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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슴한 육수부터 달곰한 갈비까지

Features 2024 SPRING

슴슴한 육수부터 달곰한 갈비까지 을지로에는 개업한 지 수십 년이 된 오래된 식당들이 많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든든한 한 끼를 책임져 온 노포는 음식 맛도 일품이어서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의 노포는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으며,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간직하고 있다. 을지로 3가에 위치한 노가리 골목은 해가 지면 노가리와 생맥주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서울시는 이 골목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 이유신(Lee Yusin, 李侑信) 서울 한가운데 자리한 을지로는 노포가 많은 대표적인 지역이다. 골목마다 인쇄소, 철공소, 목재소 등이 들어서 있는 이곳에는 낡은 간판을 내건 식당과 술집들도 즐비하다. 1960년대 말에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인 세운상가가 건립되면서 사람들로 더욱 북적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번성했던 이 일대는 점차 낙후된 지역이 되었다. 빠른 속도로 급변한 한국의 산업 구조 때문이었다. 인쇄 종이는 빠르게 컴퓨터 파일로 대체됐다. 늦은 밤까지 빛났던 공장의 불빛은 점차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수명을 다한 듯했던 거리는 2010년대 말부터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옛 모습 그대로인 골목과 공장에 예술가들은 공방이나 스튜디오를 차렸다. 예술가들이 모이자 골목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노포 앞에는 음식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생겼다. 을지로의 노포들은 오랫동안 그저 낡고 오래된 식당,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나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주로 가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 을지로가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 노포들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맛집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을지로 대림상가 옆 삼겹살 골목은 최근 젊은 층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을 정도로 인기다. 소규모 공업사들 사이사이 들어서 있는 식당들은 대부분 문을 연 지 20년이 넘은 노포들이다. ⓒ 서울관광재단(Seoul Tourism Organization) 소문난 평양냉면 가게 평양냉면은 현재 북한의 수도인 평양(平壤) 지역의 향토 음식이다. 장시간 끓인 고기 육수에 메밀국수를 말아서 먹는 음식이다. 1930년대 평양 사람들이 서울에 진출해 냉면집을 내면서 여름철 최고의 별미가 되었고, 점차 대중화되었다. 평양냉면은 밍밍한 육수에 돌돌 말아서 담은 면, 그 위에 올린 채 썬 배와 달걀 지단이 전부이다. 언뜻 보기엔 별다른 맛이 없을 것 같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담백한 맛에 끌리게 되는 음식이다. 지하철 을지로4가역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우래옥(Woo Lae Oak, 又來屋)은 미식가들이 손에 꼽는 평양냉면 가게다. 1946년 가게를 차린 장원일(張元一) 씨 부부도 평양에서 왔다. 1972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후손들이 대를 이어 지금까지 운영한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름은 서북관(西北館)이었다. 서북은 한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지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개업하고 4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주인 내외도 다른 이들처럼 가게 문을 닫고 피난을 떠나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영업을 재개하면서 현재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다시 찾아온 집’이라는 뜻이다. 우래옥은 날이 갈수록 번창해 하루에 2천 그릇을 판 적도 있다고 한다. 을지로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외지에서도 많이 찾아왔다. 지방에서 서울에 놀러 온 이들은 창경궁을 관람하고는 꼭 이곳에 들러 냉면을 먹고 갔다. 맛의 비결은 소고기를 오랜 시간 끓여 만든 육수에 있다. 면의 재료가 되는 메밀의 함량도 높다. 매우 부드러워서 입 안에 넣자마자 면이 후루룩 넘어간다. 우래옥에 평양냉면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자리가 오목하고 가운데가 불룩 솟아난 불판에 구워 먹는 불고기 맛도 일품이다. 심심한 듯하면서 달곰한 양념은 불고기의 풍미를 배가시킨다. 외국인 손님들도 이 불고기를 좋아한다. 우래옥과 더불어 을지로 지역의 소문난 평양냉면 가게로 을지면옥이 있었다. 1985년 개업한 이 가게는 같은 자리에서 약 40년 동안 냉면을 만들어 팔았다. 도심 재개발로 인해 퇴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2022년 6월 25일 마지막 영업일에는 가게 문이 열리기도 전에 100여 명의 손님들이 찾아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들은 을지면옥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평양냉면은 보통 소고기만으로 육수를 만들지만,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동치미 국물을 섞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소금, 식초, 설탕에 절인 무와 채 썬 배를 고명으로 얹는다. 사진은 우래옥의 평양냉면. ⓒ 박미향 1985년 개업한 을지면옥은 을지로의 대표적인 노포 중 하나로 평양냉면이 유명한 식당이었다. 입구부터 노포의 느낌이 물씬 흐르는 이곳은 노년층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젊은 층 사이에서도 한 번쯤 꼭 가봐야 하는 식당으로 꼽히던 곳이다.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2022년 영업을 종료했다. ⓒ 신한카드, 어반플레이(URBANPLAY) 맥주 골목의 시작 중소벤처기업부는 2018년부터 ‘백년가게’ 사업을 벌이고 있다.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 고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온 점포 가운데 역사적 가치가 있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곳을 선정하여 지원하는 정책이다. 을지OB베어(Eulji OB Bear)는 시행 첫해에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 1980년 개업한 이 가게는 생맥주를 판다. 생맥주는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게 주인은 생맥주 통을 상온에 그냥 두지 않고 온도 제어 장치가 설치된 냉장고 안에 보관하며 관리한다. 겨울에는 4℃, 여름에는 2℃를 유지한다. 이 집이 유명해진 데는 언제 가더라도 항상 신선한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안주로 내놓는 노가리구이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노가리는 명태 새끼를 말한다. 가게 주인은 잘 말린 노가리를 연탄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자신이 만든 고추장 소스와 함께 제공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가격도 매우 저렴하게 책정했다. 고소하게 구워진 노가리는 단박에 손님들을 사로잡았다. 맥주 안주로는 이만한 게 없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19.8㎡밖에 되지 않은 작은 술집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에 맥줏집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새로 생긴 가게들에서도 노가리 안주를 팔았다. 사람들은 을지로 3가에 위치한 이 골목을 ‘노가리 골목’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맥주 골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해마다 5월 맥주 축제가 벌어져 골목에 흥겨움이 넘쳐났다. 서울시는 2015년, 이 골목의 가치를 인정하여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고, 을지OB베어를 노가리 골목의 원조로 명시했다. 노포의 비애 중 하나는 건물주와의 마찰이나 도시 재개발로 인한 이전 문제다. 이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뀐 건물주와 5년간 법정 다툼 끝에 2022년 4월 강제 철거되었다. 가게를 아끼는 단골손님들과 시민단체가 철거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곳은 2023년 3월 마포구 경의선(京義線) 책거리 인근에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을지로로 다시 돌아갈 날을 꿈꾼다. 을지로3가역을 기준으로 북쪽에 노가리 골목이 있다면 남쪽으로는 골뱅이 골목이 있다. 1970년대 생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면서 몇몇 가게가 안주로 골뱅이 무침(golbaengi muchim)을 내놓은 것이 현재 골뱅이 골목의 시초로 알려졌다. 이곳의 식당들은 대부분 30년이 넘었다. ⓒ 신한카드, 어반플레이(URBANPLAY) 잘 말린 노가리는 밑반찬으로 쓰이던 식재료였으나, 1980년대부터 술안주로 팔리기 시작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1980년 개업한 생맥주 가게 을지OB베어가 저렴한 노가리 구이를 안주로 내놓은 데서 유래했다. ⓒ 한국관광공사(Korea Tourism Organization)   한결같은 맛과 정성 이 외에도 조선옥, 문화옥, 양미옥 등이 을지로를 대표하는 노포들이다. 이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은 1937년 문을 연 조선옥이다. 이 식당은 서울에서 제대로 된 갈비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소갈비를 진간장, 참기름, 마늘, 설탕 등 갖은양념에 하루 정도 재웠다가 연탄불에 구워 내는 것이 맛의 비결이다. 창업주의 아들 김정학(金貞學) 씨는 현재도 발행되고 있는 잡지 『월간 바둑』을 창간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을지로4가역 인근에 있는 문화옥은 1952년 개업한 설렁탕 가게이다. 사골과 양지로 육수를 내 국물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옥과 함께 을지로 3가에서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켰던 양미옥은 1992년 개업한 양곱창 전문점인데, 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자주 찾던 집으로 명성을 크게 얻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21년 화재로 전소되어, 현재는 남대문 분점이 그 맛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노포도 외형적 변화를 겪기 마련이지만, 한결같은 맛과 정성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서체, 을지로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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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을지로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우아한형제들(Woowa Brothers)이 운영하는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Baedal Minjok)은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한글 글꼴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그중 을지로체(Baemin Euljiro) 시리즈는 을지로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 진정성 있는 서체로 평가받으며 화제가 되었다. 배달의민족은 2012년부터 자체적으로 전용 서체를 개발하고 있다. 여덟 번째로 제작한 을지로체 출시를 기념하기 위해 2019년 10월 엔에이갤러리(N/A Gallery)에서 < 도시와 글자 > 전시를 개최했다. ⓒ 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Baemin)]은 기발한 기획력과 마케팅 감각을 지닌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진행하는 위트 넘치는 프로젝트들은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한글 서체 개발도 그중 하나이다. 배민은 2012년부터 매년 무료로 한글 서체를 배포해 소비자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왔다. 이들이 본업과는 거리가 먼 일을 십 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들이 안 하는 거잖아요.” 한명수(Han Myung-su, 韓明洙) COO의 대답이다. 그는 싱글싱글 웃으며 덧붙였다. “게다가 재미도 있고요.” 그는 그동안 가장 재미있었던 서체 개발 작업으로 2019년 출시한 을지로체를 꼽는다. 첫 작업이었던 한나체(Baemin Hanna, 2012)를 비롯해 주아체(Baemin Jua, 2014), 도현체(Baemin Dohyeon, 2015) 등 기존에 공개한 서체들은 길거리의 오래된 상점 간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을지로체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오래된 간판들이 다수 남아 있는 을지로 지역 전체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였다. 을지로체의 원형 우아한형제들의 창업자 김봉진(Kim Bong-jin, 金奉眞) 의장은 디자이너 출신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전부터 한국의 오래된 간판 글씨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길거리 간판을 찍은 수천 장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는데, 그중 특히 좋아한 것은 1960~70년대에 제작된 을지로 간판들이었다. 을지로 공구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붓글씨 간판들은 모두 당시에 ‘간판 할아버지’라 불리던 두세 명의 장인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전거에 페인트통을 싣고 다니며, 함석판이나 널빤지 위에 자기만의 고유한 필체로 글자를 적었다. 한명수 COO는 김봉진 의장의 휴대전화 속 사진 한 장이 을지로체의 원형이 되었다고 말한다. “일곱 글자가 적혀 있는 공업사 간판이었어요. 획마다 힘이 넘치는 투박한 서체 디자인이 흥미로웠죠. 미완성의 매력이 있었다고 할까요?” 얼마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아한형제들과 오랫동안 협업해 온 서체 전문 기업 산돌의 창립자 석금호(Seok Geum-ho, 石金浩) 의장의 휴대전화에도 똑같은 사진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석금호 의장도 그 간판 글씨가 마음에 들어 사진으로 찍어둔 거였어요. 당대를 대표하는 두 크리에이터들의 안목이 일치한 순간이었죠. 그래서 그 일곱 글자가 을지로체의 샘플이 되었습니다.” 을지로에는 1960~70년대 페인트로 직접 글씨를 써서 제작한 간판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배민의 을지로체 시리즈는 고유한 필체가 담겨 있는 을지로의 옛날 간판들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 우아한형제들 붓글씨의 매력 배민은 이 일곱 글자를 기준으로 서체의 토대가 되는 2백여 개의 글자를 그렸다. 그리고 산돌은 이 초벌 스케치를 바탕으로 2천여 개의 글자를 추가로 만들었다. 반세기 전에 쓰인 붓글씨 일곱 글자는 그런 과정을 거쳐 한글 서체의 최소 단위인 2,350글자를 갖춘 을지로체로 완성되었다. “산돌은 기업용 서체를 주로 만드는 기업이다 보니 세련된 서체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저희는 글자를 좀 더 ‘망가트려 달라’고 주문했죠. 예를 들어 동그라미 하나도 산돌은 정말 깔끔하게 그리거든요. 그런데 붓글씨로 쓰는 한글의 ‘이응’은 달라요. 왼쪽으로 반원 하나, 오른쪽으로 반원 하나, 이렇게 두 번에 나눠 그리다 보니 동그라미 윗부분이 불룩 튀어나오고 균형이 깨지는 부분도 생기죠. 붓글씨의 불규칙한 매력을 그대로 살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다들 이런 작업은 처음이라며 굉장히 즐거워했죠.” 한명수 COO의 회상이다. 2019년 일반에 공개된 을지로체는 붓글씨를 닮은 개성 있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TV 예능 프로그램 자막부터 시위 현장 현수막까지 다방면으로 활용되었다. “을지로체가 사용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팀원들끼리 채팅창에서 공유했어요. ‘여기 저희 서체가 쓰였어요!’, ‘여기도요!’ 하면서요. 을지로체가 대중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면서 배민의 브랜드 이미지도 점차 공고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죠.” < 도시와 글자 > 전시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전국의 간판들. 2012년 발표한 첫 번째 글꼴 한나체를 비롯해 배민이 지금까지 제작한 대부분의 서체들은 투박하지만 정감이 느껴지는 옛날 간판들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 우아한형제들   프로젝트의 확장 을지로체가 단순히 서체를 넘어 사용자들 사이에서 레트로 문화로 발전하는 동안 배민은 재개발로 옛 모습을 하나둘 잃어가는 을지로 일대의 풍경을 기록하기로 했다. 을지로의 간판들은 개인이 아닌 공공의 산물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성장과 쇠퇴, 부활을 반복하며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 온 을지로의 역사에 주목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터전인 그곳을 일회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한 데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간판의 시각적 매력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지역과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배민은 관록 있는 사진작가와 손잡고 6개월 동안 을지로를 돌아다니며, 수십 년 동안 이곳을 지켜 온 장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 지긋한 철공소 사장부터 젊은 예술가들까지 폭넓은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을지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2020년 이를 주제로 한 전시 < 어이, 주물(鑄物)씨 왜, 목형(木型)씨 > 를 개최하며 또 한 번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전시 준비의 일환으로 을지로의 오래된 간판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다음 서체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세월에 마모되어 페인트가 벗겨진 간판이 의외로 멋스럽더라고요. 그 모습 그대로 또 다른 을지로체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꽤 괜찮아서, 나중에는 아예 글자가 완전히 닳아 없어진 버전까지 출시했어요. 중간에 계속 문장을 만들고 테스트하면서 완성도를 높였죠. 어떻게 하면 글자가 더 자연스럽게 닳아 보일지 고민하면서요.” 배민이 2020년 후속으로 내놓은 을지로10년후체(Baemin Euljiro Ten Years Later)는 을지로체의 10년 후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것으로, 햇빛과 비바람에 바랜 듯한 글자가 특징이다. 그 이듬해 발표한 을지로오래오래체(Baemin Euljiro OraeOrae)는 글자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릿하다. 3년에 걸쳐 을지로체 시리즈를 선보이는 과정에서 배민은 그들만의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다. 을지로체가 배민의 사업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일상에 미친 문화적 파급력은 기업의 일반적인 브랜딩 효과를 훌쩍 뛰어넘었다. 서체 개발을 계속 이어가는 동력에 대한 한명수 COO의 답변이 흥미롭다. “말하자면 창의적 기업가의 욕망 같은 거예요. 크리에이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받기를 원하는 존재니까요.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문화가 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향유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을지로체는 오래된 간판에 대한 시각적 호기심에서 출발한 배민의 서체 프로젝트를 지역 사회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민은 그 일환으로 사진작가 MJ Kim과 협업하여 을지로 산업 장인들을 폴라로이드 필름으로 촬영했고, 2020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 어이, 주물씨 왜, 목형씨 > 전시에서 그 결과물을 선보였다. ⓒ 우아한형제들  

