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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문화와 유적을 지켜온 태국 이야기

인터뷰
황금빛 문화와 유적을 지켜온 태국 이야기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이번 호에서는 한국동남아학회 및 한국태국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국회 한-아세안 포럼 자문위원 및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 한-태 소사이어티 상임대표 등으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김홍구 교수에게서 태국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태국 속 한류와 한국 속 태류(泰流)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태국은 외세의 지배를 한 번도 받은 적 없으며, 지금까지 여러 왕국을 거치면서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태국의 입헌군주는 다른 입헌군주국과는 달리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하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태국에서는 1932년 입헌혁명으로 수코타이 왕국 이래 약 700년간이나 지속되어 왔던 절대군주제가 붕괴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서구외세의 식민지배 위협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국왕과 왕실에 대한 존경심은 태국국민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태국 입헌군주제를 반석위에 올려 놓은 사람이 바로 2016년 서거한 라마 9세, 푸미폰 국왕입니다. 1946년 즉위 당시 19세였던 푸미폰 국왕은 스위스의 로잔대학(University of Lausanne)을 수료하고 1950년 귀국하여 공식 대관식을 치른 후 입헌군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공적인 입헌군주직을 수행함으로써 60번째 생일 이후인 1987년에 푸미폰 대왕(King Bhumibol Adulyadej The Great)으로 추대되어 입헌군주로서는 최초의 대왕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1988년에는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국왕이 되었습니다.
재위 70년 동안 푸미폰 국왕은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하면서 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푸미폰 국왕은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국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불법(佛法)에 따라 행동하고 통치한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심어주며 진정한 불교도 국왕의 자질을 보여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푸미폰 왕이 실행한 왕실개발계획(농촌개발계획)인데, 이는 모든 국민들에게 '우리를 잘 살게 해준 아버지 같은 왕'으로 각인시켰으며, 또한 그 공로로 유엔으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자질과 정치사회적 능력을 입증하면서 카리스마를 갖게 된 입헌군주 푸미폰 국왕과 왕실에 대해 국민들은 큰 존경심을 표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고 현재는 그의 아들인 라마 10세, 마하 와치라롱꼰 국왕이 입헌군주로서 그의 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태국은 인구의 약 95%가 불교를 믿으며, 3만 개 이상의 사원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태국은 불교의 영향이 큰 나라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태국 불교의 특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태국의 상좌부불교는 대중구제를 중시하는 대승불교와는 대조적으로 승려 자신의 해탈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상좌부불교 교리에 의하면 인간은 고통, 노여움, 병고, 죽음 등의 고뇌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윤회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 고뇌의 원인은 인간이 가진 쾌락이나 소유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집착이 있는 한 인간은 윤회계의 포로가 되고 생과 사를 반복하면서 영구히 고뇌를 계속하게 됩니다. 이 고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길은 팔정도(八正道)를 행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이며, 해탈의 권리는 승려에게만 주어집니다.
상좌부불교 교리에 따르면 초자연적인 힘이나 신에게 의존하는 일 등은 완전히 배제되며, 불교적 세계관의 이해와 그에 근거하는 실천에 의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신비적 요소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적이고 개인의 깨달음을 강조하는 점에서 개인 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실천을 가능케 하고자 태국의 승려들은 승가(僧伽)라고 부르는 조직체를 국가적 규모로 구성하고 있는데요. 태국 승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승가에 승려로서 참여하는 것은 성인남자에 한하고 있습니다. 미성년자에게는 십계를 하사하여 넨(沙弥僧)이라고 부르며 여성은 승가의 가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승가의 구성원이 된 자는 전답을 경작하는 등 일체의 세속적인 일이 금지됩니다. 따라서 승가는 그 자체로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으며 의식주 전반을 재가신도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태국의 특색이 묻어나는 문화에는 불교와 관련된 전통 의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태국의 대표적인 전통 의식을 꼽아 설명해주세요.
