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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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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11

보고 듣고 마셔라! 동남아시아 팝과 맥주의 신선한 조합   글. 정윤범  EBS PD 여름의 이미지는 청춘, 활력, 수영, 초록, 휴가, 냉면, 바다. 이렇게나 좋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9월인데도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래서 맥주 생각이 났습니다. 아니,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시원한 맥주 말입니다. 이를테면 얼음을 넣어 먹는 태국 맥주(베트남에서도 얼음을 넣어 먹는다고는 하지만 태국이 제일 유명합니다)! ‘맥주 밍밍해지게 감히 얼음을 띄우다니’ 싶었지만, 먹어보니 참 맛있습니다. 아세안 국가의 맥주를 마시면서 해당 국가의 음악을 들으면 정말 좋으실 거라 짐작해보지만, 그것만으로는 혹시나 부족할 것 같아서 뮤직비디오가 있는 음악들을 소개해보았습니다. 보고, 듣고, 마시면서 뜨거운 여름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어떠실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곧 여름을 그리워하겠지만요!                                                            태국 인디 팝 밴드 욘라파의 “렛 미 고”가 수록된 ‘퍼스트 트립’ 앨범 커버 ©Warner Music 태국 Thailand 욘라파 – “렛 미 고” 태국하면 느껴지는 밝고 쨍쨍한 사운드의 음악입니다. 뮤직비디오를 보시면 음악의 질감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욘라파(YONLAPA)는 2018년 치앙마이에서 결성된 태국의 4인조 혼성 밴드입니다. 욘라파의 음악을 듣고 나면 청량한 기타 톤이 계속 맴돌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레트로한 바이브에 팝 느낌이 적절히 가미된 훌륭한 팀입니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무조건 내한 공연을 올 거라고 자신합니다! https://youtu.be/56bK56eiaDY     인도네시아 Indonesia 빠융 뜨두 – “버르두아 사자” 인도네시아의 도시와 휴양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이 곡은 야자수와 그늘이 늘어진 휴양지에 좀 더 어울립니다. 익숙한 결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순식간에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버리는 음악을 듣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빠융 뜨두(Payung Teduh)는 “아카드(Akad)”라는 곡으로 더 유명한 팀입니다. 이 곡은 유튜브 조회 수가 1.2억입니다. 개인적으로 달달한 슈거 사운드에 적당한 미디엄 템포의 음악은 인도네시아 뮤지션들이 발군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youtu.be/56bK56eiaDY     싱가포르 Singapore 인치 – “심플 카인드 오브 라이프”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서도 싱가포르는 조금은 다른 결로 다가옵니다. 도시국가이기 때문이라는 단편적인 접근은 위험할 수 있는 편견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이미지일 수도 있다고 변명해봅니다. 그 이미지와 닮은 음악을 골랐습니다. 이 곡은 앞서 소개해드린 곡들보다 지극히 팝에 가까운 곡으로 세련되고 쿨하고 말끔한 음악입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는 자본이 부족하지 않게 갖춰진 곳에서 음악을 시작한 뮤지션을 떠올렸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느낌이 물씬 묻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치(iNCH)의 유튜브 계정에 가보니, 11년 전에 방에서 혼자 연습하는 영상이 많습니다. 그 시간의 흐름을 따라오다가 “심플 카인드 오브 라이프(Simple Kind Of Life)”라는 곡을 만나면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https://youtu.be/sdFJbDInACg  필리핀 락 밴드 포 오브 스페이스 ©Warner Music 필리핀 The Philippines 포 오브 스페이스 – “컴 인사이드 오브 마이 하트” 영미 뮤지션들의 아시아 투어 일정을 보면,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록밴드들의 투어리스트에 우리나라는 종종 빠집니다. 반면에 아세안 국가들은 꼭 포함됩니다. 아마도 록밴드 신의 파급력이 우리나라보다 아세안 국가가 크기 때문일 겁니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팀이, 필리핀의 재능 넘치는 4인조 밴드 포 오브 스페이스(IV OF SPADES)입니다. 듣다 보면 흥얼거릴 수밖에 없는, 몸을 흔들 수밖에 없는, 펑키한 사운드와 재기발랄한 보컬이 매력적입니다. https://youtu.be/HxwokFPIg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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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7

아세안과 한국을 잇는 연결고리 - 아세안과 한국 가수가 만나 탄생한 힙한 팝 뮤직의 세계로 잭슨이 피처링한 아프간의 싱글 “M.I.A” © KDM, Empire                                      황소윤과 품 비푸릿이 협업한 싱글 “Wings” ©MAGIC STRAWBERRY SOUND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과 한국의 내로라하는 아티스트가 만나 탄생한 컬래버레이션 음악을 소개한다. ‘아라비안나이트’로 잘 알려진 가수 김준선이 지난해 10월 베트남 뮤지션 띵청닷(Dinh Trong Dat), 응엔투이아잉(Nguyen Thuy Anh), 응엔탄선(Nguyen Thanh Son)과 컬래버레이션한 “Call On Me”를 발표했다. 이 곡은 2020 WAF(we are friend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리는 친구다’라는 슬로건처럼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상황 속에서 음악으로 우정을 나누자는 취지로 만든 노래다. “Call On Me”는 김준선이 직접 작사·작곡은 물론 노래와 프로듀싱까지 참여한 EDM 곡으로 베트남어, 영어, 한국어 가사가 조화를 이룬다. 이외에도 그룹 컬트의 멤버 전승우와 신인 가수 길민, 래퍼 최진호가 함께 참여했다. 김준선은 “베트남에 이어 필리핀 아이돌 그룹 SB19과도 협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앞으로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아세안 국가들의 뮤지션과 협업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앞으로 계획을 밝혔다.  또한 지난 2월 싱가포르 래퍼 시가 셰이(ShiGGa Shay)가 한국 아티스트 박재범이 피처링에 참여한 노래 “uRight”을 선보였다. “uRight”은 사랑하는 연인과의 다툼에서 서로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내용을 담은 업비트(Up Beat) 곡으로, 이번 협업은 시가 셰이가 R&B와 힙합 요소를 갖춘 피처링 아티스트로 박재범을 떠올려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시가 셰이는 래퍼 뿐만 아니라 음악 프로듀서, 영상 제작자로도 활동하는 아티스트로 오는 10월 새로운 싱글 “PAS$IVE”를 발표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가수 아프간(Afgan)과 잭슨의 협업 활동도 눈에 띈다. 