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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아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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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아세안 8

[인터뷰] 베트남 영화, 자연과 문화를 담다: 배우 '베로니카 은고' 베로니카 은고(Veronica Ngo)는 베트남의 배우, 모델, 가수 그리고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 엔터테이너로, 베트남 대중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국민적인 스타입니다. 또한, 국내 기업이 최초로 투자 제작하여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베트남 영화 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헐리우드 영화 에 출연하여 국내 팬들에게 얼굴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베로니카 은고와의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 영화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Q. 베트남에서 배우, 댄서, 가수, 모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해 온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2006년에 연기를 시작해서 여러 액션 영화에 참여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2015년에는 저의 첫 영화 을 제작했는데, 베트남의 설 명절 동안 가장 오래 상영된 영화입니다. 그때부터 여러 장르를 탐구하면서 제작에 더욱 집중하고 연기, 연출에는 비교적 적게 집중했습니다. 지금은 제 회사인 ‘Studio 68’과 함께 영화 제작자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추후 2년 동안 제작할 액션, 모험 판타지, 슈퍼히어로 장르의 영화 등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아세안 영화주간’에서 상영한 베트남 영화 에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로 참여하였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베트남의 자연경관을 아름답게 담아낸 장면들이 눈길을 끄는데요. 베트남은 멋진 풍경으로 유명하며, 독특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로 인기 있는 관광지입니다. 베트남의 아름다움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을 완벽한 여행지로 꼽습니다. 베트남의 숨겨진 아름다움에서 탐험을 기대하기도 하죠. 저는 베트남의 유명한 풍경이나 관광지 외에도 제 영화를 통해 베트남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편견이 없고 친절하며, 전 세계 사람들을 따뜻하게 환영합니다. 제 스튜디오의 모든 영화에서는 이러한 베트남 고유 문화의 매력을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는 한국 기업이 최초로 투자 제작한, 베트남 액션 영화입니다. 또한 박스오피스 3위를 기록하면서 베트남에서 액션 장르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투자자이자 프로젝트의 국내 배급사인 롯데 베트남에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의 성공에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는 우리 스튜디오와 롯데, 전반적으로는 베트남 스튜디오와 한국 투자자 간의 향후 더 많은 협력을 위한 뚜렷한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과의 인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전에 영화 가 2017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내한하셨었지요.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습니까? 그때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경험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을 여러 번 여행하면서 많은 한국 영화 제작자를 만났는데, 향후 협력을 위한 많은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Q.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영화 는 베트남의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만날 수 있는 영화로, 전통에 대한 소중함을 전달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설명 부탁드리며, 이에 덧붙여 베트남 전통 문화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는 주인공인 Nhu Y의 내면의 성장 과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옛것과 새것, 그리고 꿈으로 가득 찼던 생기 넘치고 젊은 Nhu Y와 현 시대에서 발버둥 치는 필사적인 Nhu Y가 대조를 이룹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통해 그녀는 전통의 가치에 대한 좋은 교훈을 얻고, 자신이 있어야 할 정확한 위치를 찾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베트남 문화는 독특하고 풍요로우며 아름답습니다. 제가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많은 문화적 요소들, 예를 들면 베트남의 다양한 음식 등을 제 영화를 통해 전 세계 관객에게 계속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Q. 오랜 시간 베트남 영화계에서 활동하시면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영화배우로서 본인이 추구하는 베트남적인 미학이나 가치관이 있을 텐데요. 이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베트남 영화만의 특징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모든 나라에는 수 천 년의 역사를 통해 개발하고 보호한 고유 문화가 있습니다. 베트남도 예외는 아닙니다. 넓은 화면으로 보여주기에 너무도 아름다운 베트남 문화의 많은 요소가 있습니다. 풍부한 민속, 혼이 담긴 음악, 전통 의상의 숨 막힐 듯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 , , 최근 까지 제 모든 영화에서 이야기하려고 더욱더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Q. 배우뿐만 아니라 모델, 영화 제작자 등 다양한 분야와 국가에서 활동하면서, 대표적인 헐리우드 영화인 에도 출연했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번에 만나게 된 한국 언론과의 많은 인터뷰에서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뭐라고 설명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영화, 좋은 역할을 찾고 있고 기회가 오면 잡을 것입니다. 국내 영화는 아이들의 모험 1편, 속편인 액션 블록버스터 1편, 그 외 다른 액션/판타지 영화 3편 등 2021년까지의 영화 일정이 짜여져 있습니다. 이 모든 영화가 한국에 소개되어 선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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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아세안 9

[인터뷰] 황금빛 문화와 유적을 지켜온 태국 이야기: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이번 호에서는 한국동남아학회 및 한국태국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국회 한-아세안 포럼 자문위원 및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 한-태 소사이어티 상임대표 등으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김홍구 교수에게서 태국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태국 속 한류와 한국 속 태류(泰流)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Q. 태국은 외세의 지배를 한 번도 받은 적 없으며, 지금까지 여러 왕국을 거치면서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태국의 입헌군주는 다른 입헌군주국과는 달리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하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태국에서는 1932년 입헌혁명으로 수코타이 왕국 이래 약 700년간이나 지속되어 왔던 절대군주제가 붕괴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서구외세의 식민지배 위협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국왕과 왕실에 대한 존경심은 태국국민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태국 입헌군주제를 반석위에 올려 놓은 사람이 바로 2016년 서거한 라마 9세, 푸미폰 국왕입니다. 1946년 즉위 당시 19세였던 푸미폰 국왕은 스위스의 로잔대학(University of Lausanne)을 수료하고 1950년 귀국하여 공식 대관식을 치른 후 입헌군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공적인 입헌군주직을 수행함으로써 60번째 생일 이후인 1987년에 푸미폰 대왕(King Bhumibol Adulyadej The Great)으로 추대되어 입헌군주로서는 최초의 대왕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1988년에는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국왕이 되었습니다. 재위 70년 동안 푸미폰 국왕은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하면서 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푸미폰 국왕은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국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불법(佛法)에 따라 행동하고 통치한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심어주며 진정한 불교도 국왕의 자질을 보여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푸미폰 왕이 실행한 왕실개발계획(농촌개발계획)인데, 이는 모든 국민들에게 '우리를 잘 살게 해준 아버지 같은 왕'으로 각인시켰으며, 또한 그 공로로 유엔으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자질과 정치사회적 능력을 입증하면서 카리스마를 갖게 된 입헌군주 푸미폰 국왕과 왕실에 대해 국민들은 큰 존경심을 표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고 현재는 그의 아들인 라마 10세, 마하 와치라롱꼰 국왕이 입헌군주로서 그의 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Q. 태국은 인구의 약 95%가 불교를 믿으며, 3만 개 이상의 사원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태국은 불교의 영향이 큰 나라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태국 불교의 특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태국의 상좌부불교는 대중구제를 중시하는 대승불교와는 대조적으로 승려 자신의 해탈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상좌부불교 교리에 의하면 인간은 고통, 노여움, 병고, 죽음 등의 고뇌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윤회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 고뇌의 원인은 인간이 가진 쾌락이나 소유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집착이 있는 한 인간은 윤회계의 포로가 되고 생과 사를 반복하면서 영구히 고뇌를 계속하게 됩니다. 