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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묘한 빛으로의 초대, 김영준 나전칠기 아티스트

 People >  오묘한 빛으로의 초대, 김영준 나전칠기 아티스트
오묘한 빛으로의 초대, 김영준 나전칠기 아티스트



1.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나전칠기 아티스트 김영준입니다. 한때 동서증권의 증권맨으로 3년간 매주 월요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식 전망과 투자 전략을 소개할 만큼 승승장구하며 크게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주식시장에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판단과 함께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에 걸리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과감하게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전칠기를 선택하게 된 것도 증권사에서 배운 ‘남들이 가는 반대편에 꽃길이 있다’라는 말이 결정적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


2. 나전칠기에 입문할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나전칠기는 전복, 소라 등의 껍데기를 벗긴 후 여러 형태로 오려 기물의 표면에 감입시켜 꾸미는 칠공예의 장식기법입니다. 당시 사양산업으로 나전칠기 종사자들의 폐업이 속출했지만, 전통공예인 만큼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전칠기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상황이 녹록지 않았고, 기존의 나전칠기에 새로운 디자인으로 생명을 불어넣기에는 아쉬움이 많아 LA디자인아트센터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 나전칠기 가게를 냈지만 파산에 가까운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 방향을 틀어 예술품을 제작하는 나전 아티스트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이후 이탈리아 도무스아카데미와 일본 옻칠 장인에게 옻칠과 정제 기술을 배웠고, 이러한 노력으로 옻칠 정제 특허를 받기도 했습니다.


3. 작가님이 생각하는 나전칠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물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나전칠기 고유의 오묘한 빛입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신비함이 있어요. 전복, 소라, 진주조개 등의 껍데기를 벗겨 가공하면 매우 오묘한 빛이 도는데, 여기에 몇 차례의 옻칠과 사포질을 반복하면 영롱한 자개 빛이 나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완성품은 각도에 따라서 다른 빛을 볼 수 있고, 아침·점심·저녁·밤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이처럼 페인트나 아크릴, 유화 등의 그림 도구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천연의 컬러가 빛으로 나온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고요. 그 아름다운 빛으로 하여금 제 작품을 보는 분들이 행복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빛을 비춰주는 삶을 꿈꿀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작품을 만들면서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4. 나전칠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신비로운 빛과 아름다움을 선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기존의 작업 방식과 다른 점이 있나요?

컬러 옻칠 덕분에 기존의 검은색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묘사가 가능해졌고,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드는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점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전칠기는 천년을 이어온 한국의 전통공예입니다. 예전에는 나전칠기로 장롱, 문갑 등을 만들었는데, 아파트 생활이 늘고 세대가 바뀌면서 귀하고 비싼 나전칠기 가구가 많이 버려졌습니다. 아무래도 현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옛날에는 기와집이나 한옥에 나전칠기 가구가 잘 어울렸지만, 환한 아파트에는 옛날 문양의 검은색 가구가 어울리지 않았던 거예요. 전통적인 나전칠기를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롭게 해석해야겠다는 생각에 컬러를 연구했고, 과감하게 비구상 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나전칠기를 가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예술 세계로 확장해 벽에 걸 수 있는 작품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갔고, 지금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5. 엑스박스(Xbox)와 아이폰 케이스, 프란치스코 교황 성좌를 제작했고, 힐러리 클린턴과 워런 버핏 등 유명 인사도 작가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빌 게이츠가 제 작품을 구매하고 작품을 의뢰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의 소개로 스티브 잡스와도 인연을 맺게 됐고요. 귀한 걸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그분들이 우연히 제 작품을 소유하게 됐을 뿐이고, 교황의 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작품이 특별히 뛰어났다기보다는 교황의 품성과 제 작품이 잘 맞아떨어져 선택됐을 뿐이에요. 모두 영광스러운 작품들이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가장 몰입해서 힘들게 만든 ‘국화문달항아리’입니다.


6. 현재 런던에 있는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상설 전시 중인데,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나요?

한국의 나전칠기를 영국에 알리기 위해 상설 전시 중이며, 현대화된 나전칠기, 예술로 승화된 작품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을 보여주되 변화된 모습, 새로움을 담은 작품을 위주로 전시했습니다. 코스모스, 벤치, 액자 등 나전을 현대화한 것도 있고 또 전통을 그대로 살린 작품도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결합이라는 콘셉트로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7.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전통공예인 한국의 나전칠기를 현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아트로 승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는 등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려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현재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데, 뛰어난 제자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생각의 울타리를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제자들이 더욱 새롭고 나은 작품으로 나전칠기를 발전시키고 변화시켜 나가리라 믿습니다. 그들이 나전칠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한국의 전통공예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길 바랍니다.

 

 

나전칠기로 제작한 Xbox


 

나전칠기 작품 ‘코스모스’


 

김영준 작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은 ‘국화문달항아리’


 

주영한국문화원에 전시된 나전칠기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