지난 3월 아프간이 발표한 곡 “M.I.A”는 두 사람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사랑 노래로 화제를 모았다. 아프간은 “앞으로 더 많은 케이팝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게 꿈입니다. 한국에서도 콘서트를 할 기회가 오면 좋겠습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태국의 싱어송라이터 품 비푸릿(Phum Viphurit)과 아시아와 유럽을 종횡무진하는 밴드 새소년의 멤버 황소윤의 협업으로 탄생한 노래 “Wings”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0월 발매된 이 곡은 사랑스럽고 따뜻한 가사와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중독성 있는 곡으로 앨범 커버 또한 인상적이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대상을 직접 찍은 사진으로 앨범 커버를 구성해 협업의 완성도를 높였다. 국가와 언어는 달라도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로 하나가 된 아세안과 한국. 앞으로 장르를 뛰어넘는 협업 활동이 더욱 왕성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 전승우, 최진호와 베트남 아티스트들이 피처링한 김준선의 싱글 “Call on Me”                             박재범이 피처링한 시가 셰이 싱글 “uRight” © ZradeMusic                                                                                       ©DRINK ENTERTAINMENT                                                      유튜브 채널 YOUTUBE CHANNEL                                                      황소윤과 품 비푸릿이 협업한 싱글 “Wings” https://www.youtube.com/watch?v=dluPeE6PA-I                                                       박재범이 피처링한 시가 셰이 싱글“uRight” https://www.youtube.com/watch?v=FdpsNZfoaqI                                                       전승우, 최진호와 베트남 아티스트들이 피처링한 김준선의 싱글 “Call on Me” https://www.youtube.com/watch?v=upcKC99DjQ8                                                       잭슨이 피처링한 아프간의 싱글“M.I.A” https://www.youtube.com/watch?v=Q89dpq20W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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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19

동남아시아 팝: 역동성의 미학 - 동남아시아 팝 음악은 오랫동안 수많은 문화적 영향을 받으며 음악적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글.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서(西)에서 동(東)으로 열거하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이 인도차이나반도에 속한다. 이곳에서는 남아시아의 힌두교나 동아시아의 유교가 아닌 불교가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불행히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립한 이후에도 인도차이나는 계속 전쟁에 휘말렸다. 1946년에 시작되어 1~3차까지 진행된 뒤 1991년에야 끝난 기나긴 전쟁이다. 특히 ‘베트남전쟁’으로 불리는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은 미군이 지상전에 개입하면서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 인도차이나의 현대적 팝 음악은 이 전쟁을 배경으로 말미암아 발전했다. 남베트남과 미국은 북베트남과 싸우고, 태국은 미국과 남베트남을 지원하고, 캄보디아는 중립국이었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군은 자국산 팝 음악을 여기 저기 흩뿌렸다. 이 당시 아시아인들로 구성된 밴드들이 미국 팝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이때가 팝 음악, 특히 록과 포크의 절정기였다. 이 시대의 음악은 잘 보존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베트남 솔’, ‘캄보디아 사이키델릭’, ‘태국 펑크’라는 이름을 달고 ‘채굴’되어 재발매되었다. 이 음악은 세계 각지의 음악 듣는 멋쟁이들, 이른바 힙스터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이유는 아마도 형식은 영락없이 서양 팝 음악인데 서양 팝 음악에 없는 요소들이 절묘하게 블렌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국의 유명 룩끄룽 가수 수텝 웡깜행  l  © Inter-Asia School Bangkok                           태국 포크락 밴드 카라반  l  © Inter-Asia School Bangkok 그렇지만 미국의 ‘영향’과 이에 대한 ‘응답’이 전부는 아니다. 다른 두 개의 상이한 경향을 언급하고 싶다. 미군이 오기 전부터 식민화와 냉전을 경험하면서 농민과 서민이 좋아하는 느리고 슬프고 감상적인 노래들이 이미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베트남에서는 볼레로(bolero), 태국에서는 룩퉁(look thung)이라고 불렀다. 또 하나의 경향은 전쟁에 반대하고 때로 혁명에 투신한 젊은 지식인들이 만들고 부른 저항음악이다. 베트남의 찐공선과 태국의 카라반은 ‘포크송’이라는 외래어로 부르기에는 아주 핍진(逼眞)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1989년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던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개혁과 개방도 이루어지면서 인도차이나에서는 팝 음악은 정상적 환경에서 발전해 왔다. 1990년대 이후 TV 프로그램에서 인기 가요를 열창하는 스타 가수들이 속속 탄생하고, 청년 세대는 여느 나라처럼 록, 힙합, EDM 등 첨단 장르를 창작하고 연주하고 있다. 21세기 동남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어느 지역보다도 눈부시다. 태국이 앞서고, 베트남이 뒤따르고, 나머지 세 나라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팝 음악의 첨단을 추구하는 경향은 소득수준을 가리지 않는다. 매스미디어에 등장하는 팝 음악은 스타를 빠르게 교체해 왔고, 대도시에서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공간엔 이를 즐기며 춤추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태국의 싱어송라이터 품 비푸릿(Phum Viphurit),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캄보디아 음악을 선보이는 밴드 뎅기 피버(Dengue Fever), 다국적 솔뮤직 밴드 사이공 솔 리바이벌(Saigon Soul Revival) 등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존재다. 