한국산 조명 브랜드의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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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조명 브랜드의 신호탄 2019년 론칭한 조명 브랜드 아고(AGO)는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이며, 오리지널 디자인의 개념이 희박했던 국내 조명 산업의 타성을 흔들어 깨웠다. 소상공인과 디자이너들이 협업해 얻어낸 값진 성과였다. 그 밑바탕에는 을지로의 독특한 산업 생태계가 자리한다. 을지로 대림상가 3층에 자리 잡고 있는 아고 쇼룸 전경. 아고는 을지로에서 30년 동안 조명 유통에 종사한 이우복 대표와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유화성 디자이너가 2019년 파리 메종&오브제를 통해 론칭했다. 스튜디오 플록(Studioflock) 제공,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 서울시는 2013년부터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 미래 세대에게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을지로 조명 거리도 그중 하나이다. 을지로 3가와 4가 사이에는 약 200개의 조명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데, 이 중에는 30년이 넘은 오래된 가게들도 많다. 조명은 가구, 공구, 기계, 미싱, 인쇄, 조각, 타일 등과 함께 을지로 특화 산업의 한 부분을 이룬다. 이곳의 조명 산업은 1960년대 활성화되어 1970~80년대에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 초반에는 수도권 신도시 개발 붐으로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등 건물 신축이 급증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조명 설비에 필요한 각종 제품의 수요가 늘면서 활기를 이어갔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인테리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집을 꾸미려는 사람들이 을지로 일대로 나와 조명 용품을 구매하곤 했다. 국내 조명 산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아고는 이렇게 수십 년간 축적된 을지로의 산업 생태계 속에서 탄생했다. 위기의식 조명 업체 모던 라이팅의 이우복(Woobok Lee, 李雨福) 대표는 을지로에서 30년간 조명 유통에 종사한 베테랑이다. 그리고 스톡홀름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 바이마스(ByMars)의 유화성(Mars Hwasung Yoo, 柳和成)은 대범하면서도 꼼꼼한 실행력을 갖춘 디자이너이다. 두 사람은 2017년 ‘By 을지로 프로젝트’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사실 나는 복제품이 버젓이 유통되는 을지로의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관계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었다. 그게 내가 By 을지로 프로젝트에 지원한 이유였다.” 을지로 조명 산업이 도심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유화성 디자이너의 말처럼 이곳에는 복제품 유통이라는 문제점도 내재해 있었다. 현재 을지로 조명 시장이 예전 같지 않은 데에는 인터넷을 통해 저가의 해외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미적 기준이 높아지면서 복제품을 외면하게 된 현실도 있다. 위기를 느낀 상인들은 한국조명유통협동조합을 만들고 공동 브랜드 올룩스(ALLUX)를 개발하는 등 서비스와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자체 또한 조명 거리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고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 그 출발은 서울 중구청과 서울디자인재단이 2015년부터 공동으로 개최한 < 을지로, 라이트웨이(Euljiro, Light Way) > 였다. 조명 전시와 공연, 을지로 투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해 을지로 조명 산업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행사이다. 2017년, 중구청과 서울디자인재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을지로 조명 업체들과 디자이너들이 팀을 이루어 브랜드 상품을 개발하는 By 을지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참여한 8팀 중 3팀의 제품은 이듬해 유럽 최대 규모의 인테리어 박람회 < 메종&오브제(Maison&Objet) > 에서도 전시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2018년과 2019년에도 이어져 각각 11팀, 10팀이 참가해 좋은 성과를 얻어 냈다. 이우복 대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그는 유화성 디자이너에게 을지로 조명 산업을 함께 쇄신해 보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옛 친구’라는 뜻을 담고 있는 단어 ‘아고(雅故)’에서 이름을 따온 조명 브랜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2021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Seoul Living Design Fair)에서 아고는 앨리(ALLEY), 벌룬(Balloon) 등 기존 라인들의 업그레이드 버전과 신제품을 선보이며 확고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보여 주었다. 부스는 벽돌, 목재, 금속 등 재사용이 가능한 건축 재료들로 소박하게 꾸몄다. ⓒ 아고 명료한 디자인 2019년 론칭한 아고는 국내 조명 브랜드로서는 드물게 조명 기기의 조형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했다. 과감한 형태와 색감,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아고의 디자인은 국내 조명 시장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아고는 2019년 메종&오브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2020년 스톡홀름 가구박람회(Stockholm Furniture Fair)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같은 해 서커스(Cirkus) 라인으로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 ‘Best Dinner Guests’ 부문에서 수상했다. 해외에서 먼저 디자인과 품질을 인정받은 것이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른 찹쌀떡을 닮은 전등, 우주 비행선 같은 미래적 형태, 빛의 방향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펜던트 조명 등 아고의 모든 제품들은 조명이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기능적 역할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디자인을 통해 알려줬다. 여기에는 아고의 아트디렉터를 맡은 유화성 디자이너의 공이 컸다. 그가 아고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함께 만들어 갈 협업 디자이너들을 찾는 것이었다. 스위스 디자인 스튜디오 빅게임(BIG-GAME), 스웨덴의 요나스 바겔(Jonas Wagell), 독일의 세바스티안 허크너(Sebastian Herkner) 등 여러 나라의 디자이너들이 현재 아고와 함께하고 있다. 아고는 명료한 형태를 지향한다. 이를 기본 원칙으로 삼아 디자이너들과 의견을 나누며 작업을 진행한 끝에 2년 만에 13개의 제품이 완성됐다.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종류의 디자인이 생산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을지로의 산업 시스템이 한몫했다. 을지로에서는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그것에 대해 디자이너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피드백을 반영해 다시 또 기민하게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할 수 있다. 각자 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산업 장인들이 한데 모여 있는 덕분이다. 이들은 때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디자이너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고가 글로벌 브랜드를 지향하는 만큼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을지로의 시스템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각종 소재와 기술을 사용해 여러 번 수정을 거듭해야 하는 조명 디자인의 특성을 고려해 처음부터 국내 생산을 고수한 이우복 대표는 수도권에 위치한 공장들과 협업해 작업에 필요한 부속들을 만들고, 경기도 파주의 공장에서 최종적으로 조립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 과정에서 유화성 디자이너는 의도한 디자인을 완벽하게 구현하고자 기술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그는 기술 장인들에게 시종일관 디테일을 강조하며 요구 사항을 끈질기게 관철시켰다. 처음에는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사람들이 디테일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야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에게 ‘0.1mm’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조명 브랜드 아고는 전문 분야와 기술이 철저히 분업화된 을지로의 산업 시스템을 기반으로, 그동안 을지로 조명 업계에서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했다. 사진은 스웨덴 디자이너 요나스 바겔(Jonas Wagell)과 협업하여 론칭한 제품 앨리(ALLEY). ⓒ 아고   산업 생태계의 변화 을지로에서 론칭한 조명 브랜드에 대해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복제품 유통의 벽을 쉽게 넘어서지 못할 거라는 염려도 있었다. 또한 풀옵션으로 세팅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들에게 조명 전문 브랜드의 매력을 어필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아고는 한국산 조명 디자인의 우수성을 보여 주며 보란 듯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고의 과감한 디자인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은 젊은 세대의 SNS에는 어김없이 아고 제품이 등장했다. 심지어 아고 제품을 모방한 복제품들도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 유화성 디자이너는 “복제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오리지널을 구매할 확률이 낮고, 오리지널을 사는 사람은 복제품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복제품과 오리지널은 시장 자체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고가 출시된 이후 을지로에는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익숙했던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난 것이다. 아고는 좋은 브랜드가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가 되었다. 이제 론칭 5년 차가 된 아고는 글로벌 조명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 업종이 다른 브랜드들과도 협업하며 을지로에서 뿌리를 내려 가고 있는 중이다. 2022년 아고 쇼룸에서 열린 전시 < Optimistic Design > 중 일부. 아고의 프로브(Probe) 컬렉션을 디자인한 스위스 빅게임(BIG-GAME) 스튜디오의 대표 제품들을 볼 수 있었던 전시다. 2004년 설립된 빅게임 스튜디오는 단순하고 기능적이면서도 낙관적인 이미지의 작업물을 주로 선보인다. ⓒ 아고  

도시의 표정을 수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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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표정을 수집하다 설동주(Seol Dong-ju, 薛棟柱)는 사진과 펜 드로잉으로 도시를 기록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는 여행지에서 마주친 풍경과 사람들을 정감 어린 필치의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2020년 발간한 『을지로 수집』에는 자신만의 시선과 감성으로 포착한 을지로의 단면들이 담겨 있다. < 을지로 3가 사거리 > . 설동주. 2019. Pen on paper. 39.4 × 54.5 ㎝. 서울역 근처에 자리한 설동주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고딕체로 된 스텐실 도안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We live City We love.”라는 문구는 그가 머무르는 공간과 아주 잘 어울린다. ‘도시’와 ‘사랑’은 그의 작업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들이기 때문이다. “옛것이 주는 편안함에 반해 을지로를 자주 오갔다.”는 그는 그곳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이미지들을 모아 몇 해 전 『을지로 수집』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가 ‘수집’한 이야기들은 이미 없어진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조만간 사라질 처지에 놓인 것들에게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는 옛것과 새것의 공존을 꿈꾸며 동네 특유의 문화를 계승 중인 청년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건강한 변화 덕분에 희망을 발견한다는 그가 을지로를 향한 오래된 애정을 고백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설동주는 자신이 다녔던 여행지의 기억을 오래 남기고 싶어 펜 드로잉 작업을 시작했다. 정밀하면서도 흥미로운 그의 작품은 일명 ‘도시 정물화’로 불린다. 최근 후쿠오카 아트갤러리 아더(Art Gallery OTHER)와 도쿄 와다화랑(Wada Garou Tokyo, 和田画廊) 등에서 각 도시의 풍경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책을 출간한 지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독자들을 많이 만났나? 을지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분들이 내 책을 읽은 것 같다. 출판 후 새로운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생겼다. 다만 발행 후에 북토크 같은 행사를 열고 싶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불발된 점이 내내 아쉬웠다. 을지로를 기록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염리동(鹽里洞)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의 정취를 무척 좋아했고, 성장한 후에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 한번은 친구에게 그 동네를 보여 주고 싶어 데려갔는데, 재개발로 인해서 철거가 시작되고 있었다. 너무 안타깝고, 원망스러웠다. 이곳에 대한 기록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왜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러다가 2017년인가 2018년쯤 을지로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을지로도 예전부터 자주 들락거렸던 동네인데, 이번만큼은 좋아하는 장소가 자취를 감추기 전에 나만의 방식으로 최대한 많은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헐리고 있는 건물이나 철거가 예정된 공간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책에는 을지로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책에 소개한 사람들 중에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이 꽤 있다. 매체에 노출된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얼굴이 알려지게 된 걸 재밌어하고 신기해했다. 인터뷰이들 중에는 자의로 다른 동네에 이사 간 사람도 있고, 지내던 공간이 철거 대상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긴 경우도 있다. 요즘도 을지로에 가면 책의 주인공들을 찾아가 안부를 묻곤 한다. 2020년 출판한 『을지로 수집』은 을지로에 대한 그의 애정을 담백하게 담아낸 책이다. 직접 찍은 사진과 그림들을 비롯해 을지로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일곱 편의 글이 실려 있다. ⓒ 설동주 인터뷰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풍년이용원은 토박이들도 내력을 잘 모를 정도로 오래된 이발소인데,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어도 상호와 간판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에이스포클럽(Ace Four Club)은 60년 된 다방을 개조한 카페 겸 바이다. 나는 을지로에 오래 계셨던 분들이나 본인 의지로 새로이 터를 잡은 분들을 두루두루 만나보고 싶었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을 깊이 있게 인터뷰하자는 목표도 세웠다. 그래야 이곳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을지로가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책에서 당신의 염려를 느낄 수 있었다. 원고를 쓸 때만 해도 나는 당시 을지로에서 감지되는 변화의 바람을 다소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달라진 모습이 예뻐 보이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상권이 활발해지는 것도 바람직하다. 옛것을 포용하면서도 새로운 활력을 받아들이는 상생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 희망을 느꼈다. 그런가 하면 기존 을지로와 너무나 이질적인 모습을 발견할 때는 ‘이게 뭐지?’ 싶기도 하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그래서 다시 책 작업을 한다면 무척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지금 이 책에 그림 몇 장을 추가한다면 무엇을 그리고 싶나? 예전에는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가면 청계천부터 남산타워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지금은 주변에 신축 건물들이 생겨나서 풍경이 달라졌다. 내가 좋아했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어 아쉽지만, 달라진 전경(全景)을 그려 보고 싶기도 하다. 작가는 미리 촬영해 둔 사진을 컴퓨터에 띄운 후 그것을 펜 드로잉으로 옮긴다. 노트 크기의 그림은 보통 몇 시간 내로 완성하지만, 대형 작품은 며칠이 소요된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과 장면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군중 속에서 개인 개인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고, 저마다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노가리 골목 그림 같은 것이 그렇다. 연령도, 차림새도, 직업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재밌지 않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데이트하러 온 연인, 여행 온 외국인 등 여러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 캐릭터도 살짝 숨겨 뒀다. 펜 드로잉을 처음 시작할 때는 누가 봐도 예쁘고 멋진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차츰 독자들이 다층적 감정을 느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풍경 속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늘 세심히 신경 쓰며 작업한다. 사람을 몇 명 등장시킬지, 어디에 배치할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자신의 정체성을 ‘시티 트레커(city trekker)’로 규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을지로를 비롯해 뉴욕, 도쿄, 후쿠오카 등을 그렸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파리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빠른 시일 내에 그곳을 그림과 사진으로 담아보고 싶다. 나는 도시 곳곳을 여행하면서 소소하게 마주치는 찰나의 감성을 포착한다. 도시의 풍경, 그중에서도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고 그것들이 모여 삶을 이루는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을지로를 방문하려는 분들에게 동대문, 종로, 충무로 등 주변 동네들도 거닐어 보기를 권한다. 모두 매력적인 곳들이다.   남선우(Nam Sun-woo, 南璇佑) 『씨네21』 기자 허동욱 포토그래퍼

