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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알리는 한국 문화 대사가 되었어요

내 인생에서 2007년은 정말로 흥미진진한 한 해였다. 처음으로 1년을 통째로 한국에서 보내며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연구를 위해 현지 조사를 했다. 연구 주제는 무속(한국의 샤머니즘)의 물질주의 문화다. 한 해 동안 나는 많은 무당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행하는 굿에도 참여했으며, 굿에 사용되는 도구들을 어떻게 준비하고 간수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웠다. 또 무당이 사용하는 아름다운 옷과 종이 꽃, 부적, 제단 등을 만들고 파는 무속 예술가와 거래상들과도 긴밀하게 만나며 직접 작업을 해보기도 했다. 매우 고맙게도 한국국제교류재단은 1년간 나의 체한 연구를 지원해주었다. 나는 재단 소유의 서울 시내 숙소에서 1년을 보냈다. 숙소의 위치는 너무나 훌륭했다 . 나는 국립민속박물관 양종승 학예연구관을 방문할 수 있었는데, 그는 나의 개인적인 지도교수가 되어주었다. 숙소에서 오르막길로 40분간 걸어가면 인왕산에 국사당이라고 하는 유명한 무속 신당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산과 물 그리고 별들의 신에게 개인적으로 축원을 올리는 순례자들을 여러 차례 보았다. 인왕산은 정식 소개 없이도 무당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또한 서울에 있는 궁궐과 매주 문화행사와 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도 숙소에서 아주 가까웠다.
종교 미술과 물품을 다루는 상점들이 많이 자리한 종로도 내가 일상적으로 다니는 길에 있었다. 너무나 괜찮은 영어 책방인 서울셀렉션(Seoul Selection)으로 걸어가서 내게 필요한 한국 문화에 관한 많은 책들을 볼 수도 있었다. 마치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나의 연구 관심 분야에 완벽하게 맞춰서 숙소를 정해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숭배의 물건: 한국 무속 의식생산의 물질문화(Objects of Worship: Material Culture in the Production of Shamanic Rituals in South Korea)’를 주제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고, 인디애나대학 민속학과의 동료들과 함께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미국 중부 지역 인류학회(Central States Anthropological Society) 회의에서 물질문화에 관한 패널 발표를했다. 2008년에 나는 고국인 이스라엘로 돌아왔고, 현재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 문화가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스라엘 매체와 학계에 좀 더 잘 알려진 동아시아 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문화다.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은 텔아비브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진들이었다. 교수진들은 이 학과의 세미나 모임에 나를 초대했으며, 내게 일본과 한국의 전자매체 전통에 관한 강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내가 가르친 이스라엘 학생들은 새로운 한국 문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들의 흥분과 참여는 한국의 텔레비전 시리즈와 영화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을 낳았다. 한국의 많은 문화 상품을 온라인으로 구할 수 있다는 점은 학생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었고, 강좌에 필요한 사항을 넘어 한국 문화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또한 이스라엘 바르-일란대학에서 개최한 ‘ 아시아의 일신교 : 종교 간 경향 (Monotheism in Asia: Inter-Religious Trends)’ 회의에서 한국의 종교적 상호 작용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어느 한편으로 나는 한국이 수세기에 걸쳐 만들어낸, 풍부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문화를 알리는 문화 대사 같은 느낌이 든다. 서구와 이스라엘에서 그런 주제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며, 이곳에서 이 놀라운 문화를 잘 알리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에서 현지 조사 작업을 하는 내내 한국국제교류재단은 가장 친절하고 가장 큰 도움을 준 후원자였으며,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족과 같은 따뜻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전문적인 한국 문화 탐구와 관련해서, 나는 인터넷 자료와 기타 다른 디지털 매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곧 다시 방한하여 한국에 대해 관찰하고 한국 문화 전문가들을 인터뷰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흥미로운 수많은 자료,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관대함과 훌륭한 연구 환경, 그리고 한국의 보통사람들로부터 받았던 환대는 우리가 한국에서 건강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다시 방한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