraphy) 등이 표현되며, 사방의 테두리와 화면 전반에 걸쳐 아라베스크(Arabesque)라고 하는 기하학적 문양과 꽃 덩굴 문양의 장식들이 리드미컬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이 문양 위에는 때때로 금박이나 보석을 상감(inlay)하고, 마무리 작업으로 젯소(Gesso)를 이용하여 표지를 코팅 처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꾸란이 화려한 표지를 갖춘 책의 형태로 제본(Book-binding)되기 시작한 것은 서아시아에서도 16세기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기술들이 이슬람 선교사들에 의해 차츰 동남아시아로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까지도 뜨렝가누 지역 출신자들 가운데 아름다운 아랍어 서체로 유명한 사람이 많고, 꾸란 암송 대회의 수상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뜨렝가누에 거주하는 말레이인들이 이전부터 이슬람교에 대한 독실한 신앙을 바탕으로 종교예술품 생산에 열의를 기울여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3,4] 좌. IAMM 소장_뜨렝가누 꾸란 / 우. 꾸란 제책술(상세)
앞서 소개한 쿠알라룸푸르의 이슬람 예술 박물관의 소장품 가운데 19세기 뜨렝가누에서 제작된 꾸란이 있어 주목됩니다(사진 3). 한눈에 봐도 서아시아에서 수입된 꾸란과는 다른 현지만의 독창적인 꾸란 제작 방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뜨렝가누에서 생산된 꾸란은 가죽 표지 위에 천을 덧대어 생산되었는데, 붉게 염색된 천 위에 그려진 금색의 식물 문양들이 표지의 전면을 화려하게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서아시아 등지에서 제작된 꾸란의 구성을 따르기보다, 뜨렝가누의 꾸란은 이슬람교의 교리를 벗어나지 않는 기본적인 구성을 준수하면서도, 현지의 상황에 맞게 제작되었습니다. 가령 표지에 사용된 직물은 인도산 면직물(Cotton textiles)이며, 대부분 구자라트(Gujarat)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합니다. 19세기 인도산 면직물 가운데, 구자라트 생산 면직물은 아름다운 장식 문양과 높은 품질로 인정받아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으로도 수출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수입 재료를 이용해 제작된 뜨렝가누의 꾸란은 현지의 사정에 맞추어 제작된 말레이 장인들의 독창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종이 낱장들을 하나로 합쳐 책으로 제본하는 기술, 종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표지 뒷면을 길게 엣지 처리하여 전면에서 봉투처럼 접힐 수 있도록 하는 기술(fore-edge flap) 등은 말레이시아의 무슬림 장인들이 서아시아에서 발전한 제본 기술을 숙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사진 3). 이와 같은 기술적 장치들을 통해 선지자 무하마드의 신성한 예언들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은 제책술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이슬람 교리의 확산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종합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지막으로 꾸란을 대하는 무슬림 장인들의 종교적 가치관을 이해하기 위해 이슬람예술박물관 전시실에 소개된 11세기의 기록을 갈무리하여 본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꾸란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항이) 요구된다.
(첫째) 신속한 이해, 선하고 예리한 눈, 재빠른 손, 느긋함, 바른 자세;
(둘째) 사교적이며, 선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
-『서법과 학습 도구에 대한 교본 Umdat al Kuttab wa ‘uddat dhawi al-albab』

“He who seeks (to acquire) this craft, requires;
(First) quick understanding, a good and sharp eyes, quick hands, avoidance of haste, and good sitting posture;
(Secondly) to be sociable and of good character”
-From Umdat al Kuttab wa ‘uddat dhawi al-albab(=Textbook on penmanship and tools of learning),
attributed to Ibn Badis(1016-1062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