이들이 국제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점은 이들의 음악에 ‘글로벌’한 감각까지 부여해준다. K-팝만 글로벌한 게 아니다. 베트남은 자국의 음악을 V-팝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J-팝, 한국의 K-팝에 이어 스스로 자국의 이니셜을 팝 앞에 붙였다. 최고의 디바 미떰(Mỹ Tâm)은 한국인 작곡가와 작업하고, 앨범이 빌보드의 한 차트에도 오르고, 장충체육관에서 콘서트도 했다. 조금 있으면 ‘올 것이 왔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바다 너머로는 해양 동남아시아(maritime Southeast Asia)가 전개된다. 두 나라만 꼽으라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꼽고 싶다. 거칠게 말하면, 인구 1억이 넘는 가톨릭 국가와 인구 2억이 넘는 무슬림 국가다. 이 나라들의 팝 음악에 담긴 시간과 공간의 흥미진진한 궤적을 살펴볼 별도의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음악을 통해 역동적인 삶을 탐구해나가는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태국 락 밴드 모던 독                                                             동남아시아 팝 음악 관련 유튜브 채널                                                              YOUTUBE CHANNEL: Southeast Asian Pop                                                              신 시사뭇 Sinn Sisamouth https://www.youtube.com/channel/UClNj0OnVBa4MZxUn13AQOxA                                                             찐공선 Trịnh Công Sơn https://www.youtube.com/channel/UC6im6pHK7dVz5zSxn-FoynQ                                                             수텝 웡캄행 Suthep Wongkamhaeng https://www.youtube.com/watch?v=kNPJgyFAGAE                                                              밴드 댕기피버 Band Dengue Fever https://www.youtube.com/user/denguefevermusic                                                              사이공 소울 리바이벌 Saigon Soul Revival https://www.youtube.com/channel/UCY4r9tzsi9MmHcSHriFqdPQ                                                              품 비푸릿Phum Viphurit https://www.youtube.com/watch?v=L1p52Z4uOlU                                                              미떰 Mỹ Tâm https://www.youtube.com/channel/UCmgGhZ_OMFGRn5cbfd4Svrw  캄보디아 싱어송라이터 신 시사뭇 © Nate Hun                               태국 팝 밴드 그랜드 엑스  © Inter-Asia School Bangk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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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6

차세대 현대미술의 진원지 Dexter Fernandez (The Philippines), The Moth and The Bulldozer, Acrylic on Walls, Dimensions Variable, 2015, Image Courtesy of Fine Arts Work Center in Provincetown    글. 홍경한 미술평론가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특징은 현실 부합에 있다. 새로운 사회적 진실의 탐구와 억압된 사회에 대한 비판, 권력 부조리에 관한 폭로 등이 주를 이룬다. 동남아시아 미술을 논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국가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등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과의 교류도 빈번한 이들 나라는 여타 아세안 국가들에 비해 경제 발전 속도가 남다르다는 공통점이 있다(문화 융성은 경제적 상황과 맞물린다). 그만큼 세계 무대에서의 활약이 왕성하고 세계 미술계의 주목도도 낮지 않다. 아세안 10개국 중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태국, 필리핀은 현대미술의 대표 주자이다. 생소함과 낯섦을 무기로 경매와 화랑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비엔날레나 미술관 전시에서 또한 이들 나라 작가들의 작품은 주요 위치에 걸린다. 국가마다 다소 다른 정치·사회적 맥락에 글로벌리즘이 결합된 미술 언어로 자신들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특징은 현실 부합에 있다. 매체와 표현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새로운 사회적 진실의 탐구와 억압된 사회에 대한 비판, 권력 부조리에 관한 폭로 등이 주를 이룬다.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불합리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당대를 비판하기도 한다. 특히 부패와 폭력, 민중의 삶과 전통, 역사와 정체성도 주요한 주제이다. 젊은 작가들은 동성애, 개인주의, 자본주의도 거리낌 없이 담는다.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에 있어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 미술시장의 흐름과 국제 관계, 21세기 인터넷 환경에 따른 변화에 적응한 채 세계 미술사로의 편입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급속한 자본의 재편으로 삶의 양식이 변하는 만큼 미술 형식과 태도 역시 급변하는 중이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모든 나라가 위와 같은 맥락에 포함되는 건 아니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작가들의 작품은 여전히 전통적인 느낌이 강하다. 좋게 보면 손맛이 살아있다. 그러나 아직 현대미술 장르에서 내세울 만한 작가는 드물다. 그럼에도 동남아시아의 현대미술을 무시할 수 없는 건 경제 발전과 서구의 영향으로 대중적·문화적 자양분을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데다 감성의 독자성이 남다르다는 데 있다. 격동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도출된 담론 또한 아세안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데 있어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Korakrit Arunanondchai (Thailand), Painting with History in a Room Filled with People with Funny Names 3, Single Channel Video, 24 min. 55 sec., 2015 Untitled (Pillow), Denim, Foam, 162.6×162.6×45.7 cm (each), 2016 Untitled (Platform), Denim, Wood, 27.9×35.6×8.9 cm, 2016 Installation View at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6, Image Courtesy of Seoul Museum of Art  Aze Ong (The Philippines), Ripples 3, Yarns, Stainless Steel Frame, Stainless Wires, 442x122x122cm, 2015, Image Courtesy of Jeonbuk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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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11