이 고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길은 팔정도(八正道)를 행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이며, 해탈의 권리는 승려에게만 주어집니다. 상좌부불교 교리에 따르면 초자연적인 힘이나 신에게 의존하는 일 등은 완전히 배제되며, 불교적 세계관의 이해와 그에 근거하는 실천에 의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신비적 요소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적이고 개인의 깨달음을 강조하는 점에서 개인 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실천을 가능케 하고자 태국의 승려들은 승가(僧伽)라고 부르는 조직체를 국가적 규모로 구성하고 있는데요. 태국 승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승가에 승려로서 참여하는 것은 성인남자에 한하고 있습니다. 미성년자에게는 십계를 하사하여 넨(沙弥僧)이라고 부르며 여성은 승가의 가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승가의 구성원이 된 자는 전답을 경작하는 등 일체의 세속적인 일이 금지됩니다. 따라서 승가는 그 자체로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으며 의식주 전반을 재가신도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Q. 태국의 특색이 묻어나는 문화에는 불교와 관련된 전통 의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태국의 대표적인 전통 의식을 꼽아 설명해주세요. 송끄란 축제는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계속되는 태국식 설날 축제로, 여기서 ‘송끄란’은 ‘태양자리의 이동’을 의미합니다. 송끄란은 1940년 태국에 신정이 도입되기 전까지 태국인의 유일한 설날이었습니다. 물의 축제라고도 불리는 송끄란은 상대방을 축복해 주는 의미에서 서로 물을 뿌려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또 연장자들의 손에 물을 묻히면서 축복을 빌고, 불상을 목욕시키기도 하며, 얼굴에 석회석으로 만든 흰 물질을 칠하기도 합니다. 이 흰 물질은 액운을 막아준다는 의미를 갖는데, 옛날에는 얼굴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바르기도 했습니다. 또 사원에 모래를 가져가는 의식은 행운이 몰려오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발에 모래를 묻혀서 사원을 나서는 일은 악행이라 믿기 때문에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러이 끄라통 축제는 태국식 음력 12월 보름밤에 개최됩니다. ‘끄라통’은 ‘바구니’를 뜻하며, 원래 바나나 잎사귀나 나무줄기 껍질로 만들었습니다. 옛날에는 그 안에 음식, 빈랑나무 열매, 꽃, 양초, 선향과 동전을 담았습니다. 오늘날의 끄라통은 대부분 합성물질로 만들고 채색된 종이를 바릅니다. ‘러이’라는 말은 ‘물에 띄운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러이 끄라통 축제는 끄라통에 불을 붙인 양초와 선향을 싣고 소원을 담아, 강이나 운하에 띄워 보내는 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행사의 유래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강물과 운하의 물을 사용하고, 또 더럽힌 것에 대해서 물의 여신에게 사과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 나르마다 강(Narmada River)의 모래사장에 있는 부처의 발자국을 찬미하기 위하여 꽃과 양초·선향을 바치는 것이라는 설, 강과 운하가 물로 넘쳐흐르고 달빛이 아름다운 시기를 축하하기 위해서 만든 축제라는 설 등이 있습니다. 브라만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비슈누 신을 찬미하기 위함이라는 것인데, 끄라통을 만들어서 비슈누 신이 살고 있는 ‘우유의 바다’로 띄워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Q. 태국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수많은 사원, 과거의 영광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세안문화원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가장 태국답다고 생각하시는 유적지를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방콕 왕궁 내에 자리한 왓 프라깨우는 왕실 수호 사원으로, 방콕을 대표하는 볼거리로 꼽힙니다. 태국에서 가장 영험한 불교 사원으로 여겨지고 있죠. 본당에 안치된 에메랄드 불상이 유명하여 ‘에메랄드 사원’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으로 꼽히는 에메랄드 불상은 높이 약 66cm, 폭 48.3cm 크기로, 녹색 옥으로 만들어졌으며 가부좌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1년에 세 번, 태국 국왕이 직접 불상의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을 진행할 정도로, 태국인들은 이 에메랄드 불상을 국왕의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원 앞 회랑 벽면에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태국 화풍으로 묘사한 178개의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벽화는 라마 1세 때 제작된 것으로, 지금까지 복원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왓 프라깨우 법당 주변에는 라마 1세 때 지어진 도서관 프라 몬돕, 크메르 양식으로 지어진 옥수수 모양 탑이 인상적인 쁘라쌋 프라 텝 비돈, 라마 4세 때 크메르 유적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앙코르 와트 모형 등 눈여겨볼 만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Q. 태국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주제들을 자세하고 알기 쉽게 소개한 이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이 책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일반인들이 태국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설서 수준의 단행본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1999년 을 출간하였으며, 2006년에는 그 수정·보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2016년 을 저작할 때, 태국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의 주제들을, 최대한 자세하고 알기 쉽게 소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태국의 개황, 자연환경, 역사, 사회와 교육, 종교, 예술과 스포츠, 의복·음식·주거, 민족·언어·문학, 정치, 경제, 한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다루어 태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백과사전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태국어의 고유명사, 지명, 인명 등은 현재의 추세를 반영하여 모두 현지에서 사용되는 발음대로 한글로 표기하고, 태국어도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Q. 최근 한국에서는 해외 여행지로 방콕, 파타야, 푸켓, 치앙라이, 코사무이 등 태국의 도시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또한 태국음식, 태국마사지 등 태국의 문화도 이제는 더 이상 이질적이지 않은데요. 한국과 태국이 예전에 비해 많이 가까워졌다고도 생각됩니다. 양국이 앞으로 더욱 친밀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한국 속에서의 태류 현상을 선도한 것은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 이민자들로, 태류가 출현한 시기도 대략 2000년대 초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태국 관련 대중문화, 관광, 음식, 마사지, 유학, 영화 등 다양한 현상들을 태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한류와 태류 두 가지 현상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태국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가 한국을 선택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태국인 관광객 수가 증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한류를 경험한 태국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주요한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쌍방향 문화교류에 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계기는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태류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아직까지 영향력이 크지 않은 태국 대중문화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면 태국인들의 한국 대중문화 관심도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Q. 태국 전문가로서 앞으로 교수님의 발걸음이 궁금합니다. 태국과 관련하여 계획하고 계신 일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저는 ‘한-태 소사이어티(2018년 11월 창립)’ 상임대표로서 한국과 태국간의 민간 교류, 외교·통상·정책 자문 및 개발 등 한-태 민·관·학의 협력 확대를 목적으로 두고 이사회와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태국 지역 연구와 학술 세미나, 지역전문가 지원 등을 통해 태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국내외 지역전문가들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한국과 태국이 긴밀하게 협조하고 도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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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아세안 7

