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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문화유산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로워지는 ‘사찰문화’

아세안 문화유산 13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로워지는 ‘사찰문화’ 글_양곤대학교 오린엔탈학과 박사과정 최재희 우리나라에 외국 귀빈들이 오면 종종 사찰에 가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사찰음식을 체험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본다. 한국 사람들은 미얀마 유학생활을 한 나에게 미얀마의 사찰음식은 무엇이 있냐고 물어본다. 우리나라 사찰음식이라고 하면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고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국 사찰음식만의 특징이 있다. 하지만 미얀마에서는 사찰음식이 일반음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양국 사찰음식의 차이는 ‘탁발(托鉢)의식’에서 온다. 미얀마는 지금도 철저하게 스님들의 생활은 신도들의 ‘보시(布施)’에 의해 이루어진다. 미얀마 스님들은 새벽 6시에 아침 한 끼, 오전 11시에 점심 한 끼를 끝으로 철저한 금식을 지키고 있다. 점심을 마지막으로 그 이후에는 물만 마셔야 한다. 한국 스님들은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라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사실상 부처님이 설한 법에는 ‘고기를 먹지 말라’라는 계율이 없다. 미얀마에서는 부처님의 시대부터 내려오던 ‘탁발의식’을 중요시 여기는데 여기서 ‘신도들이 공양을 올리는 음식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없다’라는 계율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신도들이 고기밖에 없어 고기를 보시하면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없기 때문에 먹어야 한다. 미얀마 절에 가면 스님들이 고기를 먹는다고 놀라면 안 된다. ‘고기’를 보시한 신도의 지극한 마음을 스님은 거절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부처님 법에도 ‘죽이는 장면을 보지 않은 고기, 죽이는 소리를 듣지 않은 고기, 자신을 위해 잡은 것이 아님을 알고 먹는 고기, 수명이 다해 스스로 죽은 생물의 고기, 매나 독수리 따위가 먹다 남은 고기 등의 오정육(五淨肉)’은 먹어도 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님이라고 해서 일반 대중들과 다른 음식을 먹지 않는다. 신도들이 평소에 먹는 음식을 같이 먹으며 공양을 올리는 그들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며 스님들은 살아간다. 미얀마에 배낭여행을 갔던 20대 초반에 너무 배고파 절에 가서 밥을 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스님께서 외국 여학생이 밥도 못 먹은 것이 불쌍하다며 자신이 탁발 받아 온 공양구(供養具)에서 생선튀김을 꺼내 건네주던 기억이 잊혀 지질 않는다. 음식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갖지 않고, 신도가 자신을 위해 주는 음식을 먹으며 평생을 사는 미얀마 스님들은 자신의 신도에게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까? 탐욕에 젖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울림을 주는 미얀마의 사찰음식이 아닐까?

빛으로 만든 이야기: 인도네시아 와양 인형들

아세안 문화유산 32

빛으로 만든 이야기: 인도네시아 와양 인형들 와양 쿨릿   와양(Wayang)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인형극입니다. 자와어 (Javenese)로 ‘그림자’를 뜻하고 ‘상상(Imagination)’이라 는 뜻도 함께 갖고 있는 말인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인형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연극 활동을 와양이라고 부릅니다. 아세안 문화원 상설전시실에서는 와양 쿨릿과 와양 골렉 인형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와양 쿨릿은 평면적인 형태의 꼭두각시 인형입니다. 그림 자극을 할 때 사용하는 인형이에요. ‘쿨릿(Kulit)’은 ‘가죽 (Skin)’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와양 쿨릿의 주 재료가 가 죽(Leather)이기 때문이죠. 가죽으로 인형의 몸체와 얼굴을 만들고 버팔로의 뿔로 손잡이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하얀 장 막 뒤에서 등으로 빛을 비추어 관객들에게 그림자를 비추고, 인형사의 노래나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와양 쿨 릿의 가장 큰 특징은 인형이 갖고 있는 디테일한 표현에 있습 니다. 와양 쿨릿은 인물의 이목구비와 옷 장식의 세부적인 표 현을 모두 보여줄 수 있죠. 반대로 와양 골렉은 나무를 깎아 만든 3차원의 입체 인형입니다. 와양 쿨릿처럼 장막 뒤에서 그림자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꼭두각시 인형 극과 비슷한 모습으로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많은 민속 공예품들이 그러하듯, 인도네시아의 와양 인형 과 가면들은 가면극의 내용과 공연 방식에 따라, 그리고 인형 들을 만드는 장인에 따라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삶이 존 재하는 것처럼, 와양 인형들 역시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는 사 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와양 쿨릿의 공연자인 달랑이 장막 뒤에서 와양 쿨릿으로 공연하고 있다

