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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얼굴, 미얀마의 마하무니(Mahamuni)

아세안 문화유산
석가모니의 얼굴,
미얀마의 마하무니(Mahamuni)
 
김미소(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미얀마 북부의 도시, 만달레이(Mandalay)에는 미얀마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생각하는 마하무니 부처를 모신 사원(Mahamuni myat temple)이 있습니다. “마하무니”는 위대한(Great)이라는 뜻을 가진 “마하”와 선인(Sage)이라는 뜻을 가진 “무니”가 결합한 단어로 큰 깨달음을 얻은 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뜻합니다. 만달레이의 마하무니상은 약 4m의 높이로 만들어진 대규모의 금동불로, 신자들이 봉헌한 진귀한 보석들과 얇은 금박(Gold leaves)이 마하무니상의 신체를 약 6인치 정도의 두께로 덮고 있습니다. 종이 두께보다 얇은 금박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마하무니의 두꺼워진 신체를 통해서 마하무니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공경과 신앙의 깊이를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미얀마인들은 이 마하무니상을 신성하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미얀마에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하무니상과 관련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AD 8세기 미얀마 라카인 주(Rakhine State)를 통치하던 아라칸 왕조의 고대 불교 경전인 에서 발견됩니다. 이 경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 500여 명의 아라한(Arhats)과 함께 아라칸의 땅에 찾아온 후 벌어진 신비한 일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석가모니가 아라칸에 성공적으로 불법을 전파한 뒤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하자, 아라칸의 왕이 그의 가르침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석가모니와 똑같이 생긴 신상을 만들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라칸의 왕과 신민들은 진귀한 보석을 시주하여 석가모니와 유사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이미지를 보고 기뻐하며, 이 이미지에 축원을 불어넣고 “찬다사라(Candasara)”라고 하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석가모니의 축원 덕분인지 마하무니상이 사원 안에 봉안된 이후에는 여러 가지 신비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가령 새들이 마하무니상의 머리 위로는 지나가지 않고 피해서 날아갔으며, 사원 주변의 나무들이 상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여러 개의 빛줄기가 상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또한 아라칸 왕조는 19세기 버마족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전쟁없이 안정된 왕권을 형성해왔기 때문에, 이것이 마하무니의 보호에 기인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와 같이 아라칸 마하무니상을 둘러싼 신화는 이후 미얀마의 여러 지역에서 생겨난 왕조에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마하무니에 대한 기록은 12세기 바간(Bagan) 왕조와 19세기 꼰바웅(Konbaung) 왕조의 연대기에도 지속적으로 언급됩니다. 바간의 왕들은 마하무니상을 모신 사원을 증축하기 위해 장인들을 보내기도 하고, 공경의 표시로 보시품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또 퓨족(Pyu), 샨족(Shan), 몬족(Mon) 등이 형성한 미얀마의 여러 왕조들은 호시탐탐 아라칸의 마하무니상을 자신의 왕도로 옮겨오기 위해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꼰바웅 왕조의 보도파야 왕이 유일하게 마하무니상을 버마족의 수도로 가지고 오는데 성공했습니다. 보도파야 왕은 대규모 영토 확장을 추진한 왕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타도 민서(Thado Minsaw) 왕자에게 아라칸 왕조를 정복하도록 하고,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되고 신성한 불상인 마하무니상을 당시 꼰바웅 왕조의 수도인 아마라뿌라(Amarapura)로 옮겨오라 명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마하무니상이 만달레이에 위치한 것은 꼰바웅 왕조의 민돈(Mindon) 왕이 수도를 천도하면서 함께 이동한 것입니다. 따라서 마하무니상의 마지막 정착지는 만달레이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미얀마인들에게 마하무니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분신이자, 인도로부터 전해진 불법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근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미얀마에는 만달레이의 마하무니상뿐 아니라, 미얀마 서부 라카인 주(Rakhine State)의 수도 시트웨(Sittwe)와, 미얀마 남부 몬 주(Mon State)의 도시 몰먀잉(Mawlamyine), 고대 퓨족의 도시 스리크셰트라(Sri-ksetra)가 위치했던 삐에(Pyay), 마지막으로 미얀마 동부의 샨 주(Shan State)의 도시 켕퉁(Kengtung)과 띠보(Hsipaw)에 만달레이의 마하무니상을 본떠 만든 마하무니의 아바타들이 각 지역의 사원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도시들은 미얀마 불교사에서도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며, 경제적으로도 크게 번성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각 지역의 마하무니상은 유력자들의 보시를 받아 오리지널 마하무니상을 모델로 해서 후대에 조성되었습니다.
마하무니상이 착의한 복식은 각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상반신을 가로지르는 X자형의 장식끈과 고깔 형태의 보관, 그리고 얼굴 양옆에서 마치 나비처럼 화려함을 더하는 장신구 등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리지널 마하무니상은 눈꺼풀을 아래로 내린 채 양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온화한 표정을 띠고 있는데요. 두꺼운 입술과, 둥글게 패인 인중, 뾰족한 코끝처리, 얼굴 윤곽을 따라 부드럽게 포물선을 그리며 처리된 눈썹 등의 표현에서 인도 굽타 시대의 마투라 불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한편 복제된 마하무니상들의 얼굴에는 오리지널 마하무니상과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가 엿보입니다. 다만, 시트웨의 마하무니상은 현지화된 얼굴 표현 덕분에, 근엄한 느낌의 오리지널 마하무니보다 친근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가 표현되어 있어 마치 살아있는 부처님과 같이 생동감 있게 조성된 것도 시트웨 마하무니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 지역의 마하무니상은 오리지널 마하무니상이 가지는 종교적 아우라와 상징성과 비해 그 역사가 길지 않지만, 미얀마인들은 각 지역에 새롭게 조성된 마하무니상을 만달레이의 마하무니상과 동일하게 석가모니의 모습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마하무니를 모신 미얀마의 모든 사원에서는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 큰 스님이 마하무니상의 얼굴을 깨끗이 물로 씻어내고, 커다란 솔로 입술 주변을 정돈한 뒤 신자들이 봉헌한 마른 수건으로 마하무니의 얼굴을 닦아내는 의식을 치릅니다. 이처럼 마하무니의 빛나는 얼굴 뒤에는 미얀마인들의 석가모니 부처에 대한 공경과 불교에 대한 깊은 신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