경험으로서의 미술 베트남 작가 부이 콩 칸이 참여한 설치 전경, 사진: 김경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글. 홍경한 미술평론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미술사에 익숙한 우리에게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미술은 낯설다. 그러나 동남아 미술은 서구 미술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이 존재한다. 국가마다 조금씩 편차는 있으나, 아세안 특유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남아시아 미술의 텃밭은 불교 미술과 힌두교 미술이다. 기원 초부터 인도 문화권에 포함되면서 미술 역시 자연스럽게 그 일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근대에는 혼종 문화로 대변된다. 토착 문화에 영국, 미국,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등에 의한 서구 식민 통치의 문화가 섞이면서 그들만의 특별한 예술 세계가 만들어졌다. 동남아 현대미술은 이러한 지리적·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한다. 그리고 그 내부엔 식민과 내전의 아픔, 불안한 정치·사회 현실 속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저항, 경제적 자립 의지 등이 모두 결합된 ‘경험으로서의 미술’이 들어 있다. 대표적인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이다. 실제 이들 미술은 경매와 비엔날레, 미술관과 갤러리 등에서 고른 주목을 받고 있으며 미술 전문가 및 컬렉터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실제 이들 미술은 경매와 비엔날레, 미술관과 갤러리 등에서 고른 주목을 받고 있으며 미술 전문가 및 컬렉터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열기만 놓고 보자면 그야말로 차세대 예술의 진원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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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15

[특별기고문] 한-메콩 관계 및 미래 전망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연구교수, 정치학 박사 2021년은 한-메콩 교류의 해이자 한국과 메콩 협력의 10주년이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메콩 지역 국가들 협력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앞서 메콩 지역에 진출한 일본, 중국 등과 비교할 때 한국은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이며 규모 면에서 열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메콩 협력은 꾸준하게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 협력의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어머니의 강’이라는 뜻의 메콩강은 그 길이가 장장 4,350km에 달한다. 메콩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상류인 중국 윈난성의 란창강을 거쳐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 내륙부 동남아시아 5개국을 경유하여 남중국해로 흘러들어간다. 메콩강 유역에는 약 6천5백만의 인구가 메콩강을 터전으로 삶을 영유하고 있다. 이 지역은 최근 국제정치와 글로벌 경제에 있어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도, 중국과 아시아를 잇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태국을 제외한 5개국 평균 경제 성장률이 6%를 넘어 세계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에게 있어 해양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개발 격차 해소와 빈곤 퇴치는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이다. 따라서 한국과 메콩 지역 국가들의 협력은 양측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통한 상생번영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한국과 메콩 지역 국가들은 지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여러 공통점을 가진다. 우선 베트남을 제외한 메콩 국가의 대다수 국민들이 불교도이며 공통된 불교 문화권에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과의 역사·문화 교류의 기회가 많다. 둘째, 메콩 지역 국가들의 상당수가 내전과 전쟁을 경험하였고 국가재건과 경제발전에 대한 열의가 크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한 역사적 경로를 가진다. 셋째, 한국과 메콩 국가들은 역사 및 영토 분쟁이나 패권을 향한 야심이 없다는 점에서 진정한 협력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한국-메콩 관계 구축은 2011년 제1차 한-메콩 외교장관회의 개최를 통해 본격화되었다. 이로부터 양측은 ‘상생을 위한 메콩-한국 포괄적 파트너십(Mekong-Korea Comprehensive Partnership for Mutual Prosperity)’을 채택했고 협력 관계를 꾸준히 발전해 왔다. 한국은 ‘한-메콩 행동계획(ROK-Mekong Plan of Action)’ 수립을 통해 메콩 국가들과의 실질적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한-메콩 행동계획은 아세안 연계성 향상,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자원 관리, 농촌 개발 및 인적자원 개발 등을 포함한다. 최근의 ‘2021-2025 행동계획’은 2019년 한-메콩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한강-메콩강 선언’ 이행방안과 한-메콩 중장기적 협력 방향에 대한 계획을 추가하였다. 그중에 2021년 한-메콩 교류의 해 지정 및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 농촌개발부터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기술 개발 분야 협력, 메콩 지역 환경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 코로나19를 포함한 비전통안보 분야에서 협력 강화 등이 주목해야 할 협력 분야이다. 