[인터뷰] 동남아시아의 아시아 문화 교류는 어떻게 자리 잡았나: 스테판 머피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 수석 큐레이터 스테판 머피는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로, 지난 3월 17일 막을 내린 한국과 싱가포르의 국제교류전 ‘바다의 비밀, 9세기 아랍 난파선’을 진행했습니다. 동남아시아 고고학 전문가인 스테판 머피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상 동서교류의 구심점, 싱가포르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스테판 머피(Stephen Murphy),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Asian Civilisations Museum) 수석 큐레이터 Q. ‘문명’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문명’이라는 단어를 명칭에 사용하고 있는 아시아문명박물관에서는 어떤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와 함께 아시아문명박물관의 전시관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시아문명박물관은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유산과 싱가포르 간의 역사적 연관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1997년에 처음 개장한 아시아문명박물관은 이후 국립박물관으로 지정되면서, 싱가포르 선조의 역사와 아시아 간 문화적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문명박물관 갤러리는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는 여러 문화예술 교역의 항구인 싱가포르가 독립과 다민족의 유입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1층 갤러리에서는 ‘무역’을 통해 알 수 있는 싱가포르와 다른 문화와의 연관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양식의 예술이 어떻게 싱가포르 안으로 유입되고 섞였는지를 보여줍니다. 2층 갤러리에서는 인도와 중국, 동남아시아의 예술과 문화, 그리고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어떻게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는지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14세기 인도의 기독교 예술과 17세기 중국의 기독교 예술을 통해, 기독교가 아시아에 보급된 과정과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교역로 역할을 한 것이 싱가포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입니다. 현재 공사 중인 3층 갤러리는 ‘재료 및 디자인’ 갤러리로, 올해 말 다시 문을 열 예정입니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의류와 소품, 장신구 등을 통해 문명 간 다양한 상호작용이 가능했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1998년 수중발굴된 아랍난파선 Q. 올해 초 한국에서 한-싱가포르 국제 교류전 ‘바다의 비밀, 9세기 아랍 난파선’을 진행하셨습니다. 이 전시에 대한 소개와 함께, 전시된 유물들의 의의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이번 국제교류전은 1998년 당시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발견된 ‘아랍 난파선’의 유물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9세기에 당나라와 서아시아가 교역했음을 시사하는 난파선 유물은 매우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이는 20세기 동남아시아 수중 고고학 역사상 가장 큰 성과로 손꼽힐 정도로 의미가 큽니다. 난파선에서는 중국 도자기와 무역품 60,000여 점이 발굴되었습니다. 당시 이 배들은 중국 닝보에서 출발해 일본의 교토를 거쳐 서아시아로 항해하던 중 사고를 당하여 중간에 한국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시된 유물을 통해 아시아의 해상 무역활동과 상호 문화교류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아시아 국가 간 문화 교역을 보여주어, 아시아가 세계 속에서 고립되지 않았음을 알린 아주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Q. 아시아 국가들은 고대부터 서로 왕래하며 문화와 예술품 등을 교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교류에서 싱가포르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또, 이 교류의 역사를 보 여줄 수 있는 유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랍 난파선’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고대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간에는 교역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9세기는 ‘해상실크로드 황금기’로 불릴 정도로 찬란했습니다. 이 해상실크로드에서 싱가포르는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다문화적 무역항이었습니다. ‘동서양의 관문’이라고 불리는 말레이반도의 끝에 위치해 있어, 지리적으로 동양과 서양을 잇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의 문물을 교환하는 교류지로서의 싱가포르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 무역의 결과물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를 아우르는 것이었습니다. 교류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에는 중국의 도자기가 있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잘 보관된 중국 도자기 같은 유물들은 아시아와 세계의 문화적 연관성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국제 교류전처럼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는 난파선 유물들이 정서적으로 특별하게 와닿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이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장사요(長沙窯) 도자기 포장상태 Q. 아세안 국가들은 지금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세안 국가들이 미래에 더 좋은 공동체로 나아가는 데 있어 고고학과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고고학과 예술이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과거의 고고학은 국가주의를 견고하게 할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저는 앞으로 고고학이나 예술이 아세안 국가들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를 통해 아세안 국가들의 무역과 문화 교류에 상호작용하도록 돕는 기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화백자 나뭇잎무늬 접시(중국 당, 9세기) 녹유 새장식 잔(중국 당, 9세기) 백자 항아리(중국 당, 9세기) 금제 인물무늬 술잔(중국 당, 9세기) Q. 마지막으로 아시아문명박물관에서 계획 중인 전시나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세요. 아시아문명박물관은 6월부터 9월까지 ‘GUO PEI: CHINESE ART & COUTURE’ 전시를 엽니다. 이 전시는 멕시코나 남미 지역의 은이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왔고, 중국의 화려한 예술과 전통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오늘날 중국과 세계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동시대 패션쇼입니다. 이듬해 5월에는 아시아문명박물관과 연계된 박물관에서 많은 문화재를 전시할 예정이지만, 향후 아시아문명박물관 자체의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아시아문명박물관은 아시아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싱가포르의 문화를 알리는데 힘쓸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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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아세안 8

[인터뷰] 다양한 축제로 꽃피운 필리핀 문화의 다양성: 김정환 건국대학교 초빙교수 이번 호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필리핀의 축제를 지켜봐 온 김정환 건국대학교 초빙교수를 만나보았습니다. 그는 필리핀의 축제 200여 개를 현장 조사하였으며, 일곱 개의 필리핀 축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축제를 통해 필리핀의 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정환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섬의 개수만큼 다양한 문화와 축제의 나라, 필리핀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Q. 필리핀은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입니다. 섬의 개수가 많은 만큼 문화가 다양하고 복합적일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필리핀은 말레이계, 중국계 화교, 메스티소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다인종 국가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은 마닐라가 있는 가장 위쪽 지역인 루손(Luzon), 중간에 위치한 지역인 비자야(Visayas), 가장 남쪽 지역인 민다나오(Mindanao) 등 세 개의 지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중국계 화교는 루손 지역에 특히 많이 모여 있으며,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 올라온 원주민들은 민다나오 지역에 많이 모여 있습니다. 공식 언어는 필리핀어와 영어지만, 각 지방에서는 70개 이상의 지방 토착 언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필리핀은 인종과 언어, 종교 등 각기 다른 문화가 혼재되어 있으나, 다른 문화를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문화의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어우러지는 특징을 보입니다. Q. 필리핀은 ‘축제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일 년 내내 축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다양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축제는 무엇일까요. 필리핀에서 열리는 축제는 2만여 개에 달할 정도로 많고 매우 다양합니다. 필리핀의 축제는 지역의 전통문화, 특산물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축제는 목적만 다를 뿐, 각 지역의 문화가 잘 녹아있습니다. 필리핀 소수민족의 문화가 반영된 축제로는, 칼리보(Kalibo) 지역에서 열리는 ‘아띠아띠한 축제(Ati-Atihan Festival)’가 있습니다. ‘아띠아띠한’의 아띠는 칼리보 지역의 원주민인 아띠족을 의미하며, 이 축제는 아띠족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축제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띠족처럼 보이기 위해 새카맣게 분장을 한 후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춥니다. 바기오(Baguio) 지역에서는 꽃 축제인 ‘파낭뱅아 축제(Panagbenga Festival)’가 개최되는데, 지역 원주민인 이푸가오족의 전통문화와 무용, 음악을 선보입니다. 또 산 카를로스(San Carlos) 지역에서는 ‘핀타플로레스 축제(Pintaflores Festival)’가 열립니다. 이 축제는 화려한 문신으로 몸을 치장한 고대 전사 ‘핀타도스(Pintados)’를 테마로 한 ‘나빙카란 타투 축제’와 ‘댄스 오브 플라워’ 행사가 합쳐진 축제입니다. 10월에는 바콜로드(Bacolod) 지역에서 가면을 쓰고 즐기는 ‘마스카라 축제(MassKara Festival)’가 열리며, 11월 세부(Cebu) 지역 알레그리아(Alegria)에서는 대나무 악기 연주와 대나무 춤 등이 어우러지는 필리핀 지역 전통 문화예술축제인 ‘카와얀 축제(Kawayan Festival)’가 열립니다. 바기오 파낭뱅아 축제 산 카를로스 핀타플로레스 축제 [좌] 바콜로드 마스카라 축제 [우] 알레그리아 카와얀 축제 Q.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겪은 나라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특성과 관련한 축제도 있을 것 같은데요. 스페인의 종교나 문화에서 비롯된 축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랜 기간 필리핀을 지배한 스페인의 영향으로 인하여, 필리핀은 가톨릭교 신자가 전 국민의 83%에 달합니다. 그렇다 보니 1월과 2월 사이에는 가톨릭교와 관련된 축제가 많이 열립니다. 바로 ‘산토 니뇨(Santo Nino)’라고 하는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산토 니뇨를 기념하는 축제 중 가장 대표적인 축제는 세부(Cebu) 지역에서 열리는 ‘시눌룩 축제(Sinulog Festival)’입니다. 