미얀마의 고귀한 유산 - 건축에서 미적 경험을 마주하다

아세안 문화유산 33

미얀마의 고귀한 유산 - 건축에서 미적 경험을 마주하다 미얀마 중부의 바간과 만달레이에는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건축물이 늠름한 위용을 자랑한다.  아난다 사원 완전한 아난다 사원(Ananda Temple) 미얀마 역사상 최초의 통일 왕국 수도였던 바간은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손꼽힌다. 2,500여 개 불탑이 남아 있는 올드 바간(Old Bagan)은 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바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정평 난 아난다 사원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건축물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짠시타(Kyanzittha) 왕의 명으로 1105년경에 지어진 아난다 사원은 동남아시아 불교 사원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로 꼽힌다. 이런 찬사 이면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아난다 사원이 완공되자 비슷한 사원이 더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짠시타 왕이 건축을 담당한 승려 여덟 명을 모두 죽였다고 한다. 그로 인해 아난다 사원은 지금까지 그 독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칭 구조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사원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어두워지는데,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격자창으로 자연광마저 제한된 양만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4개의 거대한 불상은 각각 동서 남북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다. 매년 1월에는 15일 동안 성대한 축제가 열리며 수많은 승려와 불자가 이곳에 모여든다.   우베인 다리   웅혼한 우베인 다리(U Bein Bridge)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수도인 만달레이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가 자리한다. 바로 타웅타만 호수(Taungthaman Lake)를 가로지르는 약 1.2km 길이의 우베인 다리이다. 다리를 건너면 근교 도시이자 과거 두 번이나 미얀마 수도였던 아마라푸라(Amarapura)로 이어진다. 1849년 당시 아마라푸라의 시장이었던 우베인이 왕궁을 건설하는 데 사용하고 남은 목재를 모아 웅장한 다리를 만들었으며, 티크 나무로 만든 약 1,000개의 기둥이 170여 년 동안 다리를 굳건히 지탱해왔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난간도 없는 다리 위를 걷다 보면 새삼 그 오랜 역사를 실감하게 된다. 우베인 다리는 현지인에게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일상의 통로이자 여행자에게는 꼭 거쳐야하는 낭만적인 명소로 여겨진다. 특히 호수에서 배를 타고 바라보는 다리의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코타키나발루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 찬란한 자연 그 이상으로 찬연한 걸작

아세안 문화유산 48

코타키나발루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 찬란한 자연 그 이상으로 찬연한 걸작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북부에 있는 코타키나발루는 사바주의 주도이자 말레이시아 제7의 도시다. 우뚝 서 있는 키나발루산은 생태계의 보고라 불리며, 해변은 세계 3대 석양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만큼이나 위대한 문화유산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코타키나발루 시립 모스크 옛 말레이시아의 모습을 간직한 사바 박물관 휴양지로 거듭나기 이전의 코타키나발루가 궁금하다면 사바 박물관으로 향하자. 외관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의 전통 양식인 롱하우스(longhouse)를 본떠 건축하였다. 롱하우스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긴 형태의 건축물로, 한 동의 가옥에 공간을 분리하여 다수의 가족이 독립된 생활을 영위하는 공동주택을 일컫는다. 이 박물관의 전시는 사바주의 민속과 종교, 예술뿐 아니라 자연사 전반을 폭넓게 다룬다. 전통의상, 토속품, 공예품, 도자기, 악기 등의 유물을 통해 여러 부족이 일구어낸 사바의 역사와 문화가 총망라되어 사바뿐 아니라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야외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민속촌 같은 헤리티지 빌리지가 나타난다.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진 환경친화적인 분위기 속에 대나무와 흙 등 자연에서 얻은 자재로 지은 사바의 전통 가옥을 지역과 종류별로 재현해 놓았으며, 일부는 직접 들어가볼 수 있다. 신비로운 코타키나발루 시립 모스크 이곳은 일부가 석호로 둘러싸인 웅장한 이슬람 사원으로 ‘떠다니는 모스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인상적인 파란 돔 때문에 ‘블루 모스크’로 불리기도 한다. 이 건축물은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가 설립한 최초의 사원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모스크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 예언자의 모스크(Al-Masjid an-Nabawi)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원내부는 예배 시간을 제외하고 입장이 가능하다. 다만 복장규정이 있으므로 입구에 있는 센터에서 이슬람 전통 의복을 대여해 차림을 갖춰야 한다. 이곳은 워터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말레이시아 최초의 모스크로, 호수에서 패들보드를 타고 15분 동안 물 위에서 모스크를 감상할 수도 있다. 사원이 기도를 올리고 숭배를 표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확장된 풍경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말레이시아 무슬림 문화를 보여준다.     사바 박물관                                                                                                     헤리티지 빌리지