또한 양측은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 11월 비대면으로 개최된 제2차 한-메콩 정상회의에서 한-메콩 관계를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격상하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은 현재 메콩 국가들의 경제발전 경로와 유사한 경험을 과거에 한 바 있다. 따라서 한국의 발전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에서 기술 교육, 농촌 개발, 공공행정 역량 강화 등의 개발 협력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은 공적개발원조(ODA)를 추진해 왔다. 특히 메콩 지역 5개 국가 중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와 베트남은 한국 개발지원의 중점협력국에 속하며, 한국은 이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분야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통해 농촌 지역의 개발과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캄보디아와는 교통, 수자원 관리 및 보건위생, 교육, 농촌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라오스와는 수자원 관리 및 보건위생, 에너지, 교육, 지역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 미얀마에 공공행정, 지역개발, 교육, 새마을 운동에 기반을 둔 농촌 개발 지원을 시행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역할을 하는 미얀마개발연구원(MDI) 설립을 지원한 바 있다. 이외에도 양측은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한 협력 차원에서 ‘한-메콩 생물 다양성 센터’, ‘한-메콩 수자원 공동 연구센터’, ‘한-메콩 산림협력 센터’, 메콩 농촌 지뢰 및 불발탄 제거 사업을 포함한 ‘한-메콩 미래평화공동체’ 설립, 메콩 지역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지속가능한 스마트 관광을 위한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재 중국, 일본, 미국,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은 앞다투어 국제 개발 협력 체계를 추진하며 메콩 지역 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메콩 국가들은 이러한 시도가 자칫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보 경쟁으로 격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한국은 자국의 경제 번영을 가져온 과거 한강의 기적이 메콩강에서도 일어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온화하면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자 한다. 메콩강 기적의 실현은 한국과 메콩 국가 모두에게 공동 번영과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은 메콩 지역 국가들과 코로나19 이후의 경제회복, 역량 강화, 비전통안보 분야에서 더 많은 협력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비록 코로나19의 여파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2021년 한-메콩 교류의 해를 맞이하여 아세안문화원이 한국과 메콩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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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13

[특별기고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아세안 사회문화 협력의 미래 김형종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국제관계학과 교수 코로나19 감염병은 단지 보건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 걸친 복합적 문제이다. 보건 위기가 경제 위기로 이어지고 나아가 공동체의 위기로 확산하는 형국이다. 아세안은 국가별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코로나 19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세안은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고, 포용적이며, 지속 가능한 조화로운 사회문화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사회문화공동체 건설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대두되었다.     아세안 회원국은 코로나 대응을 위해 다양한 정부 개입과 통제 정책을 시행하는 동시에 여러 차례에 걸쳐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감염병 통제에 주력하는 동안 사회문화적 활동과 교류는 제약되었으며 경제활동도 위축되었다. 사회적 취약 계층은 코로나 사태로 더 큰 위협에 직면했다. 한정된 재원을 고려할 때 경기부양책의 한계도 명확하다. 다수의 아세안 국가에서 고용인구의 60~82%는 비공식 경제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일시적 고용, 가족 단위 영세 자영업 등 고용의 질이 낮은 곳에 근무하며 정부 지원이 미치지 않는 비공식의 영역에 자리한다. 특히, 이주노동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실직에 따른 경제적 문제, 적합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 강화에 따른 심리적 압박이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사회의 불신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조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코로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외국인 또는 특정 집단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 속에 가정폭력도 증가추세에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역설적으로 아세안 공동체의 핵심과제가 사회문화공동체의 실현에 있음을 보여준다.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공통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사회문화적 협력 없이는 국가의 안위와 경제적 번영도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사회문화 영역은 문화, 보건, 빈곤, 웰빙, 환경, 교육, 청소년, 정보, 재난 등 매우 다양하고 시급한 현안들을 포함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국가 안위도 궁극적으로 개개인의 인간다운 삶과 문화적 삶의 질을 담보할 때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국가 간 공통의 현안에 대응하고 협력하는 데 있어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우리’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은 핵심적 조건이다.     