근현대 도시 건축의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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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도시 건축의 만물상 을지로는 건축을 통해 서울의 역사를 오롯이 보여 주는 공간이다. 20세기 초 이 지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개발되면서 서구 양식의 근대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수십 년간 공업 지구로서 호황을 누렸던 시기에 지어진 맞벽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더해 1980년대 적극적인 도심 재개발 사업이 시행되어 현대식 고층 건물들도 밀집해 있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지닌 세운상가는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단지이다. 이 건물들은 1970년대 한국 사회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상징한다. 2023년 10월, 서울시가 이곳을 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재개발을 위한 철거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단지의 남쪽 끝에 자리한 진양상가 옥상이다. ⓒ 노경(Roh Kyung, 盧京) 을지로는 서울특별시 중구 원도심을 가로지르는 길이 약 3km의 6차선 도로이다. 대한제국(1897~1910) 시대의 제단인 환구단(圜丘壇) 앞 시민 공원에서 시작해 신당동(新堂洞) 한양(漢陽)공업고등학교에 이르는 길이다. 좀 더 유명한 시설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특별시청에서 출발해 복합 문화 공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끝난다. 북쪽에는 청계천로, 남쪽에는 퇴계로가 을지로와 함께 동서로 나란히 뻗어 있다. 일반적으로 방산동(芳山洞), 산림동(山林洞), 입정동(笠井洞) 등 주변 지역을 한데 아울러 ‘을지로’라고 말한다.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 업무 지구인 을지로는 건축적 면모 또한 남다르다. 고풍스러운 근대기 건축물들과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낡은 공장 건물들, 그리고 세련된 외양의 고층 빌딩들이 공존하면서 독특한 광경을 연출한다. 이는 을지로의 역사가 만들어 낸 풍경이다. 다층적 스펙트럼 을지로가 도시 공간으로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조선(1392~1910) 시대다. 이곳은 서울 건도(建都)와 함께 정비한 행정구역 가운데 남부(南部) 명철방(明哲坊)에 속했다. 궁궐을 지척에 둔 도성 안 거리로, 하루아침에 도시 중심부로 부상했다. 을지로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더욱 번성하였는데, 1909년에는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 현재 우리은행)의 점포 광통관(廣通館)이 을지로 입구에 들어섰다. 서양식 2층 건물인 광통관은 지금도 은행 점포로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2002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을지로에는 근대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들과 산업화 시대 양산된 저층의 콘크리트 건물들을 비롯해 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공존하고 있다. 을지로 입구에 위치한 대일빌딩의 리모델링을 맡은 디자인 전문 그룹 디엠피(dmp)는 이 건물이 1909년 지어진 광통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영속적인 성격이 강한 마감재를 사용하고 디테일과 경관 조명에 주의를 기울였다. ⓒ 윤준환(Yoon Joon-hwan, 尹晙歡) 1925년에는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있는 자리에 경성(京城)운동장이 준공되었고, 이듬해에는 태평로1가에 경성부청 청사가 지어졌다. 이 건물은 1946년부터 서울특별시의 청사로 사용되다가 2012년 신관이 건립됨에 따라 이후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로써 을지로의 기점과 종점 두 곳에는 대형 시설들이 자리하게 되었다. 1928년에는 명동(明洞) 입구에 경성전기주식회사(현재 한국전력공사) 사옥이 세워졌다.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지상 5층 건물로 국내 최초로 내진, 내화 설계가 적용되었으며 엘리베이터까지 갖추었다. 을지로는 번화가인 을지로 입구 일대를 중심으로 근대 문명 초기부터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이후 이곳의 도시 건축은 같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 첫 흐름은 1930년대부터 시작해 1950~1960년대에 양산된 2~3층 높이의 콘크리트 상가 건물들이었다. 지금도 을지로 3가에서 5가 일대에는 당시 지어진 건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건물들이 거리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50센티미터 이내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맞벽 건축[對壁建築]’이 대부분이다. 또한 지금은 외장재로 잘 사용하지 않는 타일로 외부를 마감한 건물들이 많아 이 자체만으로도 희귀한 역사적 자료라 할 수 있다. 을지로 3가에는 세월의 더께가 앉은 허름한 건물들 앞에 2011년 지어진 지상 25층 높이의 오피스 빌딩 파인 애비뉴(Pine Avenue)가 마주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을지로에는 건립 연도, 건축 양식, 건물 높이 등이 제각각인 건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가히 한국 근현대 건축의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을지로 일대에는 1950~60년대 지어진 2~3층 높이의 콘크리트 상가 건물들이 즐비하다. 건물들이 이격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맞벽 건축 양식은 도시 미관을 고려한 당시의 건축법을 따른 결과이다. 건물 외장재로 타일을 사용한 것도 그 시대 건축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 박용준(Park Yong-jun, 朴瑢峻)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 우리나라는 한국 전쟁 이후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 냈다. 을지로는 이 흐름의 선두에 선 지역으로 지금까지 그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그 출발점은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인 세운(世運)상가이다. 이곳은 한국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Kim Swoo-geun, 金壽根, 1931~1986)의 설계로 지어졌다. 세운상가, 대림(大林)상가, 진양(進洋)상가 등 총 8개 건물로 조성되었는데 이 상가군을 통칭하여 세운상가라고 부른다. 가장 먼저 준공된 현대(現代)상가가 2009년 철거됨에 따라 현재는 7개 동만 남아 있다. 1966년 착공을 시작해 순차적으로 완공된 세운상가는 종묘 앞에서 시작해서 필동(筆洞)에 이르는 1km 남짓 되는 초대형 타운이다. 단지 내에는 기계, 공구, 전기, 전자 등의 부품부터 가전 제품까지 망라하는 거대한 상권이 형성되었다. 상점 위층의 아파트에는 당시 주거 시설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스팀 난방, 욕조, 엘리베이터 등이 갖춰졌다. 건물에는 아파트 입주민들을 위한 실내 골프장과 사우나도 구비되었다. 세운상가는 도심 한복판에 우뚝 선 고급 아파트의 위용을 자랑하며 순식간에 서울의 명물이 되었다. 시골 사람이 서울에 와서 세운상가만 보고 돌아가도 서울을 다 본 것과 진배없다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중 대림상가는 세운상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작품성이 높은 건물이다. 김수근이 애용하던 건축 양식인 구조주의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건물을 저층부와 보행 데크, 중간 돌출부, 고층부로 구성한 뒤 각각 출입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저층부에는 계단이 독특한 형태로 설치되어 있으며, 데크와 돌출부를 가느다란 콘크리트 기둥이 연결해서 받치는 모습도 특이하다. 돌출부의 중앙에는 표면에 항아리 파편을 장식으로 붙였는데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뉴브루털리즘(New Brutalism)의 거친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세운상가 타운의 건물들은 모두 주거용 아파트가 시작되는 5층에 기하학적으로 대칭 구조를 이루는 천창과 중정이 있다. 건물 중앙에 위치한 중정은 ㅁ자 구조이며, 반투명 아크릴 소재로 이루어진 천창을 통해 은은한 빛이 내부로 스며든다. 건축가 김수근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이 공간에서는 종종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열린다. ⓒ 이경환(Lee Kyung-hwan, 李炅奐)   역동적인 고층 빌딩들 1970~1980년대에는 시청과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사이에 롯데, 웨스틴 조선, 플라자, 프레지던트 등 대형 고급 호텔들이 줄지어 들어서면서 호텔 거리가 형성되었다. 그 옆에는 은행 점포들이 하나둘 지어지면서 남쪽의 한국은행 본점과 북쪽의 광통관을 잇는 금융 거리가 탄생했다. 1986년 준공된 을지한국빌딩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지상 20층, 지하 4층 규모의 사무실 건물이다. 몸통 전면에 커튼 월(커튼처럼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유리 벽)을 설치해 첨단 이미지를 갖춤과 동시에 양옆 모서리 부분은 화강암으로 마감해서 안정감을 높였다. 건물 중간은 벽체를 안으로 밀어 넣어 발코니 공간을 확보했는데, 건축물의 인상을 한층 풍부하게 만드는 조형적 기능을 제공한다. 일명 ‘하늘 공원(Sky Plaza)’이라 불리는 이곳은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휴게 공간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국내 건축물로서는 처음 시도된 것이었기에 큰 화제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을지로 입구를 중심으로 한 재개발이 한층 속도를 내면서 고층 유리 건물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을지로 입구에서 을지로 2가 사이의 거리는 수백 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고층 유리 빌딩들이 상당히 밀집해 있다. 그중 2010년 완공된 페럼 타워(Ferrum Tower)를 눈여겨볼 만하다. 지상 28층, 지하 6층 규모인 이 건물은 육면체를 기본 형태로 삼되 건물 윤곽을 거침없는 사선으로 처리해 현대적인 느낌을 극대화했다. 이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건물 외형이 제각기 달리 보인다. 깎인 각도가 크지는 않지만, 수익성 확보 경쟁이 벌어지는 치열한 도심 재개발 사업을 감안하면 건축주가 면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조형적 변화를 꾀한 걸로 볼 수 있다. 외피는 커튼 월을 세 가지 방식으로 응용하여 사선 면에 적절히 할당했고, 이를 통해 유리를 이용한 구성미를 얻어냈다. 주위에 건물들이 가깝게 붙어 있는데 오히려 그 덕에 주변 형상이 유리 표면에 비추면서 스펙터클한 장면을 만들어 준다. 옥상 부분도 옆으로 쳐냈는데 고층인 데다가 특이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해 길 건너 골목에서도 머리를 삐쭉 내민 페럼타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을지로의 아우트라인을 조금 더 넓히면 남쪽으로는 대한제국 시대에 고딕식 구조로 완성된 서울 명동성당(明洞聖堂, 1898)과 국내 최초의 대형 교회인 영락교회(永樂敎會, 1950)가, 북쪽으로는 2019년 리모델링을 통해 청계천의 명소로 부상한 한화빌딩이 을지로의 도시 건축권에 들면서 이곳의 만물상다운 특징이 더욱 부각된다. 역사성은 유서 깊은 도시의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는데, 서울에서는 을지로가 그 역할을 대표한다. 을지로입구역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페럼 타워는 역동적인 기업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건물 외형이 각기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도록 디자인했다. 간삼건축이 설계한 이 건물은 201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 건축물 부문 우수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서울특별시 건축상 일반 건축 부문에서도 우수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 간삼건축(Gansam Co., Ltd.)