프놈펜의 건축학개론 - 프놈펜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통해 캄보디아 역사의 숨결을 느껴본다

아세안 문화유산 29

프놈펜의 건축학개론 - 프놈펜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통해 캄보디아 역사의 숨결을 느껴본다 프놈펜 왕궁  앙코르와트가 캄보디아 건축미의 전부는 아니다. 수도 프놈펜에 있는 또 다른 상징적인 건축물을 기억하자. 크메르의 금빛과 은빛, 프놈펜 왕궁 프놈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적은 단연 프놈펜 왕궁(Phnom Penh Royal Palace)이 아닐까. 우동(Odon)에서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긴 후 노로돔 왕(King Norodom)의 명으로 1866년~1870년에 세운 캄보디아 왕국의 왕궁이다. 크메르 전통 양식으로 건축한 궁전은 금빛으로 빛나는 삼각 지붕이 특징이다. 약 17만5000m2의 거대한 부지에 국왕이 거주하는 크마린 궁전과 외국 사절단을 맞이하는 스론홀을 포함해 10여 개의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바닥에 은으로 만든 타일이 깔린 실버 파고다는 노로돔 왕 시절인 1892년에 처음 건축되었고 1962년 노로돔시하눅 왕(King Norodom Sihanouk)이 오늘날의 웅장한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왕은 아름다운 크메르 예술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실버 파고다 바닥에 5300장이 넘는 은 타일을 깔았으며 사용한 은의 총 무게만도 6톤이 넘는다. 사방이 뚫린 찬차야 파빌리온(Chan Chhaya Pavilion)에서는 크메르 전통 무용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길이길이 기억되리, 독립기념비 노로돔 거리(Norodom Boulevard)와 시하눅 거리(Sihanouk Boulevard)가 만나는 곳에 우뚝 선 독립기념비(Independence Monument)는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캄보디아의 신크메르 건축문화(New Khmer Architecture)를 이끈 저명한 건축가 반 몰리반(Vann Molyvann)이 크메르 양식의 전통미와 현대적 감각을 살려 만든 걸작이다. 앙코르와트에 있는 연꽃 석탑을 모티프로 한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캄보디아의 독립기념일인 11월 9일에 국왕이 거대한 횃불을 탑 안에 놓는 기념 의식을 진행한다.    독립기념비 