또 일로일로(Iloilo) 지역에서도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디낙양 축제(Dinagyang Festival)’가 열립니다. 매년 12월, 팜팡가(Pampanga) 지역에 위치한 산 페르난도(San Fernando)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자이언트 랜턴 축제(Giant Lantern Festival)’가 열립니다. 이 축제를 장식하는 랜턴들은 팜팡가 지역 내 마을들에서 손수 만들며, 가장 아름다운 랜턴을 두고 경합을 벌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식 음식과 관련한 축제도 있습니다. 비간(Vigan) 지역에는 특산물인 마늘을 이용해 스페인식으로 만든 롱가니사(Longganisa)라고 하는 소시지가 있는데, 필리핀을 대표하는 소시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상] 세부 시눌룩 축제 [하] 일로일로 디낙양축제 Q. 필리핀의 문화 중 계속해서 지켜나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을까요. 그 문화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민다나오 지역의 다바오(Davao)라는 도시에서 열린 ‘카다야완 축제(Kadayawan Festival)’에 가서 현장 조사를 하고 왔습니다. 이 축제에는 ‘듀라 카다야완(Dula Kadayawan)’이라는 전통부족 게임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듀라(dula)’는 게임을 뜻하는 말로, 우리말로 표현하면 민속놀이입니다. 각 마을의 대표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우리나라의 민속놀이인 공기놀이, 제기차기와 유사한 형태의 놀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듀라를 시작하기 전에는 ‘마녹(Manok)’이라고 하는 제의식을 치릅니다. 원래 마녹은 ’닭‘을 의미하는데, 제사장이 거행하는 의례에 마녹의 배를 갈라 번제를 올리기 때문입니다. 듀라와 마녹은 지금까지도 전승되고 있는 필리핀의 전통문화라는 점에서, 계속 지켜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 페르난도 자이언트 랜턴 축제 Q. 2019년, 한국과 필리핀은 수교 70주년을 맞아 올해를 ‘한국-필리핀 상호교류의 해’로 지정했는데요. 두 나라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우선, 문화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또 각국의 문화를 서로 인정하고 수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체면을 뜻하는 히야(Hiya)를 중시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더 신경을 쓰는 편이며, 싫어도 웃으며 ‘Yes’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가끔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곤 합니다. 반면에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차이는 서로의 문화가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차이이므로, 상대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필리핀 관련한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많이 갑니다. 하지만 저는 필리핀 현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필리핀의 한 대학에 한국어과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해당 대학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셔서, 2년 후에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필리핀의 전통문화, 축제와 관련한 현장 연구는 계속해서 해나갈 것입니다. 다바오 카다야완 축제 Q. 마지막으로 ACH 뉴스레터를 통하여 필리핀에 대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서 필리핀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바꾸었으면 합니다. 필리핀은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이 풍부하여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과거 6·25 전쟁 참전국가 중 세 번째로 많은 군사를 보내준 나라이기도 합니다. 또 필리핀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우리나라에 쌀을 원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두가 잊고 지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필리핀을 우리나라와 동등한 나라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화와 생활습관, 민족성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양국 간 우호적인 관계가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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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아세안 18

[인터뷰] 언어를 통한 미얀마 이해: 박장식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이번 호에서는 미얀마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언어는 물론 역사와 문화, 사회‧경제적 부분까지, 미얀마를 이해하고 한국과의 상호 교류에 있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박장식 교수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미얀마의 언어, 역사, 문화에 대해 알아가고 양국의 교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Q. 그간 언론을 통해 말씀하신 내용에서도 드러나듯이 미얀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계십니다. 또한, 국내에 미얀마어가 자리 잡게 된 데에는 교수님께서 혁혁한 공을 세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미얀마와 인연을 맺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본래 인도어를 전공하고 있었던 저는 1983년 10월 미얀마에서 발생했던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을 계기로 당시 정부가 미얀마어 교수 요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실시한 국비 유학에 합격하여 일본 오사카외대에서 수학하면서 미얀마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순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호기심에 석사 과정까지 마쳤던 인도어 공부를 과감히 포기하였으니 식구들과 주변 교수님들의 반대가 심하긴 했지만, 개척자의 심정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미얀마어를 처음 배우고 미얀마와의 관계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찹니다. Q. 미얀마어만의 고유한 특징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또한, 미얀마어가 한국어와 공통점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 부분도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미얀마어는 어족상으로 보면 중국-티베트어족,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하는 일종의 고립어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독특한 언어에 속합니다. 성조도 있고 매우 독특한 음성을 지니고 있지요. 한국어와의 공통점은 어순이 같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일상 회화에 사용되는 구어체를 배우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도 남부 팔라바-그랑트어 문자에서 파생된 변형 문자를 사용하고 불교와 힌두교 경전어인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에서 파생된 어휘가 많이 사용되며 구어체와 문어체의 구조가 많이 달라서 중급 이상의 수준에서는 무척 어렵게 여겨집니다. 미얀마어의 문법적 구조에 대한 명쾌한 연구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얀마어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미얀마어를 오해하고 있는 이유도 위와 같습니다. 높임말, 즉 경어체는 미얀마어에 없어서 상대를 높이는 표현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몇 가지 표현상의 어법만 익히면 됩니다. 승려에게 구사하는 말이 특별하게 존재하지만, 외국인들은 사용할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방언은 어떠한 언어에서도 다 존재하는 것이지만, 미얀마어에는 표준어라는 개념이 없어 사용하는 언어 차이는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Q. 이번 달부터 ACH 뉴스레터에서 새로운 코너가 마련되었습니다. 독자들에게 아세안의 언어를 간단하게 소개하는 코너로 이번 달에는 미얀마어를 소개합니다. 미얀마가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만큼 미얀마어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미얀마어를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미얀마어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다른 동남아시아 언어와 마찬가지로 언어 구조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습니다. 영어나 한국어에 비하면 현지 학자들의 연구마저 일천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일상 생활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을 중심으로 언어를 익힙니다. 그러다보니 미얀마어에도 존재하는 특별한 음성과 성조의 자질, 그 음성과 성조의 변화(유성음화 등), 어형성, 통사 구조, 의미적 특질 등 이른바 문법이라 불리는 말의 규칙에 대한 성찰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법은 말을 익히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때 학교에서 가르쳤던 영어 학습 방식의 잘못으로 문법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얀마어 학습에도 이것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리를 내고 듣는 반복적 학습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K-MOOC, EBS초급미얀마어 프로그램에서 하고 있는 저의 기초 미얀마어 강좌는 인터넷으로 쉽게 볼 수 있으며 교재도 참고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유투브나 해외 방송(VOA News, BBC 등)에도 미얀마어 강좌가 있으니 다양하게 활용하시면 됩니다. Q. 언어는 문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얀마어에 대한 조애가 깊으신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미얀마어와 미얀마의 문화적 관계, 미얀마어를 통해 바라본 혹은 미얀마어에 반영된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전공이 언어학이지만, 요즘 학문 간의 경계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져서 특정한 분야만을 고집해서는 이질적인 사회를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어 연구 외에도 예술, 종족성, 종교, 심지어는 정치‧경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문화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언어는 한 사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언어 현상이 그 사용 집단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 한자어를 사용하듯이 미얀마 사람들도 인도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아 고대 불경 경전 언어의 어휘가 상당수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의 ‘찰나’나 미얀마어의 ‘커나’는 같은 말입니다. 