옛것과 새것의 공존

Features 2024 SPRING

옛것과 새것의 공존 을지로(乙支路)는 서울 한가운데에 위치한 공업 지역이다. 제조업으로 오랫동안 호황을 누렸던 이곳에는 오래된 공장과 점포들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둥지를 틀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보여 주며,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을지로의 미로 같은 골목 사이사이에는 1950~60년대에 자리 잡은 철공소, 공구 가게, 인쇄 업체 등이 들어서 있다. 그중 을지로 3가는 노후한 저층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을지로 일대에서 가장 낙후한 곳이다. ⓒ 설동주(Seol Dong-ju, 薛棟柱) 을지로 3가 골목에 어둠이 내리면 소문난 음식점들을 찾아온 젊은이들로 골목이 북적인다. 이곳에는 을지로의 역사와 함께해 온 오래된 가게들이 많다. ⓒ 서울관광재단 강남(江南)이나 명동(明洞), 홍대(弘大) 입구처럼 사람들이 항상 복작거리는 번화가가 아닌데도, 몇 년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지역이 있다. ‘#핫플레이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빈번하게 언급되는 그곳은 바로 을지로다. 이곳은 인쇄소, 철공소 같은 소형 공장들과 타일, 조명 등 자재상들이 몰려 있는 도심 내 대표적인 공업 지역으로 ‘없는 게 없는’ 동네로 통한다. 하지만 골목 곳곳을 천천히 걷다 보면 예상외로 없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서울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편의점 하나 마주치기 어렵고, 동네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매장도 큰길가나 지하철역 입구가 있는 데까지 나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번듯하고 말끔한 것 대신 이곳의 골목들을 채우고 있는 것은 바삐 움직이는 오토바이들과 용접 소리, 쇠를 갈아 내는 매캐한 냄새,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의 을지로를 만들어 온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다. 을지로에 켜켜이 쌓인 과거의 흔적들은 색다른 재미를 추구하거나 옛것에 이끌리는 젊은이들을 불러 모은다. 제조업의 산실 을지로는 1914년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황금정(黃金町)’이라 불렸고, 고구려(BC 37년~668년) 시대의 명장인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이름을 따 1946년 현재의 지명으로 바뀌었다. 이곳이 제조업 중심지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시기는 20세기 초다. 방직, 식품, 인쇄업 등이 활성화되면서 일대가 근대 상공업 지역으로 발돋움했다. 한국전쟁(1950~1953) 이후에는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을지로와 그 아래 천변인 청계천(淸溪川)에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각지에서 찾아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했다. 밤에는 허름한 거처에서 새우잠을 자고, 낮에는 노점과 좌판에서 되는 대로 물건을 팔았다. 주력 상품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기계와 공구들이었다. 전쟁 이후 쓸모를 잃은 고철도 거래되었다. 상품을 판매하던 사람들이 점차 전문성을 갖추면서 기계와 공구를 수리하거나 직접 제작하는 일도 늘어났다. 어느덧 을지로는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인들이 모인 곳으로 인식되었다. 항간에는 “을지로와 청계천 한 바퀴만 돌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게 되었다. 그만큼 이 지역의 제조업 기술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전기∙전자, 금속, 유리, 조명, 도기, 가구 등 제조 업체가 골목골목마다 둥지를 틀고 을지로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전성기였던 1970년대에는 손님들이 하도 밀려들어 상인들이 돈을 셀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을지로가 내리막길을 걷는 시기가 왔다. 제조업을 필두로 한국 경제가 활황을 누리던 1980년대 후반, 이곳의 주력 산업인 전기∙전자가 도심 부적격 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상당수 업체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야 했다. 게다가 20세기 초부터 형성된 주거 환경과 시설들이 노후하면서 이 일대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복잡한 필지 정리 문제로 인해 재개발이 쉽사리 진행되지 못했고, 결국 지가(地價)만 높아진 채 밀레니엄을 맞이했다. 세운상가는 수십 년 동안 전자 산업의 메카였던 곳으로, 대대적인 재생 사업을 통해 2017년 새로운 모습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그중 세운베이스먼트(Sewoon Basement)는 지하 보일러실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이곳은 교육, 전시, 공방 등 다목적으로 활용되며 새로운 쓰임새를 얻었다. ⓒ 노경(Roh Kyung, 盧京) 옛것에 대한 존중 을지로는 산업뿐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효용성이 높은 지역이었다. 청년 예술가들은 미술∙영화∙연극 등의 작업에 필요한 재료들을 이곳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고, 없으면 기술자들에게 의뢰해 제작할 수도 있었다. 을지로의 장인들은 청년 예술가들이 요청한 것들을 만들어 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눴고, 때로는 기술적인 조언과 자문을 통해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이들이 을지로를 자주 찾는 데에는 지리적인 이점도 한몫했다. 을지로에는 지하철 2, 3, 5호선이 지나가기 때문에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을지로 산업 장인들의 기술력은 청년 예술가들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있어 강력한 무기가 된다. 사진은 어보브 스튜디오(above.studio)가 자동 제어 분야에서 5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을지로의 음향 장인과 협업하여 출시한 진공관 블루투스 스피커 ‘노트 사운드 어보브(KNOT, SOUND ABOVE)’. 을지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어보브 스튜디오는 논리적인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 어보브 스튜디오 쇠락해 가는 을지로의 가치를 일깨우며 이곳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은 이들청년들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작업실이나 전시 및 공연 공간을 얻기 위해 을지로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한 임대료가 을지로를 선택하게 한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특유의 물리적 환경에 있다. 을지로는 땀 냄새 나는 노동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생동감과 세월의 더께가 앉은 건물들, 그리고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들이 어우러져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을지로에 마련된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공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 지역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이질감이 생기지 않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임대한 작업실이나 전시장을 목적에 맞게 완전히 레노베이션하는 대신 대부분 기존 인테리어를 그대로 활용했다. 수십 년 전에 유행했던 벽돌 장식이나 오래된 가구를 함부로 부수지 않았다. 이전 점포나 공장의 간판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 자체로 을지로의 역사가 된 것들을 존중하며 보존했던 것이다. 이들이 새롭게 조성한 공간들은 기존 을지로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을지로를 탐방하는 사람들에게는 골목마다 숨어 있는 독특한 갤러리들을 발견하는 것도 묘미이다. 2018년 개관한 엔에이(N⁄A)갤러리는 을지로 4가 철공소 골목에 숨어 있다. 갤러리 간판도 내걸고 있지 않지만, 다양한 장르의 전시를 선보이며 이 지역의 예술 생태계를 이끌고 있다. 사진은 올해 초 열렸던 김예슬(Yesul Kim)과 헤미 랑베흐(Rémi Lambert)의 2인전 전시 장면. ⓒ 엔에이갤러리(N/A Gallery) 코오롱FnC가 2020년 멀티 플래그십 스토어를 표방하며 을지로 3가에 마련한 을지다락의 내부 모습. 공간 디자인을 맡은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는 20여 년 된 기존 건물의 원형을 유지하는 한편 내부 인테리어 또한 오래된 가구와 마루, 집기들을 활용해 주변 지역과 어우러지는 장소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LTH 제공, 사진 최용준   힙지로의 탄생 을지로에 정착한 문화예술인들은 딱히 돈이 되지 않는 전시나 공연일지라도 새로움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했다. 을지로가 지니고 있는 지리적, 건축적 특징을 작품에 녹여 내는 실험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을지로에서 볼 수 있는 전시나 공연을 ‘장소 특정적 콘텐츠’라 말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이들의 문화예술 활동은 을지로의 음식 문화에도 점차 스며들기 시작했다. 문화예술 공간들 근처에는 차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이 가게들도 대부분 기존 업소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음식점 이름을 내걸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느새 이곳들은 복합 문화 공간이 되었다. 레스토랑, 카페, 펍 등과 작업실, 갤러리, 공연장 등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경계가 허물어졌다. 레스토랑에서 미술 작품 전시를 하거나 카페가 일일 공연장이 되는 식이다. 맛있는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바에서 멋진 수공예품을 만나는 것 역시 을지로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각각의 목적과 쓰임이 분명하던 서울에서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을지로는 입소문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이른바 ‘힙지로(을지로에 영어 단어 hip을 합쳐 만든 신조어)’가 탄생한 것이다. 을지로는 이제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노동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기술과 예술, 낡은 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향으로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재미있는 공간을 찾아내는 것은 을지로만이 선사하는 독특한 묘미이다. < 59계단(59 Stairs) 와인바, 산림동 130-1 5층 > . 변경랑(Byun Kyoung-rang, 邊敬娘). 2021. 피그먼트 프린트. 51 × 34 ㎝. 2021년 충무로 와이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서울아카이브사진가그룹(SAPG)의 사진전 < 을지로 2021 > 전시작 중 하나. 변경랑은 을지로 일대에 새로 생긴 식당들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경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선보였다. ⓒ 변경랑 을지로3가역 인근에 위치한 에이스포클럽(Ace Four Club)은 60년 된 다방을 개조한 카페 겸 바이다. 가게 주인은 이전 다방의 단골손님들을 위해 출입문을 그대로 사용하는 등 과거의 흔적 일부를 남겨 두었다. ⓒ 설동주(Seol Dong-ju, 薛棟柱) 을지로3가역 뒷골목에 자리한 더랜치브루잉(The Ranch Brewing)은 수제 맥주와 피자를 판매하는 가게로, 화려한 그래피티와 자판기 형태의 출입문이 젊은 층의 취향을 사로잡으면서 을지로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 서울관광재단

기술, 사람을 위한 가치

Features 2023 WINTER

기술, 사람을 위한 가치 문화예술 분야가 현재 기민하게 반응하는 환경적 요인 중 하나는 기술이다. 디지털 중심의 콘텐츠들이 상상력을 현실화하며 감동과 놀라움을 선사한다. 뛰어난 기술력을 기반으로 문화예술 콘텐츠의 생태계를 한층 성장시키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다. 뮤직테크 스타트업 버시스(Verses)의 ‘메타 뮤직 시스템’은 인공지능으로 만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음악 감상자들이 메타버스 공간에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뮤지션의 음악을 제어할 수 있다. CES 2023 최고 혁신상(CES 2023 Best of Innovation Award)을 받은 이 애플리케이션은 감상자가 뮤지션의 음악을 변화시키고 상호 작용하는 방향으로 음악 감상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 버시스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이제 디지털은 문화예술 콘텐츠가 싹트고,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어떤 콘텐츠가 주류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이 필요하겠지만, 그중 중요한 것으로 대중과 만나는 방법을 꼽을 수 있다. 근래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것은 공간 개념이다. 문화예술 콘텐츠의 상당 부분은 이미 무대를 디지털 세상으로 옮겼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일상을 경험하면서 더욱 고도화되었다. 그 중심에는 모바일과 메타버스가 놓여 있다. 가상 세계 현대자동차가 2022년 제페토(ZEPETO)에 구축한 브랜드 체험관 현대 모터스튜디오에서 사용자들의 아바타들이 기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가상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놀이, 쇼핑, 업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로 2018년 8월 출시되었다. ⓒ 현대자동차그룹 K-pop은 요즘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콘텐츠다. 뮤지션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전 세계 팬들이 반응하기 때문에 무대가 더욱 정교하게 꾸며지는 추세다. 또한 단지 공연을 위한 배경이 아니라 상상을 표현하는 매개체 역할도 한다. 여기에는 확장 현실(XR, eXtended Reality)이 적용된다. XR은 스튜디오에 거대한 LED 디스플레이를 설치해서 무대 배경에 가상 환경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뮤지션들은 해외 명소는 물론이고 우주나 상상 속 미래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카메라 이동에 따라 배경도 움직이며, 실제로 그 공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실감형 콘텐츠 제작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 메타로켓(Metalocat)은 MBC TV의 예능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 > ,< 복면가왕 >등에서 가상 무대를 이질감 없이 꾸며 내 주목받았다. 덕분에 제작진들이 무대 세트를 여러 개 만들어야 하는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으며, 카메라 촬영 기법도 과감해졌다. XR 기반의 가상 공간은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크게 성장 중이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CJ ENM 스튜디오 센터 내에는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가 있다. 벽면과 천장을 모두 대형 LED 스크린으로 꾸민 스튜디오로, 영상물 촬영에 필요한 다양한 배경을 LED 스크린에 구현해 촬영하는 최첨단 시설이다. 로케이션 촬영 없이도 실제 같은 배경이 담기기 때문에 제작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최종 콘텐츠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전혀 다른 형태의 콘텐츠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한편 콘텐츠 자체의 가상화 현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래픽 기반의 가상 캐릭터와 배경에 쓰이는 기술은 이미 일반적이지만, 정교한 묘사는 제작자들에게 늘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콘텐츠 기획 및 제작사 덱스터 스튜디오)는 조성희(Jo Sung-hee, 趙圣熙)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승리호(Space Sweepers) > (2021)와 최동훈(Choi Dong-hoon, 崔東勳) 감독의< 외계+인(Alienoid) > (2022)을 비롯해 최근 김용화(Kim Yong-hwa, 金容華) 감독의< 더 문(The Moon) > (2023)에 이르기까지 자사의 VFX 기술을 톡톡히 입증한 바 있다. SF 장르의 핵심은 상상력에 달려 있지만, 이를 수준 높은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결국 아이디어를 얼마나 핍진하게 그려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 기업이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가상화 바람도 무시할 수 없다. 2018년 처음 등장한 제페토는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곳은 네이버 제트(NAVER Z)가 운영하는 3D 아바타 기반 소셜 플랫폼으로, 가상 공간에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아바타를 만들어 공간 제약 없이 다른 사람들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된 사용자들이 20~30대 젊은 층인 만큼 국내외 기업들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제페토의 가상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중이다. 창의적인 인공지능 메타로켓은 실감형 콘텐츠 제작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2022년 1월 MBC 방송국 사내 벤처로 선정된 후 1년간 육성 과정을 거쳐 2023년 독립했다. 사진은 메타로켓이 제작에 참여한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 의 한 장면. 3차원 게임 엔진을 활용해 가상 무대를 만들었다. ⓒ 메타로켓 컴퓨터의 등장 이후 사람이 만들어 내는 많은 것들이 디지털로 전환되어 왔다. 종이가 화면으로, 연필이 키보드와 디지털 펜으로 바뀌었다. 아날로그 입력 방식을 디지털로 옮기는 것이 그동안의 현상이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표현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회화는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생성 AI 열풍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분야이다. 수많은 그림을 학습한 머신러닝 모델이 이미 유명 작가들의 명작을 흉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원하는 화풍대로 잘 그려줄 뿐 아니라 때로는 사진과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사실적인 그림을 뽑아내기도 한다. AI 기술 기업 카카오브레인(Kakao Brain)이 출시한 칼로(Karlo)는 국내 기술로 만들어 낸 인공지능 그림 모델이다. 이 서비스는 수준 높은 회화 작품을 척척 그려내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카카오브레인은 칼로만의 독자적인 이미지 제작을 위해 직접 생성 모델을 개발했고, 이 모델을 학습시키는 자체 데이터셋 ‘코요(COYO)’도 직접 개발해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인공지능이 그려낸 그림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창의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칼로의 그림들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연유로 칼로뿐 아니라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이미지들을 두고 저작권이 인공지능 개발업체에 있는지 또는 이용자에게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하며, 심지어 작품으로 인정받고 수상하는 일도 벌어진다. 한편 버시스(Verses)는 메타 뮤직 시스템이라는 인공지능 중심의 음악 플랫폼을 서비스하는 기업이다. 이용자들은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아티스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교감을 나누면서 음악을 즐긴다. 단순히 정형화된 음악이 아니라 뮤직비디오에 직접 참여해 음악을 진화시키는 서비스다. 코드를 지어내고, 작곡과 편곡을 직접 해내는 생성 AI의 형태에서 한 발짝 진화해 참여와 성장이라는 개념을 더했다고 볼 수 있다. 음악의 중심을 감상에서 참여로 확대시킨 것이다.   기술의 가치 CJ ENM의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에서 영상 콘텐츠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장면. 이곳에는 지름 20미터, 높이 7미터의 타원형 메인 LED 월과 길이 20미터, 높이 3.6미터의 일(一)자형 월이 설치되어 있다. 영상물 촬영에 필요한 다양한 배경을 LED 스크린에 구현할 수 있어 세트 설치와 철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큰 장점이다. ⓒ CJ ENM 문화예술 콘텐츠가 기술과 결합하는 목적은 결국 더 풍요로운 창의성의 표현에 있다. MIDI 음악을 통해 음악에 대한 장벽이 사라졌고, 웹이 대중화되면서 누구나 웹툰을 그려 작가로 데뷔할 수 있게 됐다. 유튜브는 평범한 사람들도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메타버스는 예술 작품을 눈앞에서 제한 없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기술의 흐름은 명확하다. 일부 전문가들과 애호가들만 창작하고 누릴 수 있는 예술이 아닌, 누구나 참여해서 만들고 즐길 수 있도록 제작과 향유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애초 인터넷 서비스의 목표도 계층과 장벽을 허무는 데 있었다. 그 영향력이 여느 산업처럼 문화 콘텐츠 분야로 넘어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창작자와 감상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두가 자유롭고 동등하게 표현할 기회가 열린다는 것은 문화예술의 존재 의미와도 관계가 깊다. 결국 모든 작품과 콘텐츠는 사람을 통해서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접하고 창작자의 의도를 이해하며 이를 다시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순환이 이루어져야 문화예술의 생태계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함께 엮어 내는 협업의 에너지