아세안은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인간안보’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즉,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보호와 국가적 안위가 분리될 수 없으며 이를 위해 포괄적 접근이 필요함을 인식한 것이다. 경제성장은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사회적 경제 접근을 취해야 한다. 사회적 정의와 권리라는 가치가 공동체를 통해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개별 국가 차원의 대응으로는 초 국경적 이동을 막을 수 없기에 국가 간 협력의 중요성도 대두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아세안 교류는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데 한-아세안 사회문화적 협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신남방정책이 제시한 ‘사람’, ‘공동번영’, ‘평화’의 가치 중 ‘사람’은 사회문화 영역의 교류협력뿐만 아니라 사람 중심의 협력과 공동체라는 협력의 궁극적 목표를 의미한다.     지난 11월 개최된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남방정책 플러스’ 계획을 밝혔다. 신남방정책을 심화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포괄적 보건 의료와 사회문화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의 교육모델 제시와 한류 쌍방향 문화 교류 증진이 포함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이미 구체협력 방안으로 상호문화이해 증진, 공동창작 활성화, 문화산업협력, 문화유산 보존 및 활용 협력, 문화예술기관 협력 강화를 제시했다.     사회적 연대의 핵심은 상호 이해에서 출발한다. 문화적 차이와 공통성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상대의 아픔과 시련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문화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 차원에서도 문화협력을 위한 방안으로 아세안문화원의 설립과 활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이미 아세안문화원을 운영하는 한국은 관련 사업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동아시아씽크탱크네트워크(NEAT)는 한국의 아세안문화원과 태국의 아세안 문화센터 간 협력을 중심으로 역내 유관 기관과의 네트워크 설립을 추진하고 이를 계기로 사회문화적 협력 네트워크 강화 방안을 권고한 바 있다. 사회문화 협력의 다양한 이슈와 전담기관의 부재로 인한 문제를 극복하고 아세안과 협력에 있어 사회문화협력의 연계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아세안 사회문화협력에 있어 지역 또는 도시 간 교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문화 예술적 자산을 공유하고 교류를 촉진하는 한-아세안 지역 및 도시 간 문화예술 네트워크가 설립된다면 문화협력의 확산 효과는 물론 일회성 행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층위에서 인적교류에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문화예술은 개인 차원의 활동이나 상업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가진다. 다름과 차이 속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공유할 정신적 자산과 비전을 제시한다. 이 점에서 문화예술은 사회적이며, 사회적 가치는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 더욱 중요해진 사회적 연대와 상호 문화이해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아세안을 ‘시장’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연대와 공유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다층적 차원의 한-아세안 사회문화 협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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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26

추억과 향수를 한잔에, 베트남은 뉴트로 카페 열풍 ‘배급시대’를 콘셉트로 한 카페 글: 정리나 아시아투데이 베트남 특파원, 하노이 국가대 역사학 박사과정 1986년 ‘도이 머이(쇄신)’라는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이후 오늘날 우리에게 동남아시아의 신흥국으로 인식되는 베트남. 그러나 해 뜨기 전 어두운 새벽과 같은 ‘배급시대’는 아직까지도 베트남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꽁카페가 이 시대를 콘셉트로 했다. 요즘 베트남 하노이에는 이런 카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바야흐로 카페의 ‘배급시대’가 찾아온 셈이다.     베트남의 배급시대는 계획 경제하에 대부분의 경제 활동이 국가에 의해 보조되던 기간을 말한다. 통상 1975년 통일 이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오늘날의 베트남)이 수립된 1976년부터 도이 머이 시행 전인 1986년 말까지를 일컫는다. 국가가 쌀·고기·우유·설탕·느억맘(베트남의 젓갈)부터 옷감으로 쓸 천까지, 물자와 맞바꿀 수 있는 배급표를 나눠주면 배급소에서 물건과 바꿔 생활하곤 했다.     그러나 전후 서방세계와 고립된 베트남이 배급경제를 감당하기엔 물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배급 날이면 배급소마다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물자도 부족하거니와 상품의 질도 좋지 않았다. 노랗게 변한 우유는 유통기한이 지나있기 일쑤라 다시 끓여 마셔야 했고, 돼지고기가 다 떨어지면 집에서 돼지를 키울 수 있도록 쌀겨를 대신 나눠줬다. 돼지가 없어 1년 내내 돼지고기 배급표를 사용하지 못한 집도 있었다. 최대한 많은 물건을 받기 위해 벽돌로 자리를 맡아 놓고 다른 배급소에서 물건을 받아 오는 수법인 ‘벽돌 쌓기’도 등장했다.    배급시대 당시의 배급창구 모습  l  출처: 베트남통신사(TTXVN) 자료사진     배급시대는 모든 것이 부족한 시대였다. 배급표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 조금씩 다른 궁리를 모색한 데서 사경제 부문이 싹트기 시작했고 그렇게 도이 머이로 이어졌다. 이 변동을 일컬어 베트남에선 ‘cái khó ló cái khôn(어려움은 지혜로움을 드러낸다)’이라고 표현한다.     배급표를 손에 든 인파로 북적이던 배급창구는 이제 음료를 주문하거나 계산하는 카페 계산대의 모습으로 재현됐다. 우리네 목욕탕 의자처럼 낮고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는, 컵을 올려놓을 별도의 탁자마저 사치였던 시대엔 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싸늘한 회벽, 누렇게 빛이 바랬지만 표지의 ‘맑스-레닌’ 활자만큼은 또렷한 선전책자, 직원들의 소박하고 단촐한 국방색 유니폼, 이가 빠진 유리잔 혹은 덜그럭거리는 철제 컵, 선반 위 어디서도 찾기 힘들만큼 오래된 재봉틀과 타자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들은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가 가득한 오늘날 베트남의 시계를 40년도 넘게 되돌려 놓는다.     하노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는 배급시대 풍의 카페는 중장년층과 젊은층을 모두 사로잡았다. 