송끄란 축제는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계속되는 태국식 설날 축제로, 여기서 ‘송끄란’은 ‘태양자리의 이동’을 의미합니다. 송끄란은 1940년 태국에 신정이 도입되기 전까지 태국인의 유일한 설날이었습니다. 물의 축제라고도 불리는 송끄란은 상대방을 축복해 주는 의미에서 서로 물을 뿌려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또 연장자들의 손에 물을 묻히면서 축복을 빌고, 불상을 목욕시키기도 하며, 얼굴에 석회석으로 만든 흰 물질을 칠하기도 합니다. 이 흰 물질은 액운을 막아준다는 의미를 갖는데, 옛날에는 얼굴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바르기도 했습니다. 또 사원에 모래를 가져가는 의식은 행운이 몰려오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발에 모래를 묻혀서 사원을 나서는 일은 악행이라 믿기 때문에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러이 끄라통 축제는 태국식 음력 12월 보름밤에 개최됩니다. ‘끄라통’은 ‘바구니’를 뜻하며, 원래 바나나 잎사귀나 나무줄기 껍질로 만들었습니다. 옛날에는 그 안에 음식, 빈랑나무 열매, 꽃, 양초, 선향과 동전을 담았습니다. 오늘날의 끄라통은 대부분 합성물질로 만들고 채색된 종이를 바릅니다. ‘러이’라는 말은 ‘물에 띄운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러이 끄라통 축제는 끄라통에 불을 붙인 양초와 선향을 싣고 소원을 담아, 강이나 운하에 띄워 보내는 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행사의 유래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강물과 운하의 물을 사용하고, 또 더럽힌 것에 대해서 물의 여신에게 사과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 나르마다 강(Narmada River)의 모래사장에 있는 부처의 발자국을 찬미하기 위하여 꽃과 양초·선향을 바치는 것이라는 설, 강과 운하가 물로 넘쳐흐르고 달빛이 아름다운 시기를 축하하기 위해서 만든 축제라는 설 등이 있습니다. 브라만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비슈누 신을 찬미하기 위함이라는 것인데, 끄라통을 만들어서 비슈누 신이 살고 있는 ‘우유의 바다’로 띄워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태국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수많은 사원, 과거의 영광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세안문화원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가장 태국답다고 생각하시는 유적지를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방콕 왕궁 내에 자리한 왓 프라깨우는 왕실 수호 사원으로, 방콕을 대표하는 볼거리로 꼽힙니다. 태국에서 가장 영험한 불교 사원으로 여겨지고 있죠. 본당에 안치된 에메랄드 불상이 유명하여 ‘에메랄드 사원’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으로 꼽히는 에메랄드 불상은 높이 약 66cm, 폭 48.3cm 크기로, 녹색 옥으로 만들어졌으며 가부좌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1년에 세 번, 태국 국왕이 직접 불상의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을 진행할 정도로, 태국인들은 이 에메랄드 불상을 국왕의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원 앞 회랑 벽면에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태국 화풍으로 묘사한 178개의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벽화는 라마 1세 때 제작된 것으로, 지금까지 복원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왓 프라깨우 법당 주변에는 라마 1세 때 지어진 도서관 프라 몬돕, 크메르 양식으로 지어진 옥수수 모양 탑이 인상적인 쁘라쌋 프라 텝 비돈, 라마 4세 때 크메르 유적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앙코르 와트 모형 등 눈여겨볼 만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태국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주제들을 자세하고 알기 쉽게 소개한 <태국문화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이 책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일반인들이 태국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설서 수준의 단행본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1999년 <태국학 입문>을 출간하였으며, 2006년에는 그 수정·보완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권으로 이해하는 THAILAND>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2016년 <태국문화의 즐거움>을 저작할 때, 태국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의 주제들을, 최대한 자세하고 알기 쉽게 소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태국의 개황, 자연환경, 역사, 사회와 교육, 종교, 예술과 스포츠, 의복·음식·주거, 민족·언어·문학, 정치, 경제, 한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다루어 태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백과사전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태국어의 고유명사, 지명, 인명 등은 현재의 추세를 반영하여 모두 현지에서 사용되는 발음대로 한글로 표기하고, 태국어도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해외 여행지로 방콕, 파타야, 푸켓, 치앙라이, 코사무이 등 태국의 도시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또한 태국음식, 태국마사지 등 태국의 문화도 이제는 더 이상 이질적이지 않은데요. 한국과 태국이 예전에 비해 많이 가까워졌다고도 생각됩니다. 양국이 앞으로 더욱 친밀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한국 속에서의 태류 현상을 선도한 것은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 이민자들로, 태류가 출현한 시기도 대략 2000년대 초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태국 관련 대중문화, 관광, 음식, 마사지, 유학, 영화 등 다양한 현상들을 태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한류와 태류 두 가지 현상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태국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가 한국을 선택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태국인 관광객 수가 증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한류를 경험한 태국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주요한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쌍방향 문화교류에 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계기는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태류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아직까지 영향력이 크지 않은 태국 대중문화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면 태국인들의 한국 대중문화 관심도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태국 전문가로서 앞으로 교수님의 발걸음이 궁금합니다. 태국과 관련하여 계획하고 계신 일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저는 ‘한-태 소사이어티(2018년 11월 창립)’ 상임대표로서 한국과 태국간의 민간 교류, 외교·통상·정책 자문 및 개발 등 한-태 민·관·학의 협력 확대를 목적으로 두고 이사회와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태국 지역 연구와 학술 세미나, 지역전문가 지원 등을 통해 태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국내외 지역전문가들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한국과 태국이 긴밀하게 협조하고 도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