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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천년 고찰, 쭈어 못 꼿(Chùa Một Cột)

아세안 문화유산
하노이의 천년 고찰, 쭈어 못 꼿(Chùa Một Cột)
 
김미소(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사진 1> 베트남의 오래된 불교 사찰, 쭈어 못 꼿
베트남의 천년 고도 하노이(Hanoi)에 위치한 쭈어 못 꼿(Chùa Một Cột)은 베트남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불교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사진 1). 이 사찰은 11세기 베트남 리 왕조(Ly Dynasty)의 2대 왕인 리 타이 똥(李太宗, Lý Thái Tông, r. 1028-1054)이 1049년에 조성하였습니다. 쭈어 못 꼿은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리 왕조 시대에 정기적인 의례가 행해지던 중요한 왕실 사찰이었습니다. 리 왕조 이후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쭈어 못 꼿은 왕실의 후원으로 여러 차례 재건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쭈어 못 꼿은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다가, 이듬해인 1955년에 복원된 모습입니다(사진 2).
<사진 2> 1896년 쭈어 못 꼿의 모습
쭈어 못 꼿은 여러 가지 명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자를 사용하는 유교 문화권인 베트남에서 쭈어 못 꼿은 이름 그대로의 의미를 따라 숫자 하나를 뜻하는 “못(Một)”, 기둥을 뜻하는 “꼿(Cột)”, 사찰을 뜻하는 “쭈어(Chùa)”가 합쳐져 일주사(一柱寺, One Pillar Temple)라 한역됩니다. 쭈어 못 꼿의 조성 배경에 대해서는 리 타이 똥의 꿈 이야기와 관련된 신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리 타이 똥이 꿈에서 연못 위에 놓인 연화대좌에 앉아 자신을 초대하는 관음보살(Avalokiteshvara)을 보았고, 이를 불길하게 여긴 왕은 깨어나자마자 선승을 불러 꿈에서 본 광경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선승은 왕이 꿈에서 보았던 연못 위에 피어난 연꽃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사찰을 조성하였고, 이곳에서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법회를 열었다고 전해집니다. 따라서 쭈어 못 꼿은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연우사(延祐寺, Diên Hựu tự Longevity Temple)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베트남 사람들은 쭈어 못 꼿을 “연꽃 모양의 기둥”이라는 이름의 연화대(蓮花臺, Liên Hoa Đài)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쭈어 못 꼿은 방형(方形)의 연못에 원통형의 석조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목조 전각이 올려진 독특한 건축 형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둥 위에 사당을 올린 건축 형식은 동아시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베트남 리 왕조 불교건축만의 독자적인 특징입니다. 특히, 쭈어 못 꼿의 기둥이 가지는 상징성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힌두교 쉬바(Siva)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링가(Linga)가 불교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변형되어 나타난 독창적인 산물로 보거나, 불교의 정토사상에 근거하여 전각은 연꽃을 상징하고 이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연꽃의 줄기를 표현한 것으로 보는 여러 견해가 존재합니다.
<사진 3> 쭈어 못 꼿 지붕 상단의 석조 장식
기둥 위에 올려진 목조 전각은 하늘을 향해 부드럽게 뻗어 올라간 지붕의 형태가 인상적입니다. 이처럼 지붕의 끝이 마치 꽃잎처럼 부드럽게 말아 올라가도록 처리하는 형식은 하노이의 전통 건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쭈어 못 꼿 지붕 상단에는 불꽃 모양의 석조 장식을 중심으로 용 두 마리가 서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사진 3). 석조 장식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고, 중앙에 붉은 색의 원이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달”을 나타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두 마리의 용은 음(陰, yin)과 양(陽, yang)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베트남의 전통건축에는 중앙에 달과 쌍룡이 한 세트를 이루어 지붕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베트남의 오랜 신화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용의 표현은 주목할 만합니다. 용은 베트남 선사 시대의 대표 유물인 동고(銅鼓)에서부터 19세기~20세기 중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Nguyễn dynasty)대의 건축과 미술에 꾸준히 등장할 정도로 베트남 역사에서 가장 신성시했던 수호신이었습니다. 용은 강우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고대 왕조에서 상서로운 영물로 여겨졌습니다.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였던 베트남에서도 용은 신앙의 대상이자, 길조와 권위를 상징하였습니다.
 
11세기 리 왕조 대에 이르러 용의 상징적 의미는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가령 리 태조(李太祖, Lý Thái Tổ, r. 1009?-1028)가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탕롱(昇龍, Thăng Long), 즉 오늘날의 하노이를 새로운 수도로 선택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리 왕조 대 불교가 크게 발전하면서 용이 가지는 상징성은 종교와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용은 불법의 수호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관음보살을 도와 중생을 정토(淨土, Pure land)로 인도하는 역할로 등장하며 종교적 의미가 강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쭈어 못 꼿의 지붕에 표현된 용은 단순히 음양의 조화를 위한 상징이기보다는 전각 안에 모셔진 관음보살상과 함께 정토 사상을 나타내는 종교적 상징으로서 성격도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쭈어 못 꼿은 “베트남 국보 1호”로 자주 소개되고 있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베트남 정부는 차수 별 법령에 따라 국보를 분류하고 있지만, 쭈어 못 꼿은 현재까지 총 일곱 차례 제정된 국보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쭈어 못 꼿은 베트남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원으로 인식되며, 이곳에서 예불을 드리면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 기고문은 아세안문화원 뉴스레터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