중장년층에게는 힘들었지만 그만큼 소중한 추억의 시절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젊은이들에게는 부모세대가 지나왔던- 그러나 자신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베트남의 ‘새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30~50대가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복고에 빠져드는 레트로(Re-tro)와 10~20대가 과거의 향수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뉴트로(New-tro)가 모두 어우러진 것이다. 학교와 거리 곳곳 호찌민 주석의 사진을 걸어놓고 빨간 현수막과 노란 글씨로 그 유지를 새기면서도, 그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빠르게 고층 건물이 올라가며 시장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 그 자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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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16

플라스틱과 아름다운 이별을 시작한 태국 “Say No to Plastic Bags” 캠페인 글: 우다정 작가, 다음 브런치에서 ‘나는 방콕 이방인입니다’ 연재 중  태국을 흔히들 ‘미소의 나라’라고 한다. 웃는 얼굴로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하는 태국식 인사법 ‘와이’, 그리고 ‘마이 뺀 라이(괜찮다)’라는 말을 즐겨 쓰는 낙천적인 태국 사람들을 만나면 그 이유를 단번에 알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미소가 ‘마이 뺀 라이’하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바로 웃으면서 일회용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빨대 등을 아낌없이 나눠줄 때다.     태국에선 아직 쓰레기 배출이 무료다. 마트, 시장, 편의점에서는 무상으로 비닐봉지가 제공되며 물건 종류별로 여러 장의 비닐에 나눠 담아주고,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 싶으면 몇 장 더 겹쳐주기도 한다. 식당에서 물과 음료를 주문하면 꼭 빨대가 같이 나오고, 찬 음료를 테이크아웃하면 비닐 손잡이를 걸어주기도 한다. 너그러운 미소처럼 인심도 후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태국에 주목할만한 변화가 생겼다. 태국 정부 주관하에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 로드맵(2018~2030)’을 수립해 시행함으로써 일회용 플라스틱 용품의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을 늘리기 시작한 것. 생활용품 제조사들은 환경 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미세 플라스틱 대신 천연 스크럽 등의 대체재를 찾고 있으며, 태국 내의 주요 생수 제조업체들은 2018년 4월 1일을 기점으로 병뚜껑 씰 사용을 중단했다. 특히 플라스틱 병뚜껑 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 역시 흔쾌히 참여했고, 현재 플라스틱 씰은 태국 시장에서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정부의 과감한 규제 다음으로는 태국 국민들의 자발적 노력이 이어졌다. 올해 1월부터 백화점, 마트, 편의점 등 전국 약 2만 5천 곳의 소매 상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나섰다. 계산대 옆마다 “Say No to Plastic Bags” 캠페인 배너가 걸리고, 실제로 비닐봉지를 비치해두지 않는 대신 재사용 봉지나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한다. 2018~2019년에 이루어진 플라스틱 규제 캠페인 1차 기간 동안 약 20억 장의 비닐봉지가 절약되었고 올해 비닐봉지 배포 전면 중단으로 연간 450억 장의 비닐봉지 사용이 줄 것으로 태국 환경부는 예측한다.   리필 숍     태국 수도인 방콕에는 서울 못지않게 핫플레이스가 많은데, 그중 ‘No Plastic’ 소비문화를 이끌어가는 곳들이 있다. 바로 ‘리필 숍(refill shop)’이다. 담아갈 용기를 소비자들이 직접 챙겨와 포장되지 않은 상품들을 필요한 만큼 넣은 다음 무게를 측정하여 계산한다. 쌀, 파스타면, 견과류, 시리얼, 식용 기름, 말린 과일, 제빵 및 제면 가루, 향신료를 비롯한 식료품과 샴푸, 린스, 클렌저, 디퓨저, 세탁세제, 비누 등의 생활용품을 판다. 계산 후 영수증은 이메일로 받는다. 이 역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태국 국민들의 자발적 노력의 일환이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아낌없이 내민 여러 장의 비닐봉지 앞에서 손을 흔들며 ‘괜찮다, 필요 없다’는 표현을 해도 미소의 나라 점원들은 ‘마이 뺀 라이(괜찮아요, 여기 더 있어요)’하며 더 빵끗 웃어 곤란하곤 했다. 아름다운 미소는 유지하되, 이제는 후한 비닐 인심을 버린 태국의 움직임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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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9

세계 1위 싱가포르 창이공항이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쥬얼 창이공항 내 인공폭포 글: 에리카, 네이버 디자인프레스 해외통신원이자 칼럼니스트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방식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온다 여겼던 모습들이 어느새 현실이 되었다. 재택근무와 화상 회의를 하는 직장인들, 웨비나(Webinar)와 온라인 강의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 풍경은 자연스러워졌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누는 대화가 어색해졌으며, 예전 사진을 보며 언제쯤이면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그리는 일상이 익숙해졌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시간을 겪고 있지만 특히 싱가포르처럼 대외무역과 관광사업의 비중이 큰 나라는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됨에 따른 피해 수준이 심각하다. 싱가포르 정부는 코로나가 급격하게 확산되는 추세를 컨트롤하기 위해 4월 7일부터 5월 4일까지 4주간 필수산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장 및 교육시설을 일시 폐쇄하는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를 시행했다. 이 조치로 약 100억 싱가포르달러(약 9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가 전망됐지만 코로나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접촉 체크인 키오스크                                        연무 부착 장치를 갖춘 무인로봇     팬데믹 사태에 대처하는 싱가포르의 과감한 결단력은 서킷 브레이커 조치와 함께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Singapore Changi Airport)의 움직임에서도 두드러진다. 