동서양을 잇는 푸른 항구 도시, ‘호이안 고대 도시’ ​​

아세안 문화유산 23

동서양을 잇는 푸른 항구 도시, ‘호이안 고대 도시’ ​​ 호이안 고대 도시 감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베트남에는 축적된 시간만큼 아름다운 유적지가 많습니다. 천혜의 자연 생태를 볼 수 있는 ‘하롱베이’, 번성했던 참파 왕국의 대규모 사원단지가 남아있는 ‘미선’ 등 긴 역사가 진하게 밴 베트남의 유적지들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아둡니다. 그중에서도 투본강 하구에 자리 잡은 ‘호이안 고대 도시(Hoi An Ancient Town)’는 전통적인 동남아시아 무역항의 모습이 훼손 없이 완벽하게 보존된 항구도시로서 지금도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호이안에는 기원전 2세기부터 항구와 무역 중심지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후 발전을 거듭하며 15세기에는 참파 왕국의 주요 항구가 되었습니다. 당시 호이안은 ‘파이포(Fayfo)’, ‘하이포(Haifo)’, ‘카이포(Kaifo)’, ‘파이푸(Faifoo)’, ‘페이크포(Faicfo)’, ‘호아이포(Hoai pho)’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국제적 무역항이었습니다. 그리고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아시아와 유럽 상인들이 유입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마침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적, 문화적 교류의 중심지로 번성하였습니다.   내원교     이곳의 건축물은 여러 문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졌다는 점 외에, 상당부분 나무로 건설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이안에 터를 잡은 중국 광둥성 출신 상인들이 친목을 도모했던 광조회관과, 상인과 현지인 간의 활발한 왕래를 위해 지어진 아치 형태의 다리 내원교도 목조 건축물입니다. 일반 가옥 역시 목재에 타일 장식을 더한 방식으로 제작되었으며 기와지붕이 있는 전통적 목조 양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17~18세기에 제작된 호이안의 목조 건축물들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재건되었지만, 철과 콘크리트 등 현대적인 재료로 교체하지 않고 처음 지어진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19세기까지 베트남의 주요한 항구로 명성을 유지하던 호이안은 세기가 끝날 무렵, 거대 선박이 등장함에 따라 포구가 넓은 ‘다낭’ 등 다른 지역들에 그 자리를 내어줍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호이안이 항구 도시의 기능을 잃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동남아시아 무역항의 모습을 오히려 선명히 보존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원래의 경관이 완전히 사라졌거나 현대적인 모습으로 항구를 탈바꿈한 다른 지역들과 달리, 옛 항구 도시의 자취를 간직한 호이안 고대 도시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행복의 여명, 수코타이 역사도시

아세안 문화유산 20

행복의 여명, 수코타이 역사도시 수코타이 역사공원   감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태국 최초의 독립왕국은 13세기 타이족이 세운 ‘수코타이(Sukhothai)’였습니다. 수코타이는 타이인들로부터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람캄행(Ramkhamhaeng)의 통치 시기에 전성기를 맞았으며, 현재 태국 규모와 비견될 만큼 넓은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상좌부불교의 계율을 엄격히 준수하여 왕권 통치의 근간을 확립하고 민중 신앙의 깊이를 더했으며, 타이 문자를 만들어 독자적이고 차별화된 문화를 꽃피우는 등, 태국 역사의 큰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수코타이 역사도시’는 수코타이 왕국의 대표적 유적지입니다. 이 유적지는 수도 ‘수코타이’, 왕족 거주지 ‘시사차날라이(Si Satchanlai)’, 수도를 지키던 전략적 요충지 ‘깜펭펫(Kampheng Pet)’ 등 람캄행 왕국의 주요 도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주로 치장용 벽토와 나무로 장식된 벽돌로 지어졌으며, 신할리 족(Shinhalese)이나 크메르 족의 건축양식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러 요소가 능숙하게 혼합된 ‘수코타이 건축 양식’에는 불교 예술과 스리랑카 건축 양식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왓 마하탓 사원의 불상    수코타이 역사도시에서 가장 큰 사원은 왕족 사원과 묘지가 있는 ‘왓 마하탓(Wat Mahathat, 위대한, 거대한)’입니다. 이곳에는 198개의 탑과 10개의 법당, 그리고 아름다운 불상들이 있습니다. 왓 마하탓의 불상은 달걀처럼 갸름한 얼굴형과 온화한 미소를 지녔습니다. 그중에서도 길고 가는 코와 머리 위로 불꽃처럼 돌출된 육계(usnisha), 입 주위의 주름 2개는 최초 수코타이 양식의 특징을 잘 나타냅니다. 특히, 길게 뻗은 손끝의 유려한 곡선은 지금까지도 이곳 불상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1991년, 수코타이 역사도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면적 118.5km²의 이 거대한 역사 도시는 현재 ‘수코타이 역사공원’으로 남아 찬란했던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도시로부터 십수 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에서 우리는 역사 속 태국과 현재의 태국을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여행객들은 찬란했던 유적을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태국인들은 가족들과 유적 주변을 산책하고 불상 앞에서 참배하는 일상을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태국어로 ‘행복의 여명’을 뜻하는 ‘수코타이’, 그 이름처럼 태국 역사의 떠오르는 빛이자 시작점인 ‘수코타이 역사도시’는 오늘도 여명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화합의 나라, 싱가포르에는 페라나칸이 산다