Features 2023 WINTER

함께 엮어 내는 협업의 에너지 < The Factory > . 팀보이드. 2021. Robotic arm, conveyor, drawing machine, PC, display, AL frames. 가변 설치.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원앤제이 갤러리(ONE AND J. Gallery)에서 2022년 10월부터 11월까지 열린 팀보이드(teamVOID)의 개인전< Factories >전시 중 일부. 공장 생산 시스템이 자동화, 고도화되면서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는 최근 흐름을 반영했다. ⓒ 원앤제이 갤러리 가재발(사진 왼쪽)과 장재호(張宰豪)가 의기투합해 2008년 결성한 태싯그룹(Tacit Group)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서 예술적 영감을 발견하고 이를 멀티미디어 공연, 인터랙티브 설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알고리즘 아트 등으로 표현하는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그룹이다. ⓒ 허동욱 다양한 토대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팀을 이루고, 영역 간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예술 형식을 실험하는 시도가 부쩍 늘고 있다.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감각과 사유 방식을 보여 주는 동시대 예술가들을 만나 본다. 태싯그룹, 모호함이 작업의 원동력 태싯그룹(Tacit Group)은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그룹이다. 클래식과 전자 음악을 전공한 장재호(Jang Jae-ho), 대중음악과 전자 음악을 오가며 활동하던 가재발(Gajaebal)이 2008년 결성했다. 이 그룹의 주요한 목표는 신개념 알고리듬 아트를 실험하는 것이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알고리듬을 활용해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더 새롭고 혁신적인 시스템을 창조하려 한다. 이들은 동시대 테크놀로지 환경에서 예술적 가능성을 찾고 이를 멀티미디어 공연, 인터랙티브 설치, 알고리듬 아트로 구현한다. 또한 이들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하곤 한다. 그 결과 거대한 디지털 화면에서 한글 자모가 모였다 흩어지며 군무를 추거나 테트리스 게임이 즉흥곡으로 재탄생한다. 태싯그룹의 결성 배경은? 우리는 원래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키네틱아트가 막 떠오르던 시기에 둘 다 알고리듬 아트에 관심을 가졌는데, 당시에도 너무 난해한 장르였기 때문에 우리는 물론이고 대중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작업을 해 보자며 의기투합했다. 2008년 활동을 시작해 벌써 15년이 흘렀다. 긴 세월 동안 태싯그룹을 이끌어 온 비전은 무엇인가? ‘태싯’이라는 그룹명은 존 케이지의 퍼포먼스< 4분 33초 > 에서 착안했다.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고 현장의 침묵과 소음을 음악화한 이 작품의 악보에는 침묵을 뜻하는 음악 용어 ‘타켓(tacet)’만 적혀 있었다. 20세기에 한 획을 그은 케이지처럼 우리도 21세기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싶었다. 15년 전에는 ‘오디오 비주얼’이라는 용어 자체가 매우 생소했다. 우리 작업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말의 개념부터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그때만큼 낯설어 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가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 뿌듯하다. < 모르스 쿵쿵(Morse ㅋung ㅋung) > 은 한글 자모(字母)가 소리로 치환되는 작품으로 글자가 일그러지면 소리도 따라서 이지러진다. 각각 LED 전구 2000개가 달린 166 × 166 ㎝ 크기의 대형 화면 세 개에서 글자와 소리가 동시에 만들어진다. 태싯그룹의 작업은 난해한 알고리즘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관객들은 쉽고 재미있게 공연을 즐길 수 있다. 태싯그룹 제공 알고리듬 아트라는 개념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 작업의 모티프는 쉽고 대중적이다. < 훈민정악(Hun-min-jeong-ak) > 과< 모르스쿵쿵(Morse ㅋung ㅋung) > 은 한글이 소리를 바탕으로 창조된 문자라는 점에 착안해 작업했다. 보통 한글이 건축적 구조를 지닌다고 말한다. 한글이 일종의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시스템을 연구하는 그룹인데 한글도 그러하니, 여기에 사운드를 결합해 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음악은 다른 장르에 비해 이론보다 영감에서 출발할 때가 많다. 어느 날 문득 일상에서 번쩍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다.< 게임 오버(Game Over) > 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테트리스 게임의 형태가 악보와 겹쳐 보였다. 그래서 테트리스를 하는 퍼포머, 게임 이미지, 블록의 높낮이에 따라 전자음이 달라지는 사운드를 만들었다. 2021년에는 NFT 작품< CRYPTO 헐헐헐 > 을 무려 4,200만 원에 판매해 화제를 모았다. 한글을 활용한 기존 작업의 연장선에서 구상한 작품이다. 우리는 주식이 상승할 때도 “헐!”, 폭락할 때도 “헐…”이라고 말한다. ‘헐’은 양방향의 감정을 모두 표현하는 감탄사이다. 그 온갖 감정의 특징이 NFT와도 딱 들어맞았다. ‘헐’은 그 자체로 소리이기도,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이기도, 악보이기도, 음악의 재료이기도 한 글자이다. 또 어떨 땐 글자이지만, 모양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도형처럼 보이기도 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태싯그룹에게 알고리듬이란 어떤 의미인가? 알고리듬 아트를 설명할 때는 처마 끝에 다는 풍경(風磬)만큼 좋은 비유가 없다. 풍경을 만드는 이가 있고, 그걸 쳐서 소리를 내는 존재가 있다. 바람이 풍경을 만들 줄은 몰라도 왔다 갔다 하면서 소리를 낼 수는 있다. 마찬가지로 관객이 우리 작품의 시스템은 몰라도 연주는 할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바로 그걸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누가 연주할지, 어떤 음이 탄생할지 예측할 수 없어도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결과물보다 작업을 제작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지난 15년간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우리 두 사람의 개인적인 입장은 사뭇 다르다. 하지만 태싯그룹으로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작업의 원동력이 ‘모호함’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작업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게 도대체 음악인지 미술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딘가에 속해 있는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에게는 의미 있다. < 게임 오버(Game Over) > 의 공연 장면. 태싯그룹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테트리스 게임에서 영감을 얻었다. 연주자들이 게임을 시작하면 그 과정이 시각화되는데, 블록이 쌓이는 위치와 형태에 따라 다른 소리가 생성된다. 태싯그룹 제공 < 훈민정악(Hun-min-jeong-ak) > < 모르스 쿵쿵 > 과 마찬가지로 한글 창제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며, 한글 자음과 모음에 소리를 생성하는 알고리듬을 심었다.   업체, 기술 환경에 대한 통찰 업체eobchae는 2017년 탄생한 오디오 비주얼 프로덕션 콜렉티브이다. 대학에서 만난 김나희(Kim Na-hee), 오천석(Oh Cheon-seok), 황휘(Hwang Hwi)가 멤버이다. 이들은 동시대의 기술적, 문화적 환경을 주제로 영상, 웹아트, 사운드, 퍼포먼스 등을 제작한다. 업체eobchae의 주된 관심사는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을 규정하는 ‘디지털 프로덕트’이다. 스마트폰, 스마트 워치, 태블릿, AI 스피커처럼 현대인의 일상과 업무를 편리하게 도와주는 도구들을 말한다. 하지만 소수 기업이 이것을 독점하면 대중이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업체eobchae는 가상의 디지털 프로덕트를 개발한다. 거대 기업과 경쟁하는 가짜 상품을 상상해 사회 현상을 비평적으로 조망하려는 의도이다. ‘업체’는 ‘기업체’를 뜻하는 보통 명사이다. 세 명의 멤버가 어떻게 팀을 조직하게 됐는가? 김나희와 오천석은 대학 친구였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문법에서 벗어나 재밌는 일을 모색하던 중 한 수업에서 황휘를 만나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당시에는 미술에 최소한의 관심만 두고 있었고, 순수 예술 작업보다 실제 프로덕션을 만들 의도로 시작했다.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자며 이름도 ‘업체’로 지었다. 그런데 누군가 의뢰해 주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 우리끼리 먼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 봤다. 우리는 세 멤버가 개인 활동과 팀 활동을 병행한다. 벌써 7년 차 콜렉티브가 됐다. 업체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멤버들이 기술 관련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디지털 프로덕트에 관심을 모으게 됐다. 그런데 우리는 실재하는 프로덕트가 아니라 현실과 경쟁하는 가짜를 만들고 싶었다. 주변의 휴대용 디바이스나 소셜미디어에서 볼 수 있듯 특정 디지털 프로덕트가 시장을 빠르게 독점하면 사용자들은 그 생태계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다. 전화, 문자, 결제 시스템 등 현대인의 생활 양식 전부를 표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등에 업고 운영되는 빅데이터 회사와 경주해 보자. 그 페이스에 맞춰 한번 달려 보자” 하고 의기투합했다. 실제로 우리가 그들에게 대항할 수 없으니 ‘가짜 제품’을 사용하는 ‘가짜 사용자’를 상상하며 달걀을 던지는 제스처라도 시도해 보고 싶었다.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가짜 프로덕트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가장 재밌는 포인트는 ‘거짓말’이다. 무언가 없는데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작동하지 않는데 작동하듯 보여 주는 것, 이런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을 만드는 과정이 흥미롭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이렇게 메타 인지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업체eobchae의 작업은 최첨단 기술과 맞닿아 있다. 암호화폐, 블록체인, 오라클 등을 소재로 다룬다. 반면 작업 내용은 굉장히 근원적이다. 우리는 철학보다 인류학, 사회 과학에 흥미를 느낀다. 다시 말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또는 선과 악은 무엇인지 하는 논제보다 기술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현대인이 어떤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활용해 욕망을 추구해 나가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오늘날 기술적인 환경은 또 다른 자연이라 부를 수 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현상 너머, 무엇이 현대인을 지금처럼 행동하게 하는지 그 맥락과 배경을 파고들어 관찰하려 한다. 신기술을 도구 삼아 예술 분야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업체eobchae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기술이 어떻게 현실을 구성하는지 포착하는 데 열중한다. 가짜 프로덕트는 현실을 흉내 낼 뿐인데, 예술은 이러한 무용한 행위에 유용한 시간과 공간을 내준다. 그래서 현실적 위험에 맞부딪히지 않고 안전함을 느끼며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작업을 미술 언어로만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미술계에서 계보가 없는 작업이기도 하고…. 우리는 작품을 만든다기보다 오늘날 기술적인 환경에서 ‘가장 끔찍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콜렉티브이다. 다만 이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시도하는 과정에서 예쁜 것, 재밌는 것, 끔찍한 것들이 두루 생기는 것 같다.   2022년 두산갤러리의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영상 작품< eoracle > 의 한 장면. 매력적인 그래픽과 사운드,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신기술 환경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업체eobchae 제공 업체eobchae는 김나희(金娜希), 오천석(사진 오른쪽, 吳天錫), 황휘(사진 왼쪽, 黃徽)로 구성된 오디오 비주얼 프로덕션이며 서로의 비평적 관점을 존중하되 각자의 관심사와 기술을 활용해 독창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 허동욱 팀보이드는 배재혁(사진 왼쪽, 裵在赫)과 송준봉(宋俊奉)이 결성한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으로 인터랙티브 미디어, 키네틱 조형, 라이트 조형, 로봇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시스템적 관점에서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 낸다. ⓒ 허동욱 팀보이드, 균형 잡힌 예술 시스템 팀보이드(teamVOID)는 미디어 아트 그룹이다. 공과 대학 출신의 배재혁(Bae Jae-hyuck)과 송준봉(Song Jun-bong)이 2014년 결성했다. 이들은 기술과 예술을 융합해 인터랙티브 미디어, 키네틱 조형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한다. 산업용 로봇을 재료 삼아 한 편의 연극을 연출한 작업< The Malfunction > 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시스템이다. 일반적인 속성을 비롯해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회 현상까지 모두 포괄한다. 이는 ‘관계’와 ‘규칙’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려면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가 저마다 규칙을 준수하며 서로 균형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처럼 팀보이드도 주제, 장치, 데이터, 로직 등이 조화롭게 구성된 ‘예술 시스템’을 꿈꾼다. 멤버들이 모두 공대 출신이다. 어떻게 예술 분야로 진입하게 되었나? 우리 둘 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은 있었다. 공대생에게는 누구나 창작 욕구가 있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손으로 무언가 만들 기회가 매우 적었다. 2014년 배재혁이 먼저 재밌는 구상을 하던 중 학교 연구소에서 우연히 송준봉을 만나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됐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면 어떤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많지만, 뜻이 맞는 사람과 어울리면 혼자일 때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보이드’는 무언가 비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팀명의 의미는? ‘보이드’는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언어이다. 비어 있는 만큼 굉장히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미술 전공자가 아무도 없으니, 우리 자체가 보이드이기도 하다. 그래서 빈 만큼 채워 나가자는 의미로 작명했다. 우리가 화가나 조각가만큼 작업하지는 못하겠지만, 미디어 기술로는 미술에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산업용 로봇을 작품 재료로 사용한다. 로봇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는가? 로봇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사람도 동물도 아닌, 어떤 ‘객체’의 움직임이 신기했다. 인간은 완벽한 직선을 그리지 못하지만, 로봇은 정교하게 그리는 것은 물론이고 24시간 동안 계속 움직일 수 있다. 도구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2차 산업혁명의 상징인 컨베이어 벨트에는 대량 생산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이 깃들어 있다. 로봇은 동시대 시스템을 대표하는 사물이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생산 도구는 바로 로봇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대부분이 로봇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로봇은 인간의 어떤 욕망을 대변하는가? 바로 일하기 싫은 욕망이다. 이처럼 우리는 도구로서의 기계를 넘어, 한 사회를 구성하는 시스템 전반을 조망하고 작업으로 표현한다. 미디어 아트는 다른 장르보다 ‘뒷면’이 중요하다. 기계의 고장과 오작동에 취약한 만큼 내부 설계에 가장 큰 공을 들여야 할 것 같다. 숭고한 노동은 대개 뒷면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겉면에는 작가가 한 땀 한 땀 쏟아부은 노력이 잘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 뒤에서 작업을 향한 애정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작품의 뒷면을 보며 “아, 이 작업할 때 이런 생각을 했지”, “우리가 이런 고민을 했었지” 하며 감회에 젖고는 한다. 첨단 기술을 작업에 활용하고 있다. 다양한 신기술 이슈에 예민하게 반응할 것 같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기술은 없다. 요즘 어떤 기술이 주목받고 떠오르는지 웬만하면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새 기술을 작업에 섣불리 적용하지는 않는다. 유행하는 기술을 사용하는 데 의의를 두기보다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내용과 부합하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그래서 오래전 출시된 기술을 몇 년 뒤에야 사용한 작업도 있다. 어떤 기술을 도입해서 관심 받아야겠다는 태도는 위험하다. 팀보이드에게 가장 중요한 비전과 작업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경험과 균형감을 꼽을 수 있다. 먼저 경험은 호기심 해소와 유사하다. 내가 몰랐던 일을 실제로 겪으면서 궁금증을 풀고, 또 새로운 작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일을 시도해 보는 추진력을 제공한다. 균형감은 팀을 지속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 있다. 우리가 10년을 함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팀워크도 있지만, 작업과 일의 균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팀보이드가 10년 후에도 살아 있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기업이 예술과 손잡은 이유