시설, 청결, 운항 안정성 및 정확성 등을 평가하는 스카이트랙스의 세계 공항 순위(World Airport Awards)에서 2019년까지 7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창이공항은 향후 상황이 나아졌을 때 수많은 여행객을 다시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창이공항은 특수 근접 센서 기능을 탑재하여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조작이 가능한 비접촉 체크인 키오스크와, 공항 전체를 순환하며 미세 입자를 잡아낸 후 별도로 부착된 연무 부착 장치로 카펫을 소독하는 무인로봇을 도입했다. 또한 손가락을 기계에 직접 접촉해 지문을 읽던 전통적 입국심사를 안면과 홍채 인식을 통한 비대면 방식으로 바꾸는 등 공항 내의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변화시켰다.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 간, 사람과 기계와의 접촉을 모두 최소화한 것이다. 창이공항의 이러한 조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을 포함한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외에도 무빙워크 핸들이 자동으로 소독되도록 하고, 특히 수많은 여행객들이 접촉하는 카트 손잡이는 장시간 코팅이 유지되는 항균제로 소독하며, 공항 내부에 1,200개가 넘는 손 소독제를 설치해 이용객들이 수시로 위생에 신경 쓸 수 있도록 했다.     창이공항그룹(Changi Airport Group)은 이례 없는 여행객 감소로 인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다하고 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에 자신들의 코로나19 대응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해외언론으로부터 싱가포르의 위기 대처능력과 관련된 좋은 평가를 얻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진정한 실력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고 하지 않는가. 세계 1위란 타이틀이 아깝지 않아 보이는 창이공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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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트렌드 16

나를 표현하는 가장 쉬운 길 - 팁톱(Tip Top) 팁톱(Tip Top) 영상을 보는 미얀마 사람들 글: 박준한 작가 (『굿모닝 미얀마』 저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의 일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아무리 독하다 한들, 타인과 어울리고자 하는 인간의 사회성을 막기에는 역부족인가 봅니다. 어느새 바이러스가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었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 우리는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침에 일어나면 카카오톡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 순위로 오늘의 트렌드를 살피며, 유튜브를 통해 자신을 알립니다. 미얀마에서는 이 모든 역할을 페이스북이 대신합니다. 전통적으로 페이스북을 통한 온라인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인데, 새로운 콘텐츠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최근, ‘팁톱(Tip Top)’이 미얀마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팁톱은 배우나 가수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필하는 영상을 SNS에 올리고 공유하는 콘텐츠를 말합니다. 미얀마 시골 마을의 평범한 소녀였던 퓨퓨(Phyu Phyu Htwe)가 팁톱을 통해 인생 역전을 이룬 스토리가 알려지자, 이제 누구나 한 번쯤 따라서 만들어보고 싶은 대세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퓨퓨  l  출처: Phyu Phyu Htwe 페이스북 공식 계정 (www.facebook.com/ phyuphyuhtwe123/)    퓨퓨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등장한 인터뷰에서 반드시 배우가 되겠다고 말할 정도로 당돌했습니다. 힘든 생활을 보내면서도 마을에 연극행사가 있으면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습니다. 퓨퓨의 노력에 하늘이 감동했던 걸까요? 퓨퓨가 대학교에 다닐 때 마침 팁톱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퓨퓨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마치 자신이 배우가 된 것처럼 다양한 상황극 영상을 촬영하고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이 영상들이 차차 인기를 얻자 퓨퓨의 페이스북 팔로워가 늘어났고, 지금은 공식 페이지까지 만들 정도로 유명합니다. 덕분에 퓨퓨는 어릴 적 인터뷰에서 밝혔던 배우의 꿈까지 이룰 수 있었습니다.     명예를 얻은 퓨퓨는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양곤에서 단독 주택까지 살 정도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평범했던 소녀가 유명인이 되어 성공 가도를 달린 것도 충분히 관심받을 내용이지만, 퓨퓨는 기부천사로도 유명합니다.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고 고향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미얀마인들이 삶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부를 통해 퓨퓨는 미얀마의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게 되었습니다.     팁톱으로 성공한 퓨퓨를 보며 ‘나도 성공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진 미얀마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을 검색하다 보면 퓨퓨처럼 자신의 끼를 만방에 떨치고자 하는 사람들의 영상이 꾸준히 올라옵니다. 퓨퓨가 했던 것처럼 립싱크를 하거나, 스타가 되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것처럼 상황을 설정하고 노래하는 것까지, 모두 1인 크리에이터가 되어서 자신만의 무대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 평소 미얀마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수줍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팁톱으로 올리는 미얀마 사람들의 영상은 5분 내외의 짧은 내용으로, 일상생활 속 자연스러운 모습까지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잘 편집된 방송처럼 자막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써준 대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을 담았기에 거리감 없이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빠져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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