아세안 문화유산 34

화합의 나라, 싱가포르에는 페라나칸이 산다 카통 지구의 페라나칸식 가옥 감수: 싱가포르관광청 공식 홍보대행사 시너지힐앤놀튼 다문화 국가인 싱가포르를 형성한 문화적 토대, ‘페라나칸(Peranakan)’을 아시나요? 동서양을 잇는 교차로이자 훌륭한 무역항인 싱가포르는 대항해시대 이후 중국, 인도네시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여러 국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페라나칸은 아이를 뜻하는 말레이어 ‘아나크(anak)’에서 유래한 말로, 해외에서 이주한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후손과 그 문화를 일컫습니다. 15세기 전후 말레이반도의 현지 여성과 말라카 섬에 정착한 중국 상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이 대다수이며, 페라나칸 남성은 바바(Baba), 여성은 논야(Nyonya)라 칭합니다.     싱가포르의 ‘카통 지구(Katong Area)’는 오래전부터 페라나칸의 보금자리였습니다. 페라나칸식 건물이 잘 보존된 카통 지구는 페라나칸 문화를 경험하기 좋은 곳으로,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나란히 줄지은 아기자기한 건물에 시선을 사로잡히곤 합니다. 특히 밝은 파스텔톤부터 분홍과 연둣빛의 과감한 보색 조합으로 꾸며진 페라나칸식 주택은 가옥 한 채에 여러 나라의 문화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중국식 유약 타일에 일일이 꽃무늬를 새겨 붙인 화사한 외벽, 지중해식의 둥근 창틀과 처마 밑의 뾰족한 장식 등은 정교한 페라나칸식 가옥의 특징입니다. 카통 지구를 멀리서 보면 마치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장식품들을 간직해둔 화려한 장식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타이박  l  출처: Roadtrippers.asia / MDM.KIOW CENDOL    페라나칸은 그들의 전통 음식도 화려한 색감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그 맛도 풍부합니다. 페라나칸은 중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의 맛을 융합하여 자신들만의 독특한 요리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이들의 음식은 주로 중국식 재료와 조리법에 매운 칠리소스, 코코넛밀크, 레몬소스와 같은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의 자극적인 양념이 섞여 만들어집니다. 후식으로는 달콤한 국수 타이박(Tai bak)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타이박은 쌀가루와 타피오카 가루 반죽으로 국수를 뽑은 후, 시럽을 넣은 차가운 물에 얼음과 곁들여 먹습니다. 주로 생일이나 결혼식의 후식으로 마련되며 이때 타이박 면의 색깔은 분홍색, 흰색 등을 사용합니다. 타이박뿐 아니라 페라나칸 디저트는 그날 행사의 분위기에 따라 형형색색 색상이 다양합니다. 주로 결혼식 등 경사가 있는 날엔 밝은 분홍색과 흰색을, 장례식 등 슬픈 날에는 파란색을 사용하여 각각 축하와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합니다.       페라나칸은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자, 화합을 통해 성장한 혼합문화의 긍정적 결실입니다. 페라나칸과 이들의 문화는 싱가포르가 지닌 수용과 상생의 정신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한 나라에서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싱가포르, 그곳엔 일찍부터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페라나칸이 살고 있습니다.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 - 자연에 인간의 지혜를 더한 절경