Features 2023 WINTER

기업이 예술과 손잡은 이유 국내 기업들이 기업 철학을 실천하거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예술가들을 지원하거나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은 예술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고, 예술가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으며, 또한 대중들은 새로운 예술 경험을 통해 일상을 환기하게 된다. < A Guest in Paradise > . 전병삼(Jeon Byeong Sam, 全丙森). 2023. 사진 원형 적층 위에 프로젝션 영상 맵핑. 지름 300 ㎝. 2023년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에 전시된 작품으로, 가상의 외계 생명체를 약 30억 배 확대하여 지름 약 3미터 크기로 선보였다. 파라다이스 아트랩은 파라다이스 문화재단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즐거움과 놀라움을 선사하는 작품들을 공모해 진행하는 행사다. ⓒ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텔레비전을 미술 도구로 끌어들여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가 된 백남준(Nam June Paik, 白南準)은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고 말했다. 기술 매체에 의존한 예술은 더 발전된 기술이 등장하면 한 세대 안에서도 그 수명을 다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더 이상 독보적이고 영원한 기술 혹은 예술이란 없다는 선언일 수도 있다. 그 말처럼 지금은 기술이 예술과 손잡았고, 예술이 기술에 올라탔다. 미디어 아트라는 이름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고 업종의 한계를 지운다. 때로는 기업이 그러한 예술적 혁신에 동참하기도 한다. 기업 철학 인천광역시 영종도(永宗島)에 위치한 파라다이스시티는 화려한 휴양 리조트이다. 2023년 9월 어느 날, 이곳 실내 광장으로 운석이 떨어졌다. VR 고글을 쓰면 운석을 더 가까이 살펴보며 우주의 광활한 공간감을 느껴볼 수 있다. 운석을 이루는 광물의 파장을 분석해 음악과 빛을 경험할 수도 있다. 김동욱과 전진경으로 구성된 팀 룸톤의< 에코스피어 > 와 박근호(참새)의< 운석 감정 > , 그리고 윤제호의< 우주로 보내는 파동 >얘기다. 이들은 2023년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파라다이스 문화재단은 2018년부터 ‘파라다이스 아트랩’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의 현재를 탐색하고 미래 가능성을 제시하는 장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인터렉티브한 작품의 창작, 제작, 유통을 지원한다. 리조트 회사가 왜 미디어 아트를 후원할까? 파라다이스 그룹이 생각하는 휴양이란 그저 놀고 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휴양지에서 접하는 예술적 경험이 영감을 일으키고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기업 철학에 스며 있다. 새로운 체험 < 운석 감정(Meteorite Appraisal) > . 박근호(참새). 2023. 크리스털 비즈, 철 프레임, 모터, LED. 600 × 240 × 240 ㎝. 가상의 운석이 떨어진 상황을 가정하고, 이 운석이 에너지를 어떻게 방사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에너지 입자와 공명하는 크리스털과 빛 모듈을 설치했다. 2023년 파라다이스 아트랩 참여 작품이다. 박근호(참새)는 물성으로 공간을 채우는 미디어 작업을 주로 선보인다. < 에코스피어 > . 룸톤. 2023. VR, 비디오 설치. 4분. 김동욱(Kim Dong-wook, 金東昱)과 전진경(Jeon Jin-kyung, 田珍卿)으로 구성된 룸톤의 VR 신작은 2023년 파라다이스 아트랩 전시작 중 하나로, 인간과 우주의 상호 연결성과 존재의 의미를 은유적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통해 풀어낸다. 룸톤은 가상현실과 디지털 게임을 매체로 삼아 실제 감각과 가상 감각 사이에서 발생하는 몰입 경험에 주목한다. 같은 시기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는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키아프 서울(KIAF Seoul)이 한창이었다. 고가(高價)의 명화들 수천 점 사이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작품이 관람객들의 눈에 들어왔다. LG전자의 올레드(OLED, 유기발광다이오드) TV로 다시 태어난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Kim Whanki, 金煥基, 1913~1974)의 점화(點畵)였다. 붉은 점이 겹겹의 동심원을 이루는< 14-III-72 #223 > 이 초대형 무선 올레드 TV 위에서 영롱하게 빛났고, 선명도와 거리감의 한계를 뛰어넘은 몰입감으로 관객들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생전에 색과 형(形)이 만드는 파장과 소리, 움직임에 주목했던 김환기가 이 작품을 봤다면 무척 놀랐을 성싶다. LG전자의 LG 올레드는 올해 프리즈 서울의 헤드라인 파트너로 참여했다. 상당히 놀라운 사건이다. 20년 역사의 프리즈와 줄곧 메인 스폰서로 동행한 글로벌 금융 기업 도이치뱅크가 이례적으로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아트 바젤은 UBS, 프리즈는 도이치뱅크처럼 아트페어의 오랜 파트너는 대부분 은행이다. 미술품 구매층과 은행의 VIP 고객이 고액 자산가로 겹치며, 투자 자산으로서 미술품의 가치가 높은 까닭이다. 금융기업이 아닌 전자 회사이자 기술 기업인 LG 올레드는 왜 예술과 손잡게 됐을까? 제조업의 대전환을 가져온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더 이상 제품만 파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기업의 고유한 문화를 팔아야 합니다. 제품만 파는 기업은 문화를 파는 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한다고 말한 경제학자도 있죠.” 미디어 아트로 특화한 울산시립미술관의 개관을 이끈 후 부산시립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서진석(徐眞錫) 관장은 ‘네오-바우하우스(Neo-Bauhaus)의 시대’를 주장하며 이같이 말했다. 심미적 예술과 기능적 기술을 접목하려 했던 20세기 초 바우하우스가 신기술 시대에 다시 등장했다는 의미다. 그는 “기술 발달이 현실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우리 삶 자체를 변화시키게 된다”면서 “테크놀로지가 물리적 기기 등으로 구현될 때 기술적·기능적 역할만 갖는 게 아니라 예술적 감수성과 함께 우리 삶에 침투하면 더욱 깊이 파고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술 발달 자체는 기능적 환경만 만들 뿐 여기에 예술이 더해져야 문화적 환경이 조성된다.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최첨단’이라는 진부한 표현 대신 ‘새로운 체험’을 부르짖는 이유다. 얇고 투명한 올레드가 활용된 사례는 박물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5월부터 10월까지 개최했던<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 > 는 고대 신라와 가야 시대의 무덤 부장품이던 토기를 대거 선보인 전시였다. 박물관 측은 이 전시를 기획하면서 LG의 투명 올레드를 제공받았다. 진열장 유리인 줄 알았던 두께 17㎜의 모니터에서 1600년 전 사람들의 생활상이 영상으로 투사될 때 어른들은 감탄하고 어린이들은 신기한 듯 가까이 다가섰다. 이 박물관의 상설전시관 그리스·로마 전시실에서도 번개가 번쩍이는 구름 사이로 제우스 흉상이 나타나는 장면을 LG 올레드의 기술력으로 만날 수 있다. 첨단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지원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LG전자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2027년까지 향후 5년간 ‘LG-구겐하임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고 ‘LG 구겐하임어워드’를 신설했다. 매년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혁신적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를 선정해 10만 달러를 시상하기로 한 것이다.   환경의 진화 홍콩의 대형 쇼핑몰 하이산 플레이스에 위치한 샤우트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이 삼성전자의 라이프스타일 TV ‘더 프레임(The Frame)’을 활용한 디지털 아트 전시회< 더 프레임 디지털 아트 갈라(The Frame Digital Art Gala) > 를 관람하고 있다. 이 전시는 삼성전자와 샤우트 갤러리가 협업해 2022년 11월부터 12월까지 열렸다. < 진동클럽 2020 > . 오도함(Oh Do-hahm, 吳嵞闞). 2020. PVC 에어볼, 촉각 변환기, 베이스 셰이커, 앰프 가변 크기. 현대자동차그룹이 후원하는 창의 인재 플랫폼 제로원(ZER01NE)이 2020년 진행한 오픈 스튜디오의 전시작 중 하나. 음악, 공연 기획, 미술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오도함은 진동을 통해 음악을 촉각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장치를 선보였다. 침대 매트리스에 스피커를 붙이고 진동으로 음악을 느끼는 한 청각 장애인의 감상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삼성전자는 기술력을 이용해 유명 미술관의 명화를 안방으로 갖고 들어왔다. 삼성전자의 라이프스타일 TV 라인 중 하나인 더 프레임(The Frame)을 이용해 예술 작품을 구독하는 서비스 ‘삼성 아트스토어’가 그것이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과 갤러리가 소장한 명화들을 비롯해 사진·일러스트·디지털 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 약 2,300점을 4K 화질로 제공한다. TV 기술력을 통해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일상 속에서 더 가까이 예술향을 느낄 수 있게 하려는 전략이다. 미디어아트와 손잡은 기술 기업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현대자동차다. 이 기업은 ‘아트랩’이라는 별도 부서를 두고 초국가적 관점과 시대적 변화에 대한 담론을 공유한다. 미국 LA카운티미술관과 협력한 ‘라크마 아트 앤 테크놀로지랩’, 블룸버그 미디어와 협업한 프로그램 ‘아트 앤 테크놀로지’를 운영한다.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창작과 전시를 지원하는 ‘VH어워드’와 창의 인재 플랫폼 ‘제로원’, 미디어 아트 큐레이터 지원 프로그램인 ‘현대 블루 프라이즈 아트 앤 테크’도 명성을 쌓아가는 중이다. 이 같은 후원에 대해 현대자동차 측 관계자는 “기술이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그 자체로 진화하고 있으며 인간과 기계의 관계 또한 재정립이 필요한 시대적 요구가 있다”면서 “최근 인공 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얼마나 창의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된 만큼 예술과 기술의 접점에서 현재를 검토하고 인류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력으로 경쟁하던 기업들이 이제는 기술 너머의 변화를 주목한다. 소비자 심리와 아트 프리미엄 효과를 연구해 온 한여훈(韓餘薰)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2000년 이전의 기업들은 성능으로 경쟁했지만, 이제는 기술 격차가 미미해졌기에 ‘완벽한 혁신’만이 차별화를 가능하게 한다”면서 “동시대 예술가들은 더 이상 테크닉이 강조된 기술적 재현에 몰두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새로운 형태의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기업의 혁신 개념과 접점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올레드 기술을 제품에 적용하면 TV로 한정되지만, 작품에 접목할 경우 더 큰 가능성을 갖게 된다”면서 “기술 혁신이 매력적으로 정립되려면 그 기술을 쓸 수 있는 상상력과 창조적 과정이 필요하다. 예술가가 이 역할을 한다면 기술의 활용 범주는 무한해진다”고 덧붙였다. 기술과 손을 맞잡은 예술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조형 예술 장르가 생존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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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 예술 장르가 생존하는 방법 시각 예술에서 기술은 언제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예술의 형식과 내용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그 정의까지 바꾸기 때문이다. 디지털 생태계가 공고해진 지금, 아날로그 제작 방식에 의존하던 회화, 조각, 공예 같은 예술 장르들도 이제는 기존 문법에서 벗어나 디지털 기술을 수용하며 변신 중이다. 2016년, 서울 서초동의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렸던 잭슨 홍의 개인전 < Autopilot > 전시 전경. 작가는 디자인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으며, 그가 만들어 내는 오브제들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새로운 의미들을 발생시킨다. ⓒ 페리지갤러리 조형 예술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기 시작한 시기는 애플사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널리 보급하던 1990년대이다. 2000년대에는 CNC 기술과 3D 프린터가 수용되었고, 2020년 이후에는 이미지 인공지능(AI image generator) 상용화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디지털은 세상을 정보화하고 탈(脫)사물화한다. 그래서 사물화를 통해 물질성을 부여하는 데 집중하는 조형 예술 작품은 일견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고전적인 예술 장르들도 기술을 적극적으로 비평하고 재해석함으로써 해법을 모색한다. 특히 데이터에 의존하는 디지털 기술은 작업의 효율성을 높여 주고 노동 강도를 줄여 주기 때문에 동시대 작가들의 기술 수용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980~90년대에 출생한 젊은 작가들 중에는 디지털 기술의 한계를 실험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이들이 상당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기술 수용으로 인해 장르 간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통적 미술 장르의 존립에 위협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질문하며 예술의 존재 조건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회화는 조각이 되고, 조각은 데이터가 되며, 공예는 회화가 된다. 재료와 기법이 중요했던 전통적 미술의 규범에서 벗어나 데이터와 사물을,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자유롭게 오가는 작업들은 이 시대 전통 장르들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 김한샘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캔버스에 유화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낯설었다”고 밝혔다. 디지털 세대인 그에게는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졸업 후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는 16비트 RPG 그래픽 게임 형식으로 자신의 디지털 드로잉을 디자인한다. 우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림을 그린 후 이 데이터를 종이에 출력한다. 그리고 인쇄물을 돌이나 크리스털, MDF 같은 물질적 매제와 결합함으로써 데이터를 디지털 세계에서 아날로그 환경으로 옮겨 온다. 그는 출력물을 부착할 액자나 태블릿도 직접 제작하는데, 이것 또한 그림과 함께 작품의 서사를 구성한다. 그의 수공예적인 작업 방식은 보는 이들에게 촉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만질 수 있는 데이터’라는 매우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다. < (황금 인어) > . 김한샘. 2022. 유리, 금박, 피그먼트 프린트, 레진, 사금석(砂金石). 7.5 × 7.5 × 6 ㎝. < 덤벼 > . 김한샘. 2022. 유리, 금박, 피그먼트 프린트, 레진, 무카이트(mookaite). 5 × 9.5 × 8 ㎝. < 숲속의 보석 > . 김한샘. 2021. 아크릴, 금박, 피그먼트 프린트, 레진. 54 x 31 x 16 cm. 김한샘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접했던 하위문화, 그 중에서도 중세 판타지 서사를 픽셀 그래픽으로 구현하며 이 과정에서 데이터가 촉각적인 물성으로 변환한다. ⓒ 김한샘 < 철 속의 악마 > . 김한샘. 2021. 알루미늄박, 피그먼트 프린트, 레진. 97 x 80 x 11 cm.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잭슨 홍은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이다. 그는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사물의 가변성, 그리고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또한 사물이 제조되는 방식을 시각화하는 데도 관심을 두고 있는데, 이는 작품의 기초가 데이터이기에 가능하다. 작가는 산업디자이너가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처럼 데이터를 먼저 구축한 후 이를 현실로 불러들인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데이터는 장인 정신과 기술이 필요한 제작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철판은 데이터에 따라 CNC 기계를 통해 재단되고, 기술자의 손길을 거쳐 절곡(折曲), 용접되면서 형태를 드러낸다. 잭슨 홍의 작품에서 데이터는 완벽한 도구인 동시에 엄격한 질서와 규범을 비껴가려는 작가의 의지도 표출한다. 예를 들어 < Cross Hatching > 연작의 경우 의도적인 디지털 오류를 활용하여 도면을 제작했다. 규격화와 오차 없음에 저항하며 다른 해석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도면은 단순한 직능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작품이며 상상 속의 엑스레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2018년 열린 < 잭슨 홍의 사물 탐구 놀이 > 전시 풍경.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 전시에서 작가는 사물의 용도를 뒤바꿈으로써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사진 김상태(金相泰)   3D 프린팅 방식 < 만족이 프로젝트 > . 김지민. 2021. PLA 필라멘트, 스테인리스강선. 가변 설치. 2021년,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유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던 김지민의 개인전 <𝑬𝑵𝑽𝒚⁷>의 전시 모습. 그는 최근 3D 프린팅을 적용해 현대 사회의 소비 욕망을 풍자하는 작업들을 보여 준다. 김지민 제공 김지민은 조각을 전공했는데, 브랜드 라벨을 노동집약적인 바느질 수공으로 이어 붙이던 제작 방식을 오랫동안 선보였다. 최근 소비 사회의 심리 현상을 작품 주제로 삼으면서 작업 형태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했다. 특히 < 만족이 >프로젝트는 3D 프린팅이 매우 유효한 전략이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동일한 형상의 아이콘들을 빠르게 제작할 수 있었기에 군집 표현이 가능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주제 의식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3D 프린팅이 만능일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전통적인 조각 제작 방식도 결합한다. 예컨대 < Skull >연작에서는 전통적인 조소 기법으로 원본을 제작했고, 이 원본을 3D 스캔을 통해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여 또다른 작품인 < Coloring N. 108 > 을 출력했다. 작가는 < Inside Out >같은 대형 작업에도 동일한 데이터를 적용했다. 디지털 데이터는 얼마든지 다른 스케일로 출력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동양화와 금속 공예를 공부한 오세린은 다양한 요소와 기술을 결합하여 초현실적인 시각 효과를 만들어 낸다. 지난해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바이파운드리에서 열렸던 개인전 < 숲 온도 벙커 > 는 도자(陶瓷) 작업과 3D 프린팅 출력물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구성한 전시였다. 환경 문제를 대하는 인간의 모순을 우화적으로 해석한 전시작들은 ‘모방과 속임수’라는 초기 작업의 주제 의식과 여전히 맞닿아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멀리서 봤을 때 어느 부분이 도자 작업이고 어떤 부분이 3D 프린팅으로 제작되었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작가는 이 작업의 3D 프린팅을 위해 인터넷상의 오픈소스 공간 모델링 데이터를 사용했다. 3D 소프트웨어를 통해 데이터를 결합 및 변형했고, 이 데이터를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재료를 녹는점 이상의 온도로 녹인 후 일정한 두께로 선을 그리면서 형상을 제작하는 방식) 타입의 프린터로 출력했다. 결과물은 초현실적으로 보이는데, 이는 해상도가 다른 요소들을 동일한 조건으로 출력했기 때문이다. 오세린은 ‘원본’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어떻게 복제되고 변형되는지를 관찰해 온 작가이다. 최근에는 전통 공예 기법과 최신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주제 의식을 확장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이태원 바이파운드리에서 2022년 열렸던 개인전 < 숲 온도 벙커 > 의 전시 장면. ⓒ 노경(Roh Kyung, 盧京)   직조된 픽셀 < Sudden Rules-Bay-2 > . 차승언. 2017. 폴리에스테르사(絲), 염료. 230 × 455 ㎝. 차승언의 작품은 언뜻 보면 평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조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20세기 미술의 유산을 되돌아보는 한편 동양과 서양, 시각과 촉각, 정신과 물질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오늘날 의미 있는 추상회화가 무엇인지 탐구한다. ⓒ 차승언 차승언은 전통적인 직조 기술을 현대적인 맥락으로 재해석한다. 섬유예술과 회화를 전공한 작가는 “직조(織造)의 방법으로, 20세기 추상회화 중 관심 있는 작품들을 다시 만들어 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헬렌 프랑켄탈러의 < The Bay > 와 한국 이성자 작가의 < 갑작스러운 규칙 > 을 뒤섞은 < Sudden Rules-Bay-2 > 가 대표적이다. 그는 컴퓨터로 이성자 작가의 작품을 데이터화하여 픽셀의 면 구성에 따라 직조 데이터로 다시 설계한 다음 자카드 직기로 출력했다. 그런 다음 출력된 직물에 프랑켄탈러의 캔버스 얼룩 빨아들이기 기법을 적용했다. 이는 직조와 염색을 통해 질서와 우연이 한 화면에 공존하도록 의도한 실험이었다. 그녀의 작업에서는 언어와 직조의 관계에 대한 질문도 중요하다. 작가는 언어를 데이터화하고 코드화하여 직조 대상으로 사용했다. “Before your birth”와 “Your love is better than life.” 같은 문장을 변환기로 코드화하고, 이를 직조 도면으로 설계한 후 이를 토대로 직조했다. 언어와 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실험인 셈이다.

