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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세계문화유산 ‘후에 기념물 복합지구’

베트남의 전통문화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다양한 외래문명과의 접촉과 영향 및 수용을 통해 형성되어 왔다. 오랫동안 힌두문명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중국의 영향이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지대하여 10세기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역대 왕조들과 지식층을 중심으로 중국문화를 수용하였다. 14세기 이후에는 후에와 인접한 호이안이나 다낭을 통해 아라비아, 인도, 유럽 상인과 교역이 활성화되었다. 17세기 이후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문명이 베트남에 전해졌는데, 19세기 이후 응우옌 왕조 시기에는 프랑스 문명의 영향이 절정을 이루었다. 이처럼 베트남은 전통문화의 기반 위에 다양한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독특한 문화를 이루어내었으며, 후에 시에는 베트남 전통문화의 이러한 중층적 구조가 집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후에는 흐엉 강(香江, Song Huong)과 응우 빈(Ngu Binh) 산을 비롯한 자연 조건을 중시하여 설계된 도시이다. 특히 흐엉 강은 수도 ‘낑타인(Kinh Thanh)’, 제국의 도시 ‘호앙타인(Hoang Thanh)’, ‘자금성(紫禁城, Tu Cam Thanh)’과 구도심지 ‘다이노이(Dai Noi)’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면서 시가지 전체에 독특한 자연미를 만들어주고 있다. 후에 황성은 둘레에는 오각형의 포대를 설치한 프랑스식 성벽을 두르고, 내부는 고대 중국의 도성제도를 도입하여 격자형 도시로 구획하였다. 또한, 고대 중국의 궁궐제도를 따라 궁궐을 짓고 전각의 명칭을 제정하였다. 이밖에도 흐엉 강에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살려 강물을 끌어들여 성벽 둘레에 해자를 파고, 성 내부로도 운하(御河)를 건설하여 방어와 운송체계를 구축하였으며, 도성 주위에 중국의 풍수이론에 따라 수호신을 설정함으로써 이상적인 도성의 요건을 갖추었다. 후에 도성은 고유한 문화적인 토대 위에 외래문화를 수용하여 이룩한 베트남 전통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도성 이외에 흐엉 강 물길을 따라 분포한 황제의 무덤, 사묘와 제단, 사원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후에의 유적들은 프랑스 침략과 식민지배,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개방정책이 시행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 역사적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복구되기 시작하였다. 도시 내 세계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후에 시는 현재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보존과 개발을 통한 도시 성장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 최호림 교수(부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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