아세안 문화유산 21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 - 자연에 인간의 지혜를 더한 절경 감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쌀밥은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자 주식(主食)입니다. 다른 곡물에 비해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많고 영양학적으로 훌륭하며 맛도 담백하기 때문에 단연 인기입니다. 필리핀의 루손 섬 이푸가오 지방에는 필리핀 사람들의 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불가사의하고 아름다운 절경이 있습니다. 논이 존재할 수 없는 험준하고 가파른 산비탈에 끝도 없이 펼쳐진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Rice Terraces of the Philippine Cordilleras)’이 바로 그것입니다.     루손 섬의 코르딜레라스 산맥에 계단식 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입니다. 원래 평지와 강가에서 농사를 짓고 수렵생활을 하던 이푸가오족은 무더운 저지대를 벗어나 코르딜레라스 산맥 깊숙한 곳에 도달했습니다. 산악지역인 코르딜레라스는 기온이 낮아 날씨가 시원했으며 산꼭대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은 이들이 사용하기에 넉넉했습니다. 다만 농사를 지을 만한 평지가 없었는데, 이푸가오족은 농업을 포기하는 대신 새로운 묘수를 떠올렸습니다.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     이푸가오족은 산의 등고선을 따라 크고 널찍한 표지석(Marker stones)을 깐 후, 경사진 틈새 사이사이를 작은 자갈로 촘촘하게 메웠습니다. 단단한 나무로 주변 땅을 다지고, 바로 옆에는 같은 높이의 돌담도 쌓았습니다. 그 위로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으며, 진흙을 발라 견고한 논둑을 완성했습니다. 둑 안으로는 물이 흐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는데, 관개 시설이 닿지 못하는 논에는 대나무 관을 이용해 별도의 물길을 냈습니다. 이푸가오족은 산꼭대기에서 시작된 물이 한 계단에서 그 아래 계단으로 막힘 없이 흐르게 하였으며, 각각의 논에 동등한 양의 물이 배분되도록 조절하는 놀라운 기술도 선보였습니다. 수많은 논에 하나하나 빠짐없이 물을 전달하는 복잡하고 정교한 관개 시설을 오직 사람의 힘만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푸가오족이 세대를 거듭하며 아주 오랜 기간 만들어낸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논과 가장 낮은 논 사이의 거리가 1킬로미터에 달할 만큼 규모가 커졌습니다. 사실 계단식 논은 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구조는 아닙니다. 고지대의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계단식 논의 형태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에는 그만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해발 700~1,500m의 매우 높은 지대의 깎아지른 듯한 경사면에 조성되었으며, 그 규모도 세계 최대입니다.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것도, 1천 세대에 걸쳐 내려온 그들의 지식과 경험이 빚어낸 고유의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르익은 벼  l  출처: Rice terraces, Bali, Indonesia / Shark Attacks / CC By 2.0      코르딜레라스에서는 지금도 쌀농사가 계속됩니다. 이곳 사람들은 선조가 일군 삶의 터전을 유지해나가기 위해 연간 농업 계획에 따라 자신들만의 규율을 지키며 협업합니다. 하늘에 닿을 듯 켜켜이 쌓아 올린 이곳의 계단식 논은, 심미적으로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 가능한 농사 체계’로 그 기술력까지 인정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이 탄생시킨 경이로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이푸가오 사람들에게는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발자취이자 자신이 나고 자란 터전이며 삶 그 자체입니다.

파인애플로 만든 필리핀 전통 의상 ‘바롱 타갈로그’

아세안 문화유산 32

파인애플로 만든 필리핀 전통 의상 ‘바롱 타갈로그’ 바롱 타갈로그를 착용한 필리핀 남성 글: 앤 킴 (프리랜서 작가, 필리핀 문화정보 사이트 ‘콘텐츠 스튜디오 필인러브’ 운영)  옷을 만드는 일은 레드 스패니쉬 파인애플(Red Spanish pineapple)의 길쭉한 잎사귀를 수북하게 모으는 것부터 시작된다. 진한 초록색의 파인애플 잎으로 천을 만드는 데 필요한 준비물은 세 가지. 고난도의 섬세한 기술과 정성, 그리고 시간이다. 파인애플 잎은 억세지만, 코코넛 껍질이나 조개껍데기 등과 같이 단단한 도구를 이용하여 겉껍질을 깨끗하게 제거하면 ‘식물 올실’을 추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인피 섬유가 바로 옷감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물에 씻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흰색이 될 때까지 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보송보송해질 때까지 햇살에 말린다. 다음은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섬유의 가닥 한 올 한 올을 비벼서 서로 연결한 뒤 길게 엮어야 한다. 이 실이 엉키지 않도록 실패에 가지런히 감아두면 비로소 제작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천을 짜는 일에는 파가보(paghaboe)라고 불리는 직립형 2단 베틀이 이용되는데, 베틀에 걸터앉아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고 나면 자연적으로 반투명하고 연한 노란색을 띤 피나(piña) 천이 완성된다. 드디어 바롱 옷을 지을 준비가 끝난 것이다.     지난 2017년 필리핀 순방 중 ‘아세안 창설 50주년 기념 갈라 만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보면 연한 베이지 컬러의 옷을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장국 전통의상을 입고 참석하는 관례에 따라 필리핀 전통의상을 입고 만찬에 참석한 것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입었던 옷은 바로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와 ‘바롯 사야(Baro’t Saya)’라는 이름의 필리핀 전통의상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격식을 갖춘 자리에 입는 필리핀 민족의상으로, 보통은 줄여서 바롱(Barong)이라고 부른다.  피냐(파인애플) 섬유로 제작한 연 노란빛 원단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는 머리부터 입는 형태의 남성용 풀오버 셔츠로 가슴 부근에 화려한 수공예 자수 장식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품이 넉넉한 긴소매 셔츠이며 허리 약간 아래 길이로 입는다. 속이 비치는 얇은 직물이 사용되기 때문에 속 안에 입을 흰색 셔츠를 준비해야 한다. 하의로는 허리띠가 있는 정장 바지를 입게 되는데, 바롱 밑단을 바지 안으로 넣지 않고 밖으로 내놓고 입는 것이 예의이다.       전통 방식의 바롱은 피냐(파인애플)나 아바카(마닐라삼), 혹은 바나나에서 인피 섬유를 채취하여 제직한 직물로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피냐 직물로 만든 바롱을 최고로 여긴다. 투명한 느낌이 들 정도로 얇고 가볍지만 내구성이 강하고 착용감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물을 제조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아서 소재 자체가 희귀한 데다가 가격이 매우 고가인지라 요즘은 실크나 면, 폴리에스터 등을 섞어 만든 천을 주로 사용한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고급 바롱    바롱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입기 시작한 옷이지만, 미국으로부터 독립 후 라몬 막사이사이 전 대통령이 즐겨 입으면서 대중화되었다. 21년간 필리핀을 장기집권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도 바롱 셔츠를 즐겨 입었는데, 바롱 입기를 권장하기 위해 바롱 타갈로그를 민족의상으로 지정하는 포고령(Proclamation No. 1374)을 내린 바 있다.