둘 다 고대 인도어입니다. ‘수, 우, 미’ 이런 말도 중국 한자어라고 생각하겠지만, 모두 고대 인도어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많이 알고 계시는 ‘수완나부미’도 ‘황금의 땅’이란 팔리어입니다. ‘수+완나’(미얀마어에서는 ‘뚜+원나’)라는 말은 ‘뛰어난 색상을 지닌 것’ 즉 ‘황금’이라는 말입니다. 중국어가 뛰어난 문화를 지닌 언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시아에는 인도어의 영향이 더 깊습니다. 그래서 미얀마는 인도 문화를 차용하여 꽃 피운 독특한 자신들의 종교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와는 불교라는 종교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문화적 유사성이 많습니다. Q. 미얀마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도 많고, 최근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얀마를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또한, 미얀마는 한국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지난 반세기 이상 미얀마는 군부 지배로 인하여 외부 세계와 단절되었다가 이제 문호를 활짝 열고 세계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실 196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미얀마(당시에는 버마라는 국호를 사용)는 아시아에서 최고로 잘 살던 나라 중의 하나였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UN 사무총장(우땅, 한국에는 우탄트로 알려져 있습니다)을 배출하였고, 당시 양곤대학교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대학이었습니다. 천연 자원도 풍부하고, 다양한 지형을 품고 있어 불교 유적지 외에도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도 매우 많습니다. 해외와 부지런히 교류를 해야 하는 한국의 정치‧경제 특성상 미얀마는 아직 강대국의 입김이 세게 불지 않는 유일한 발전도상국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기회가 있는 지역이며 이제부터 어떻게 상생할 것인가하는 점에서 접근을 한다면 동남아시아 다른 지역보다 훨씬 유리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한류 문화를 사랑하고 한국인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주변 중국과 일본보다 유리한 입장입니다. Q. 1980년대부터 미얀마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 활동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얀마와의 언어적, 문화적 교류 현황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양국 간의 교류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합니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이고, 또한 너무나도 일방적입니다. 미얀마인들은 한국을 잘 모르면서도 K-POP이나 드라마에 열광하지요. 이젠 한국어를 미얀마에서 흔히 듣고 한국인이라고 하면 매우 반기니 정말 미얀마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우리는 미얀마를 어느 정도 이해할까요? 음악이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미얀마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과연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역사적 관계나 실질적인 접촉의 시간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매우 피상적인 관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기업들이 진출한 것이 대부분이고, 미얀마인은 한국에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것이 양국 간의 교류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미얀마 진출 한국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미얀마어를 배우는 것이고, 한국의 노동시장 진출을 위해 미얀마 사람들도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는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적 가치를 제외한다면, 양국 간의 관계에서 내놓을 만한 가치 있는 일은 아직 적겠지요. 문화 교류는 상호성에 의존합니다. 아직 경제적 격차가 있는 만큼 상생의 경제 관계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면 문화적 차원의 교류는 금방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관광자원이 많은 미얀마에 대해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일단 미얀마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Q. 미얀마 국빈의 방한 시 통역을 맡아 진행하시는 등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국내의 미얀마 전문가로서 중장기적인 활동 계획이 있으시다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양국 간의 관계 증진을 위해 다양한 방면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인문학자로서 미얀마가 지니고 있는 엄청난 문화유산, 그 중에서도 역사 기록이나 벽화 같은 미얀마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습니다. 비문, 뻐러바잇, 뻬자 같이 종이 또는 야자 잎에 미얀마어로 기록된 매체는 정말 많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많은 기록물이나 독특한 벽화를 지니고 있는 국가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점점 훼손되고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안타까워 제대로 보존되고 관리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우리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문화 사업을 더욱 구체화시켜 미얀마 문화 발전에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미얀마의 뛰어난 관광지를 개발하고 관광 상품화 하는 데에도 적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미얀마 문화와 관련된 저서나 논문도 계속 발표하여 좀 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ACH 뉴스레터를 통하여 미얀마에 대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참 빠르게 진전되고 있지요. 시대적 상황, 여건, 양국 간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져 일반인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지리적 위치, 역사적 관계를 고려했을 때 베트남과 같은 뜨거운 관계가 되지는 못 할 겁니다. 하지만,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 구조를 살펴보자면, 베트남 외에 또 다른 진출지역이 필요합니다. 현재로서는 미얀마가 우리와 상생할 수 있는 지역으로 매우 적절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얀마의 정치적 불안정이 해소되면 미얀마는 정치‧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어떤 지역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교육열이 높은 미얀마 사람들이 자녀들을 해외로 보낸다면 한국을 서슴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지적 분야의 교류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사명으로도 여겨집니다. 관계 증진은 상호성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경험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세안문화원과 같은 한국의 동남아시아 문화 발원지도 필요하고, 미얀마의 문화적 가치를 발굴하여 스스로 자긍심을 발신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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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양한 문화의 나라, 말레이시아: 홍석준 국립목포대 교수 이번 호에서는 문화 인류학자 홍석준 교수와 함께 말레이시아 문화의 다양성과 그 유래, 변화를 살펴봅니다. 인터뷰를 통해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말레이시아의 ‘혼합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말레이시아에 한층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Q. 말레이시아는 한 편으로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이기도 합니다. 이슬람 부흥에 따른 말레이시아 전통 문화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을까요? 1970년대 초반부터 대학생을 포함한 지식인 집단을 중심으로 이슬람 부흥운동(Dakwah, Islamization, Islamic revivalism 또는 Islamic Resurgence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지칭됨)이 일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슬람 부흥은 말레이시아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전통문화와 예술에 이슬람적 가치와 규범이 강조되면서 이슬람적 색채가 강화되었습니다. 이슬람 부흥운동이 전개되기 이전, 전통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강했던 힌두교의 영향이 이슬람 부흥 이후에는 비이슬람적이고 비말레이시아적인 것으로 평가되면서 이를 이슬람적인 원칙과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말레이시아 전통문화와 예술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Q. 말레이시아 문화가 다른 아세안 국가와 구분되는 부분, 특히 음악 등 전통 예술 세계에 있어 주변 국가들과는 다른 특징들이 궁금합니다. 말레이시아 문화 중에서 특히, 음악과 춤, 공연 등 전통 예술 세계에 있어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의 차이점은 혼합 문화(Mixed Culture) 또는 문화적 혼종성(Cultural Hybridity)이나 혼종의 문화(Hybrid Culture)라고 요약, 정리될 수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종족 분포는 크게 말레이계와 화인, 인도계, 오랑 아슬리(Orang Asli)라 불리는 말레이반도 내의 원주민과 보르네오섬 북부에 위치한 사라왁과 사바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반(Iban)족과 까다잔(Kadazan)족 등의 원주민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말레이계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슬림이 주를 이루고 있고, 화인들은 불교와 도교, 기독교 등으로 구성되며, 인도계는 힌두교도와 무슬림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오랑 아슬리는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과 같은 전통 종교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말레이계는 이슬람과 관련된 예술을 발달시켜 왔으며, 화인들은 불교와 도교 관련 예술 세계를, 인도계는 힌두교와 이슬람 관련 문화와 예술을 계승, 발전시켰고 오랑 아슬리는 애니미즘과 샤머니즘과 관련된 전통 신앙과 종교에 기반을 둔 나름대로의 고유하면서도 독자적인 문화와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Q.