누가 한국의 미디어 아트 신을 만들었나?

Features 2023 WINTER

누가 한국의 미디어 아트 신을 만들었나? 수십 년 전 미디어 아트는 그것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하는 낯선 개념이었고, 예술 분야에서 변방에 위치했다. 그러나 기술 발전과 더불어 어느새 미디어 아트는 문화예술의 중심부에 서 있다. 이 장르가 주류가 되기까지 단지 첨단 기술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으로서 미디어 아트의 가능성을 탐색해 온 각계각층의 노력이 한국 미디어 아트의 오늘을 만들었다. < 딜리버리 댄서의 구 > . 김아영. 2022. 단채널 비디오. 25분. 택배 서비스 회사에 다니는 한 여성이 또 다른 자신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아영(Ayoung Kim, 金雅瑛)은 주로 이주와 난민, 자본주의의 모순 등을 주제로 삼아 영상, VR,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풀어내는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 김아영 올해 6월, 오스트리아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지닌 페스티벌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에서 김아영 작가가 <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 로 골든 니카상을 받은 것이다. 이 상은 1987년 신설된 국제 경쟁 부문인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의 대상 격으로 한국인으로서는 첫 수상이기에 의미가 한결 더했다. 비슷한 시기, 강이연 작가는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가 진행하는 ‘메이드 오브 메이커스(Made of Makers)’에 선정되었다. 190년 역사를 지닌 시계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가 주목받는 창작자 및 장인들과 협력해 진행하는 행사다. 그녀는 올해 주제였던 ‘황금비율’에 대해 < 오리진(Origin) > 이라는 작품으로 응답했는데 아시아 작가가 선정되기는 처음이었다. 최근 들어 한국의 미디어 아트 작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는 하루아침에 갑작스레 일어난 일은 아니다. 생소한 분야였던 미디어 아트를 개척한 선구자들을 비롯해 창작자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한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이 일구어 낸 토대는 오늘날 젊은 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창작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선구자들 < 무제(TV 돌탑) > . 박현기. 1980. TV, 돌 17조각. 가변 크기. ‘한국적인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라 일컬어지는 박현기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자연과 인공, 실재와 허구의 이분법적 경계를 구조화한 작품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칭기즈 칸의 복권 > . 백남준. 1993. CRT TV 모니터 1대, 철제 TV 케이스 10대, 네온관, 자전거, 잠수 헬멧, 주유기, 플라스틱관, 망토, 밧줄,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LD. 217 × 110 × 211 cm. 동양과 서양을 연결했던 과거의 실크 로드가 현대에는 광대역 전자 고속도로로 대체된 상황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 Nam June Paik Estate,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누구보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영향을 준 작가를 꼽는다면 단연 백남준(Nam June Paik, 白南準)일 것이다. 그는 독일에서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공부하며 동시대 전위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에 관심을 가졌다. 그것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 독일 부퍼탈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선보였던 <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 — Electronic Television) > (1963)이다. 그는 이 전시를 시작으로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TV를 조작하고 영상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 일방적 정보 송출과 수용이라는 매스미디어가 가진 독점적 위계를 무너뜨렸다. 이후 그는 비디오 영상과 조각, 설치를 결합했고 비디오 신시사이저(synthesiser)라는 그만의 독창적인 이미지-영상 리믹스 기계를 개발하는 한편 음악과 신체를 연결하는 작업 같은 독보적 행보를 지속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며 상호 영향 관계를 가진 사이버네틱 세계를 예견했다. 또한 다자간 소통과 연결을 시도하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상황에 대해서 연구했는데,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자연과 기술의 공존, 동양과 서양의 문화 융합을 이루어 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예견을 풍자하며, 뉴욕과 파리를 연결한 인공위성 생중계 TV 쇼 < 굿모닝 미스터 오웰 > 이 송출되던 바로 그 순간 말이다. 그의 활동과 선언은 예언에 가까운 예측이었지만, 미래와 명백한 접점을 만들었기에 지금까지도 소환되며 계속 이야기된다. 한편 1970년대 국내 비디오 아트의 개척자 중 하나인 박현기(Park Hyun-ki, 朴炫基)는 백남준과는 다른 방식으로 TV를 활용했다. 그는 TV를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과 함께 쌓는 설치 작업을 보여 줬다. TV 화면에는 돌이나 나무가 송출되며 현실과 가상이 연결되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를 통해 그는 ‘실재’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인식과 지각을 확장했다. 주목할 점은 그가 ‘쌓기’라는 한국의 전통적 축조 방식, 즉 건축적 방법론을 접목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문명과 자연이라는 두 매체 간 충돌을 통해 새로움을 주고 환기시키는 전략이 내재한다.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문 기관의 등장 < 보편의 조적(組積) > . 진기종(Zin Ki-jong, 陳起鍾), 차동훈(Cha Dong-hoon, 車東訓), 강지영(Kang Ji-young, 姜志詠). 2023. 단채널 비디오. 6분 36초.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KF XR갤러리에서 열린 <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 > 의 전시작 중 하나. 가상의 최첨단 3D 프린터와 전통 도자기를 매개로 생물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고찰한 작품이다. XR갤러리 개관을 기념해 열린 이 전시는 환경을 주제로 삼아 VR, AR, 인터랙티브 아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 한국국제교류재단 < 아르고스(Argos) > . 김윤철(Yunchul Kim, 金允哲). 2018. 가이거 뮐러 튜브(Geiger Müller tube), 유리, 알루미늄, 마이크로 컨트롤러. 48 × 40 × 40 ㎝. 올해 9월, 아트센터 나비가 미디어 아트의 켈렉팅을 목적으로 개최한< 일시적인 것의 방 – 컬렉팅 미디어 아트(Cabinet of the Ephemeral – Collecting Media Art) > 전시작 중 하나. 이 작품은 41개의 채널로 구성된 뮤온 입자 검출기이며, 우주에서 방출된 뮤온 입자를 검출할 때마다 플래시를 터트리며 반응한다. 김윤철은 유체역학과 메타 물질의 예술적 잠재성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아트센터 나비 제공, 사진 서울특별시, (사)서울특별시미술관협의회 2000년은 한국 미디어 아트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Seoul Mediacity Biennale), SK 워커힐 미술관을 재개관한 아트센터 나비, 그리고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 위치했던 일주(一洲)아트하우스(Ilju Art House)가 등장한 해이기 때문이다. ‘미디어_시티 서울’이라는 명칭을 달고 출발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올해로 어느덧 12회를 맞았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미술의 동시대성과 실험성에 주목하며 오늘까지 이어진 공공 행사이다. 개최 당시에는 한국의 정보통신기술과 빠른 기술 발전을 널리 알리기 위한 정책적 목적으로 인해 다소 부침이 있었지만, 현대 미술의 한 영역인 미디어 아트의 의의와 흐름을 일반에 인식시키는 데 일조했다. 같은 해 출범한 아트센터 나비는 전통적 미술 장르를 다루던 기존 워커힐 미술관을 미디어 아트 전문 기관으로 재개관한 곳이다. 최신 기술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창작자를 지원한다. 미디어 아트가 생소하던 21세기 초, 새로움을 추구하던 선구자들이 모여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힘을 얻으며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네트워크의 장으로서 중요한 입지를 가진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이곳의 지원으로 조성된 미디어 아트 커뮤니티 INP(Interactivity & Practice)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중견 작가들 상당수가 거쳐갔을 정도다. 오늘날 미디어 아트가 가지는 다양성의 토대를 다진 중요한 토양이라 할 수 있다. 역시 같은 해 개관한 일주아트하우스는 아트센터 나비와 유사하게 그 당시 토대와 이해가 부족했던 미디어 아트 영역에 자원과 네트워크를 제공한 기관이었다. 디지털 문화에 대한 해석을 보여 주는 미디어 갤러리, 미디어 아트 관련 영상 자료와 간행물을 수집하여 열람할 수 있도록 조성한 아카이브, 그리고 개인이 소유하기 어려웠던 미디어 장비에 대한 지원과 해당 기술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스튜디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곳은 2006년 폐관하기 전까지 미디어 아트의 공공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었으며, 창작자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진행했다. 이곳에서 운영했던 신진 작가 발굴 및 지원 프로그램 ‘미디어 레이더스(Media Raiders)’는 역량 있는 작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다양한 지원 사업 < 드로잉 수트 02 > . 이인강(Inkang Lee, 李寅康). 2022. 착용형 외골격 기술을 이용한 원격 다중 연동 드로잉 수트, 퍼포먼스, 3채널 영상. 15분.< Drawing Suit 02 > . Inkang Lee. 2022. Interactive Drawing Performance, 3 Channel Video. 15min. 아마추어 권투 선수이기도 했던 이인강은 자신이 겪었던 부상(負傷) 경험에서 착안해 기계를 결합해 신체를 확장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문화재단이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술 창작의 현주소를 제시하는 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2(Unfold X 2022)’의 전시작. 동작 데이터를 코드화하여 아티스트와 참여자의 협업으로 새로운 드로잉을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 서울문화재단 아시아 문화 교류와 연계를 취지로 2015년 전라남도 광주에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문화창조원 창∙제작 센터라는 융복합 창작 기관을 운영 중이다. 이곳은 첨단 기술, 문화적 다양성, 아시아 전통을 창의적으로 연계 및 표현하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연구, 제작, 전시, 유통한다. 예술가와 디자이너, 엔지니어, 그리고 연구자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한편 ‘다빈치 아이디어 공모’는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예술 창작 공간 중 하나인 금천예술공장에서 2010년 시작되었다. 기술 기반 창작 아이디어 지원 사업으로, 다른 기관의 지원 사업들과 달리 산업화가 가능한 기술 아이디어를 대상으로 공모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2014년부터는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을 표방하며 해외 작가 초청을 비롯해 강연, 개막 행사, 워크숍 등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구성했다. 현재는 첨단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예술 창작의 현주소를 제시하기 위해 금천예술공장에 한정하지 않고 서울문화재단이 주축이 되어 ‘언폴드 엑스(Unfold X)’로 개편 운영하고 있으며, 융합 예술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백남준아트센터, 현대자동차의 제로원데이,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의 파라다이스 아트랩 등이 국내 미디어 아트 현장을 한층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중이다. 미디어 아트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 지금, 일시적 유행으로 지나가거나 키치한 창작물이 양산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술에 대해서 동시대적 의미와 가능성, 그리고 위험성 같은 본질적 문제를 탐색하는 일은 중요하다. 미디어 아트는 그러한 탐색 과정과 결과를 가시화하는 예술 활동으로서 여전히 의미 있다. 미디어 아트는 예술의 최전선이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그리고 그것이 긴밀히 기능하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일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시장