미얀마의 팔만대장경, 마하라우카마라제인(쿠도도)의 석장경 불탑

아세안 문화유산 25

미얀마의 팔만대장경, 마하라우카마라제인(쿠도도)의 석장경 불탑 쿠도도 파고다 감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약 135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인 미얀마는 전 세계에서 불교의 역사가 가장 깊고 오래된 나라 중 하나로, 수많은 불교유적을 자랑합니다. 우리나라에 팔만대장경이 있다면, 미얀마에는 ‘마하라우카 마라제인(쿠도도) 석장경 불탑’, 이른바 ‘쿠도도(Kuthodaw) 석장경 불탑’이 있습니다. 미얀마 만달레이에 위치하여 눈부시게 하얀 자태를 뽐내는 쿠도도 석장경 불탑은 ‘쿠도도 석장경’이라는 특별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습니다.    쿠도도 석장경  l  출처: Kuthodaw Pagoda - Mandalay, Myanmar / Kathy / CC By 2.0    ‘쿠도도 석장경’은 불경 전체를 새겨 넣은 무려 729점의 석판 모음집입니다. 수많은 승려들과 전문 공예가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이 놀라운 석판 모음집은 완성까지 약 8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1868년 대중에게 공개된 후, 1871년 민돈(Mindon, 재위 기간 1853~1878) 왕이 제5차 불교 경전결집 대회라는 역사에 깊이 기록될 큰 불교회의를 소집하여 729점의 석판 위에 새겨진 전체 티피타카(Tipitaka, ‘삼장(三藏)’)를 공인했습니다. ‘쿠도도 석장경’은 729채의 ‘쿠도도 불탑’ 속에 지금까지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으며, 덕분에 이 불탑은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 불립니다.    ‘쿠도도 석장경’은 미얀마의 역사와 불교 공동체의 역사를 알려주는 귀한 자료입니다. 이는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사와 세계 문화의 측면에서도 불교와 관련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여러 동양학 연구자들로부터 매우 중요한 기록유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불경이라는 점에서 종교적인 가르침을 증언하는 좋은 교육 도구이자 문헌으로서 희귀성을 가집니다.     오래전,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쿠도도 석장경과 판본 제작을 추진한 민돈 왕은 지금까지도 많은 미얀마인들에게 존경받습니다. ‘쿠도도 석장경 불탑’은 부처 입멸 후 오랜 시간동안 지속된 번영을 증언할 수 있는 위대한 불교의 흔적이자, 불교의 기록을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민돈 왕의 깊은 뜻과 찬란한 위업을 보여줍니다. ‘마하라우카마라제인(쿠도도)의 석장경 불탑’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현재 미얀마 국립박물관 및 도서관 고고학부가 관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미얀마의 불교적 역사와 그 가치를 빛낼 것입니다. 쿠도도 석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729채의 쿠도도 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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