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인구 구성(말레이계, 화인, 인도계, 원주민 등)은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종족 사회로서 현재 말레이시아 문화는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인구 구성은 말레이시아 문화의 형성과 변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2019년 현재 말레이시아의 인구 구성은 말레이계 약 62%, 화인 약 22%, 인도계 약 8%, 원주민 약 2%, 기타 약 6%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인구 구성에서 주목되는 변화 중 하나는 화인의 비중이 점진적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다문화 사회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화인의 문화적 영향력이 줄어드는 반면 말레이계의 이슬람화 영향이 강화되어 현재는 이슬람 문화가 말레이시아 문화 전반에 걸쳐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동남아 전문가로서 바라본 아세안 국가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말레이시아, 그리고 아세안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가는 것이 좋을까요? 몇 해 전에 아세안 국가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바가 있습니다. 조사 결과, 당시까지만 해도 긍정적인 인식이 적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재 아세안 국가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습니다. 여기에는 아세안문화원의 창립과 활동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아세안 국가에 대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우호 관계와 상호 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교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양국 간의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역사 등에 대한 상호 이해를 위한 존중과 배려가 현실화될 수 있는 실천적 노력이 무엇보다도 긴요하게 필요합니다. Q. 다른 한 편으로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몇 년 전에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인들의 근면성이나 일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와 자세 등을 그 이유로 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이고, 과학기술이 발전한 나라이며, 한류로 유명한 나라라는 것을 강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말레이시아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보다 더 좋은 내용으로 발전시켜 나갈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일이 중요합니다. Q. 한국에서 동남아시아 연구는 언어와 국제정치와 통상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학 또는 문화인류학 연구를 진행하시는 교수님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학자로서, 동남아 연구자로서 가지고 계시는 목표가 있을까요? 현재 한국은 주로 정치학, 국제정치학, 국제관계학, 경제학, 역사학, 사회학, 언어학, 지리학, 인류학 등을 중심으로 학제적 연구를 통해 동남아시아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연구가 중요하지만, 저는 일종의 지역연구로서 학제적 연구가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인류학 분야는, 한편으로는 하나의 분과학문이면서도 학제적 연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남아시아 지역연구자 중 한 사람으로서, 문화인류학의 이론과 방법론, 사례연구들에 대한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동남아시아 지역 전반에 대한 학제적 연구의 고유하면서도 독자적인 연구 주제와 내용, 이론과 방법론의 틀을 새롭게 구축하고, 이를 정립하고자 하는 학술적, 실천적 작업을 위해 미력이나마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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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아세안 8

[인터뷰] 한국과 라오스의 가교가 되고자 합니다: 이요한 사이버한국외국어대 교수 이번 호에서는 라오스 전문가이자 삶 속에서 라오스를 이해하고 사랑해온 이요한 사이버한국외국어대 교수를 만나보았습니다. 그는 수파누봉대학교(루앙 프라방 국립대학교)에 재직하기도 하였으며 현재까지 라오스와 관련된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한국과 라오스의 가교가 되고자 하는 이요한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시간이 멈추는 곳’ 라오스에 대해 보다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Q. 라오스는 아세안 국가 중에서도 관광 외에는 한국에 비교적 덜 알려진 나라로 꼽힙니다. 라오스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2005년 우송대학교 재직 당시 한국의 개발협력(ODA) 사업인 루앙 프라방 국립대학교(수파누봉대학교)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업 수행을 위해 2006년 라오스를 처음 방문하게 되었고, 파견 전문가로 1~2개월간 라오스에 체류하였습니다. 2006년에는 수파누봉대학교 교원들이 우송대학교에서 6개월간 연수과정을 밟았는데, 이 때 서로 친분을 많이 쌓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인 2007년에 우송대학교를 사직하고 수파누봉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라오스 지역 전문가로서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루앙 프라방 수파누봉대학교 교수와 한국-라오스친선협회(KLFA, Korea-Laos Friendship Association)의 소장을 겸직하시며 라오스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도 라오스와 관련하여 하고 계시는 활동이 있으신지요. 있으시다면 그 활동과 활동의 의의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한국에 라오스 전문가가 많이 없다 보니 관련 연구에 대한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라오스가 포함된 메콩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동남아 한인 연구를 하고 있고 외교부의 동남아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조사에 라오스 담당자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라오스 개발협력 사업에 대한 자문도 하고 있으며 아세안문화원을 비롯해 라오스의 사회와 문화를 하는 특강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Q. 교수님의 저서 중에 의 경우, 일반인도 라오스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써 주셨는데요, 논문 외에 이러한 대중적인 저서를 집필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라오스에 체류한 학자로서의 의무감도 있었고, 라오스에 있는 동안 수행했던 다양한 프로젝트를 살펴보니 라오스의 역사·경제·교육·개발협력 등에 대한 자료도 자연스럽게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에 라오스와 관련된 책들은 주로 여행서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일반인들이 라오스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저서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Q. 라오스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저서에서도 라오스의 다양한 지역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라오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라오스는 힐링의 여행지입니다. 어떤 분이 라오스를 ‘시간이 멈추는 곳’이라고 했는데 참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웅장한 자연경관이나 역사유적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마음이 평안해지는 곳입니다. 현대 문명이 발전되지 않아 불편한 것도 있지만 그래서 더 정감 있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라오스 사람들의 미소가 인상적입니다. 어디를 가도 화를 내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항상 여유와 용납이 있는 라오스 사람들의 모습은 경쟁 속에서 각박하게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많은 감명을 줍니다. Q. 라오스를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실만한 콘텐츠나 활동이 있다면 알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라오스를 한국에 알리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콘텐츠는 2014년 TVN에서 방영한 꽃보다 청춘: 라오스 편입니다. 라오스 여행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비엔티안-방비엥-루앙프라방의 매력을 잘 살린 방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2017년 EBS 라오스편, 2019년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 라오스편을 시청하는 것도 라오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줄 것입니다. 또 라오스와 관련된 여행서와 사진책도 꾸준히 출간되고 만큼 이를 참조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Q. 라오스의 문화 중 한국과의 유사한 문화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처럼 권위에 대한 존중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장 상사나 상급자에게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장유유서의 문화가 있어 연세가 높은 분에 대해서는 놉(두손을 모으는 합장) 인사를 통해 존중을 나타내며 앞을 지나갈 때는 허리를 숙여 지나갑니다. 제가 수업을 들어갈 때마다 모든 학생이 동시에 일어나 합장 인사를 하는데, 오히려 한국보다 스승에 대한 존중이 높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Q. 