Features 2023 AUTUMN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시장 한국의 전통시장은 17세기 이후 상업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과거에는 특정 기간에만 열리는 시장이 일반적이었지만,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현재와 같은 상설 시장이 보편적 형태로 자리 잡았다. 길게는 수백 년에서 짧게는 수십 년까지 저마다의 역사와 특징을 지닌 채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전통시장을 소개한다. 국내 최대 수산물 전문 시장인 자갈치시장의 모습. 회를 비롯해 갖가지 수산물을 판매한다. 특히 이곳을 대표하는 먹거리인 곰장어 구이는 고추장으로 매콤하게 양념한 곰장어를 석쇠에 구워 먹는 음식으로, 큰 인기에 힘입어 전국의 포장마차로 확산되었다. ⓒ 한국관광공사(Korea Tourism Organization) 과거에는 관청 소재지, 수도, 지방 등 장터가 열리는 장소에 따라 각각의 시장을 가리키는 명칭이 달랐다. 또한 언제든 이용할 수 있었던 상설 시장과 일정한 기간을 두고 열렸던 정기 시장처럼 장이 열리는 시기에 따라서도 구분했다.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농경 사회에서는 물품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상설 시장보다는 정기 시장이 더 일반적이었고, 정기 시장 중에서는 닷새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한편 대부분의 시장에서는 거래 품목에 제한이 없었지만 가축이나 곡물, 땔감, 약재 등 특정 상품만 거래하는 특수 시장이 발달하기도 했다. 그중 17세기에 개설된 대구(大邱) 약령시(藥令市)는 지금까지도 존속해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 시장이 처음 나타난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1145)에는 신라 제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의 명령으로 490년 수도 경주(慶州)에 상설 시장을 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통해 그즈음 또는 그 이전에 시장의 형태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1392~1910) 시대 초기에는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인해 시장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17세기에 접어들어 화폐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시장도 부흥하기 시작했다.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저술한 백과사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의하면 19세기 초에는 전국적으로 1,000개가 넘는 정기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근대화를 거치면서 상설 시장이 전국적으로 늘어났고, 1970년대 말에는 국민 소득 증가의 여파로 상설 시장이 700개를 넘어서면서 정기 시장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Small Enterprise and Market Service)이 2022년도에 발표한 ‘전국 전통시장 현황’을 보면 상설 시장과 오일장을 합쳐 현재 약 1,400개의 전통시장이 존재한다. 한국의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잃었지만, 시설을 현대화하고 시대에 맞는 운영 방식을 도입하면서 활로를 모색 중이다. 남대문시장 서울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남대문시장은 하루 평균 30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한다. 약 1만 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으며 식품, 잡화, 농수산물, 화훼, 공예품 등 1,700여 종에 달하는 상품이 판매된다. 사진은 남대문시장의 주방 용품 가게이다. ⓒ 서울관광재단(Seoul Tourism Organization) 과거에는 관청 소재지, 수도, 지방 등 장터가 열리는 장소에 따라 각각의 시장을 가리키는 명칭이 달랐다. 또한 언제든 이용할 수 있었던 상설 시장과 일정한 기간을 두고 열렸던 정기 시장처럼 장이 열리는 시기에 따라서도 구분했다.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농경 사회에서는 물품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상설 시장보다는 정기 시장이 더 일반적이었고, 정기 시장 중에서는 닷새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한편 대부분의 시장에서는 거래 품목에 제한이 없었지만 가축이나 곡물, 땔감, 약재 등 특정 상품만 거래하는 특수 시장이 발달하기도 했다. 그중 17세기에 개설된 대구(大邱) 약령시(藥令市)는 지금까지도 존속해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 시장이 처음 나타난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1145)에는 신라 제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의 명령으로 490년 수도 경주(慶州)에 상설 시장을 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통해 그즈음 또는 그 이전에 시장의 형태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1392~1910) 시대 초기에는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인해 시장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17세기에 접어들어 화폐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시장도 부흥하기 시작했다.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저술한 백과사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의하면 19세기 초에는 전국적으로 1,000개가 넘는 정기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근대화를 거치면서 상설 시장이 전국적으로 늘어났고, 1970년대 말에는 국민 소득 증가의 여파로 상설 시장이 700개를 넘어서면서 정기 시장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Small Enterprise and Market Service)이 2022년도에 발표한 ‘전국 전통시장 현황’을 보면 상설 시장과 오일장을 합쳐 현재 약 1,400개의 전통시장이 존재한다. 한국의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잃었지만, 시설을 현대화하고 시대에 맞는 운영 방식을 도입하면서 활로를 모색 중이다. 동대문시장 동대문시장은 1990년대 들어 두타몰(Doota Mall), 밀리오레(Migliore) 등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점차 현대화되었으며, 200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관광특구(觀光特區)로 지정했다. 이곳의 하루 유동 인구는 100만 명으로 추정한다. ⓒ 셔터스톡(Shutterstock) 일반적으로 종로5가부터 청계8가까지 약 2㎞ 구간에 위치한 전통시장과 대형 상가들을 한데 아울러 동대문시장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18세기에 번성했던 배오개시장이 원류이다. 난전 상인들에 의해 개척된 배오개시장은 초기에는 상업용으로 재배된 채소들이 주로 거래되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실향민들이 이 일대에 정착했는데, 이들이 구호물자로 옷을 만들어 팔면서 의류 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초에는 섬유와 의류를 취급하는 평화시장이 개장했고, 1970년에는 원단부터 의류 부자재, 액세서리를 비롯해 혼수품을 판매하는 동대문종합시장이 문을 열었다. 2002년에는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전통시장과 현대적 쇼핑센터가 공존하는 패션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묘(東廟) 벼룩시장 1980년대 상권이 형성된 동묘벼룩시장은 구제 옷과 골동품, 중고 가구, 고서(古書) 등 다양한 물품을 판매한다. 사진은 이곳에 자리한 장난감 가게로, 오래된 피규어와 게임기들이 가득해 복고 감성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다. ⓒ 서울관광재단(Seoul Tourism Organization) 서울 숭인동(崇仁洞)에 위치한 동관왕묘(東關王廟)는 중국 삼국 시대의 장군인 관우(關羽)를 모시는 사당이며, 보통 줄여서 ‘동묘’라고 말한다. 동묘 담장을 따라 형성된 벼룩시장에서는 의류, 신발, 골동품, 잡동사니 등 중고 물품이 거래된다. 과거에는 노년층이 주로 찾았지만, 최근 개성 있는 패션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방문하면서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이곳에 장터가 형성된 시기는 15~16세기로 채소를 팔던 소규모 시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과 같은 모습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고, 2000년대 초반 청계천 복원 공사로 터전을 잃은 인근 황학동(黃鶴洞) 벼룩시장 상인들이 동묘로 몰려들면서 규모가 더욱 커졌다.  통인(通仁)시장 서울 서촌(西村, 경복궁 서쪽 마을) 지역에 위치한 통인시장은 전형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으로 7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엽전으로 시장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재미있는 서비스를 운영해 젊은 층에 인기가 높다. ⓒ 한국관광공사(Korea Tourism Organization) 서울 경복궁 근처 주택가에 자리 잡은 통인시장은 1940년대 초 공설(公設) 시장에서 출발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이 지역에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옛 공설 시장 주변에 상점과 노점들이 들어서면서 시장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통인시장은 이른바 ‘엽전 도시락’으로 유명하다. 조선 시대에 유통되던 동전을 모티브로 엽전을 제작하여 이 엽전으로 시장 음식을 구매해 먹을 수 있도록 한 서비스이다. 또한 간장과 고춧가루 양념을 바른 떡을 기름에 볶아 먹는 ‘기름 떡볶이’도 이곳의 명물이다.  자갈치시장 우리나라 최대의 해양 물류 도시 부산(釜山)의 남쪽 해안가에 조성된 자갈치시장은 이 지역의 랜드마크이다. 국내 최대 수산물 전문 시장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각종 어패류와 활어류를 비롯하여 건어물류가 판매된다. 시장 안에는 싱싱한 횟감을 먹을 수 있는 횟집들도 조성되어 있다. 자갈치시장이 언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과거에 어민들이 작은 고깃배를 띄워 잡은 생선을 팔기 위해 자갈이 깔려 있던 해변에 좌판을 벌였던 것이 시초로 알려졌다. 이 시장은 1920년대 초반 상설화되었고 1970년대에 정식 시장으로 개장했다.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자갈치시장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이기도 하다.  서문(西門)시장 현재 4,0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는 대구 서문시장은 오랫동안 원단(原緞) 시장으로 명성을 크게 얻은 곳이다. 최근에는 금, 토, 일 저녁 7시부터 늦은 밤까지 운영되는 야시장(Seomun Night Market)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대구광역시 중구청 대구(大邱)광역시의 서문시장은 조선 후기 평양(平壤), 강경(江景)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큰 3대 시장 중 하나였다. 초기에는 매월 두 번 장이 서는 정기 시장 형태였으나, 1920년대 공설 시장으로 운영되면서 상설화되었다. 주단(紬緞)이나 포목(布木) 등 직물이 주로 거래되는 이곳은 국내 섬유 산업의 발전을 이끈 것으로도 평가된다. 근래에는 2016년 개장한 야시장이 유명하다. 총 350m 길이의 거리에 늘어선 80여 매대에서 다양한 먹거리와 상품을 판매해 먹을거리는 물론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TV 드라마 < 김비서가 왜 그럴까(What's Wrong with Secretary Kim, 金秘書爲何那樣) > (2018)에도 이곳의 야시장 풍경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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