한국과 아세안 교류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과 라오스의 현재 관계는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과 라오스 관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라오스는 한국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가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특히 라오스에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은 태국, 중국에 이어 전체 3위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관련 여행서비스업 종사자의 증대에 따라 라오스 내 한인 교민도 3,000명으로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작년 한국 기업이 참여한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로 위기가 있었지만 2018년 11월 정상회담을 통한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약속으로 양국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수 있었습니다. Q. 한국과 라오스가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또, 라오스 전문가로서 목표와 비전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라오스가 이전보다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다른 아세안 국가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습니다. 저는 한국과 라오스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라오스는 여행지로서의 매력뿐만 아니라 인도차이나 중심에 위치한 국가로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국가입니다. 한국에 라오스가 가진 매력과 잠재력을 알리고 라오스에게도 한국이 진정성 있는 우호 관계의 국가라는 점을 계속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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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아세안 9

[인터뷰] 자카르타의 건축과 도시공간: 인도네시아 건축가 에릭 크리스탄토 인도네시아의 젊은 건축가 에릭 크리스탄토(Erick Kristanto)는 자카르타에 있는 건축사무소 스튜디오 코타(Studio Kota)의 대표입니다. 뉴욕 만화박물관(Museun of Comics and Cartoon Arts, MoCCA), 인도네시아 내려널 갤러리와 같이 세계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아세안문화원 뉴스레터는 에릭 크리스탄토와 함께 건축과 자카르타 도시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스튜디오 코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항상 인도네시아로 돌아와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시장은 매우 크지만 디자인에 대한 안목은 협소한 곳이다 보니 젊은 건축가 입장에선 큰 기회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2015년에 스튜디오 코타를 열기 전에는 홍콩에 있는 건축사무소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에서 프로젝트 리더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동료들이랑 수많은 경쟁에 뛰어들었고, 중독자처럼 빠져들었어요. 그렇게 경력을 쌓고 난 후에 자카르타에서 건축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을 계기로 스튜디오 코타를 열게 되었죠. Q. 함께 일하는 분들은 얼마나 되나요? 각자의 역할도 궁금합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스튜디오입니다. 네 명의 건축가가 있고, 인턴들이 함께 합니다. 우리는 각자 일을 나누어하기 보다는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의견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면서 일을 합니다. 리서치, 디자인 스터디, 설계도 작성에서 프로젝트 관리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서 함께 참여하죠. Q. 구성(composition)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직관적인 형태보다는 프로젝트를 둘러싼 다양한 맥락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건축부지에 대한 지형학일수도 있고, 나무들이라던가, 건축계획 구성, 순환, 구조, 그 밖에 많은 것들이 프로젝트의 맥락을 이룹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건축물 구성을 발전시켜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요. 단순히 미학적인 측면이 아닌 동적인 가치를 부여해줄 수 있는 것들이 좋습니다. Q. 스튜디오 코타의 작업에서 고대나 현대 인도네시아의 유산들과의 접점이 있을까요? 우리는 각 프로젝트의 세부적인 측면들을 고민해요. 각각의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맥락을 갖고 있고,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죠.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에서는 열대환경이나 인도네시아 건축의 지역적인 특성들에서 원칙들을 가져오지만, 시각적이나 브랜드 전략으로 활용하진 않습니다. Q. 자신도 타워(Jasindo Tower), 세람비 아세안(Serambi ASEAN), 그리고 대구에 제안했던 ‘만남의 집(The Meeting House)’ 제안을 위한 디자인 과정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각각의 형태들을 조합해서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보여줬죠. 스튜디오 코타의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는 기하학(Geometries)으로 복잡한 건축 계획(Building Program)을 간결하게 만들어냅니다. 공간을 범주화하고 조직하는 과정에서 활용하는데, 프로젝트를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데 도움을 주죠. 우리는 디자인을 3차원적으로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고, 때로는 우리 스스로 보고 검토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큰 덩어리를 활용해서 공간을 구성하기 시작하면 여러모로 흥미롭습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거든요. 예상치 못한 빈 공간이나 틈새, 이상한 모퉁이, 작업 결과로 틀어지거나 얼빠진 형태가 나올 수도 있고요. 이러한 과정들은 내부 공간의 형태를 이해하고 구성하는데 도움이 되죠. Q. 뉴욕에서 진행한 만화박물관(MoCCA) 건축 프로젝트와 인도네시아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Indonesia) 프로젝트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어요. 만화박물관의 설계는 개별 모듈들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박물관을 만들었어요. 반대로 인도네시아 내셔널 갤러리는 열린 공간이 특징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선보였던 ‘매듭 벤치(Knot Bench)’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면도 있어요. 두 프로젝트 모두 박물관을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두 프로젝트 사이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요? 만화박물관은 10년 전에 했던 작업인데, 좋은 기회였었어요. 그 당시에는 건축의 보다 진지한 측면에 대한 생각을 덜했습니다. 만화의 말풍선을 건축 설계에 응용했었죠. 지적하셨던 것처럼 서로 다른 설계를 한 덩어리처럼 만든 것인데, 모자이크 같은 설계라고 볼 수 있겠네요. 작은 부분들이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는 설계였습니다. 인도네시아 내셔널 갤러리를 위해서는 미술관에 대한 전형적인 유형들을 피하려고 노력했어요. 우리는 통합된 계획을 갖춘 컴팩트한 건물을 제안했습니다. 전체 부지에서 미술관이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공원을 조성했어요. 이 공원은 빗물을 배수하는 기능도 함께 갖고 있는데, 자카르타는 홍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죠. 내셔널 갤러리 건축 구성은 두 개의 큰 덩어리로 나누어졌습니다. 전시가 열리는 공간과 열리지 않는 공간이죠. 우리는 두 공간을 수직으로 배열했어요. 위에서는 전시를 하고 하단에는 전시를 하지 않는데, 두 공간 사이에는 입장을 위한 테라스가 들어갑니다. 새 박물관은 문화유산이 된 기존 박물관 건물의 배경이 되는 동시에, 예술작품을 담는 하나의 선반이 될 거예요. Q. 공원과 학교, 교육시설 설계 중에서는 ‘세콜라 가리스 데판(Sekolah Garis Depan)'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공공시설을 설계하는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빌딩을 설계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공공시설을 설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세콜라 가리스 데판은 인도네시아 동부에 있는 파푸아의 외딴 지역에 만들어졌어요. 식량부족, 삼림파괴, 안전과 교육 같은 문제들이 있었어요. 저희는 사각형 부지에 단층 건물, 그리고 안뜰이 있는 형태의 설계안을 제안했습니다. 학생들이 좀 더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주기 위해서였어요. 한 편으로는 학교를 짓기 위해 사라진 삼림 공간을 일정부분 되돌려주고 싶었습니다. 학교의 한 가운데에서 숲이 다시금 생산적인 경관이 될 수 있도록 했어요. 정원은 학생들에게 음식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안전한 환경에서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건축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 프로젝트였어요. 모든 건축물들은 각자 뜻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건축가와 클라이언트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건축가와 클라이언트의 의도가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건축이 사회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이용자들이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인터페이스를 물리적인 공간에 디자인하는 작업을 수행하죠. 이런 부분들은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영향을 줘요. 물론 사람들이 어떻게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을 결정할 수는 없죠. 저는 공간을 계획하더라도 일정부분 사람들이 스스로 공간을 이용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정도의 자유도를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당신의 작업이나 다른 건축가의 작업에서 이러한 영향이 현실이 된 적이 있나요? 비록 우리가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피스 KL 프로젝트의 일부로 디자인한 작은 야외무대를 직원들이 꾸준히 활용하는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가끔 문화행사를 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 근로자들이 근무가 끝나고 동료들과 어울리는 공간으로 활용했어요. 서로 함께하며 공간의 감각을 느끼는 모습이었습니다. 홍콩 타마르 공원에 설치한 우리의 공공조형물 “인피니티 써클”과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하는 모습 역시 흥미로운 사례였어요. 우리는 사람들이 그 아래서 요가를 하는 모습, 어린이들이 숨바꼭질을 하거나, 조형물 위로 올라가서 셀카를 찍는 모습을 봤어요. 이런 모습들은 프로젝트의 규모와 상관없이 건축이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을 보여줬어요. Q. 건축가로서 자카르타의 도시공간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카르타는 자동차를 위한 도시로 알려져 있죠. 차창 너머로 도시를 내다보는 걸 즐길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보행자를 고려하지 않아서 인도가 매우 협소합니다. 그러다보니 거리에서의 삶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새로운 교통 시스템을 통해 좀 더 걷기 좋은 도시로 변화해나가는 모습을 꿈꾸고 있어요. 다른 한 편으로 자카르타 근교에 더 많은 특징들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자카르타는 다양성을 갖춘 도시지만, 어딜 가든 풍경이 비슷해 보이거든요. 문화적인 존재감이 더해진다면 비즈니스 외의 목적으로 자카르타를 방문할 이유가 더 생길 수 있어요. 쇼핑몰을 제외한 적절한 공공 공간과 시설도 부족한 것이죠. 더 많은 건축가가 디자이너로서 뿐만 아니라 결정권자로서 공공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도시계획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 Q. 자카르타의 문화와 기후, 역사는 어떻게 자카르타의 도시공간을 만들어냈습니까? 다소 복잡한 문제입니다. 각각의 요소는 자카르타의 개발계획과 도시공간에 기여했어요. 제 생각엔 자카르타의 건축은 아직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봐요. 여전히 진화하는 단계에 있고, 열린 해석의 여지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자카르타 또는 인도네시아 건축이 실제로 어떠한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건축가로서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건축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서로 다른 계획과 방식으로 도시에 기여한 건축물들을 좋아해요. 공공영역에서의 건축을 즐기고, 도시 생활에 기여할 수 있을 때 기쁨을 느끼죠. 스튜디오 코타는 스타일에 치중한 접근 방식과 미리 결정된 미학적 기준에서 자유롭고 프로젝트에 맞춘 건축을 발전시켜 나가려고 해요. 건축가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미래를 위한 디자인인 만큼, 문제해결자로 나서기보다 건축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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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아세안 13

[인터뷰] ‘캄보디아 빈티지 뮤직 아카이브’ 디렉터 옴 로타낙 우돔 잊힌 음악들을 되살려 현대사의 아픔을 치유하다 1975년 이전까지 캄보디아는 상당히 발전된 대중문화산업을 갖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프랑스와 미국,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들과 크메르 전통 창법이 결합된 독특한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캄보디아 가요들은 식민지 경험, 급격한 개방과 함께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60~70년대 대중음악과도 비교할 수 있어요. 캄보디아의 음악과 영화가 아세안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시대였기 때문에 캄보디아에서는 이 시대를 두고 캄보디아 문화의 ‘황금기’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크메르루주 집권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캄보디아의 ‘황금기’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죠. ‘캄보디아 빈티지 뮤직 아카이브’는 잊힌 캄보디아 음악을 다시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하는 비영리 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잊힌 옛 음악을 모으면서 현대 캄보디아의 유산을 지키고, 이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크메르 루주 시절에 세상을 떠난 뮤지션들의 유족을 돕고, 저작권을 되 찾아주는 활동도 함께 병행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통해 현대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죠. 아세안문화원 뉴스레터는 ‘캄보디아 빈티지 뮤직 아카이브’의 디렉터 옴 로타낙 우돔과 함께 캄보디아 음악과 그들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Q. ‘캄보디아 빈티지 뮤직 아카이브’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한 워크숍에서 미국에서 온 네이트 훈과 마야 코넬리와 만나서 캄보디아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우리의 경험과 감정을 나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잊힌 옛 음악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옛날 음악의 오리지널 레코딩을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 많은 질문을 했었어요. 우연히 바탐방에 여행을 갔던 네이트가 LP 음반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음반 수집가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음반들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게끔 하고, 음악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의논하기 시작했어요. Q. ‘황금기’ 캄보디아 음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황금기 캄보디아 음악의 강점은 다양성에 있습니다. 논밭에서 숲에 이르기까지, 바다에서 달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형태로 작곡되었습니다. 비슷한 걸 찾기가 어려울 정도에요. 이 시기 음악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가사에 있다고 생각해요. 가사는 캄보디아 음악에서 가장 큰 비중을 갖고 있어요. 때로는 재밌고, 때로는 슬프고, 열정과 증오, 미움과 계몽, 그리고 동정심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많은 노래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노래들입니다. Q. 아카이브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음반과 앨범 커버 같은 다양한 음악자료들을 수집하고, 오래된 음반에서 음원을 추출해서 디지털 음원으로 변환합니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옛 음악들을 캄보디아 사회에, 그리고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해요. 2016년에는 광주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캄보디아 대중음악들을 소개할 수 있었어요. 크메르 루주 집권기에 살해된 음악인들의 유족들을 지원하고 저작권을 되찾아오는 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옛 캄보디아 음악을 통해 오늘날의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잊힌 뮤지션들의 유산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Q. 아카이브는 어떻게 이용할 수 있나요? 디지털 아카이브이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이용할 수 있어요. 저희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cambodianvintagemusic)을 통해서 들을 수 있고, 사운드 클라우드(https://www.soundcloud.com/cvma)나 아이튠즈에서 디지털 음반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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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아세안 120

[인터뷰]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잇는 숲해설가, 널 시암시 무하마드 인도네시아 산림부에서 근무 중인 널 시암시 무하마드 씨는 영남대학교에서 숲해설 과정을 공부하며 한국에서 외국인 최초로 숲해설가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간 그는 산과 나무를 돌보며 자연과 상생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3월호에서는 숲을 통해 많은 사람과 행복을 나누고 싶다는 널 시암시 무하마드 씨와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널 시암시 무하마드 Q. 숲해설가라는 직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영남대 산림자원학과 이주형 교수님 덕분에 한국의 숲해설가 제도를 알게 됐습니다. 저는 한국의 숲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도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점에 놀랐고, 숲해설가 제도가 점점 더 궁금해졌어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제서야 자연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자연을 즐기기 위해 숲을 찾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숲을 사랑하고요. 숲에 있으면 스트레스가 날아가지 않나요? 다양한 이유로 저는 자연스럽게 숲해설가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Q. 숲해설가가 되기 위해 30시간의 실습뿐만 아니라 170시간의 교육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외국인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연하셨는데,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다문화가족이 한국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숲속을 걸으며 숲의 소리와 향기를 느끼고, 숲에서 다양한 종류의 잎을 찾는 놀이를 했어요. 이외에도 한국 전통놀이인 투호를 즐기며 한국의 문화를 배우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Q. 인도네시아에도 숲해설가가 있는지, 앞으로 어떤 부분을 발전시키고자 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아는 한 인도네시아에는 지금까지 숲해설가가 없었습니다. 관광청에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숲을 위한 시스템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저는 한국에서 얻은 산림 지식을 활용하여 현지에서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입니다. 한국인도네시아산림센터(Korea Indonesia Forest Center)와 논의해 인도네시아에 유사한 프로그램을 구축할 수 있을지 검토해볼 생각입니다. 무하마드가 외국인 최초로 숲해설가가 되도록 도움을 준 이주형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Q. 앞으로의 꿈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제가 아는 한 인도네시아에는 지금까지 숲해설가가 없었습니다. 관광청에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숲을 위한 시스템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저는 한국에서 얻은 산림 지식을 활용하여 현지에서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입니다. 한국인도네시아산림센터(Korea Indonesia Forest Center)와 논의해 인도네시아에 유사한 프로그램을 구축할 수 있을지 검토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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