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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SUMMER

대를 이어온 고소함

한국인의 밥상에서 참기름은 빠지는 법이 없다. 나물을 무치거나 고기에 양념할 때도, 볶음밥부터 비빔밥까지 안 쓰이는 곳 없이 요리의 풍미를 완성한다. 38년째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이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는 참기름을 짜고 고춧가루를 빻는 대우고추참기름은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대우고추참기름 대표인 유문석(兪文錫) 씨는 그의 어머니를 이어 이 자리에서 38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 한국의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참기름, 고춧가루와 함께 마늘, 잡곡, 액젓 등과 같은 식재료도 판매한다.

토요일 오전, 암사 지하철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자 눈 부신 햇살과 갖가지 냄새가 한 번에 들이닥친다. 휴일을 맞은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과 발걸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와 와르르 터지는 웃음소리가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는 암사종합시장(岩寺綜合市場)으로 이어진다.

백여 개가 넘는 가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이곳은 1978년도에 개점한 전통시장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역주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긴 했지만, 본격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던 팬데믹 기간이었다. 시장을 드나들며 식재료를 구입하던 단골들이 온라인 주문을 요구했고, 시장 측에서 그 요구를 받아들여 전국 최초로 ‘우리시장 빠른배송’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 덕에, 이제는 전국 어디에서나 암사종합시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를 이어온 가게

참기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수확한 참깨를 깨끗이 씻어 건조해야 한다. 이것을 골고루 볶은 다음 충분히 식힌 후 유압기에 넣어 기름을 짜낸다. 참깨 한 말(약 6kg)을 짜내면 350mm들이 병 6~7개를 채울 수 있다.



시장 안으로 한 발짝을 딛자 벌써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풍겨온다. 이 자리에서만 38년째, 대를 이어서 가게를 지켜오고 있는 대우고추참기름에서 일 년 내내 흘러나오는 냄새다.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은 아버지, 어머니, 아들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다. 아들 유서백(兪抒伯) 씨는 아버지에게 일을 배우며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회사에 다니다가 2년 전쯤 가게 일을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결정한 건 아니고 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도 연세가 있으시니 슬슬 물려받을 준비를 해야겠다고요. 그러다가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우리도 온라인 판매를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매일 아침 일곱 시 반에 문을 열고 저녁 여덟 시 반까지 장사한다. 쉬는 날은 없다.

“깨소금 볶고 고춧가루 빻고 참기름, 들기름 짜고 선식도 만듭니다. 선식에는 겉보리, 현미찹쌀, 찰보리, 현미, 서리태, 백태, 검정찹쌀, 옥수수, 참깨, 흑임자, 땅콩, 호두, 호박씨, 해바라기씨, 아몬드, 바나나, 찰수수, 열일곱 가지 재료가 들어가요. 미숫가루처럼 물이나 우유에 타 먹을 수도 있어요. 이렇게 하루 열세 시간 일을 합니다. 저는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부모님은 하루도 쉬지 않으세요.”

곁을 지키고 서 있던 아버지 유문석(兪文錫) 씨가 왠지 쑥스러워하며 변명하듯 설명을 덧붙인다.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이 동네 살다 이사 가신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여기까지 찾아오시는데 문이 닫혀 있으면 죄송하잖습니까. 그래서 문을 닫기가 어려워요.”

 

어깨너머로 배운 일

유문석 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제대 이후부터였다.

“1970년대 후반 즈음 제가 군대를 다녀왔을 때 어머니께서 고추 장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마른 고추를 빻아주는 고추방앗간이었죠. 여기 말고 다른 시장이었는데, 그 시장이 헐리면서 이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어머니를 도와드리다가 일을 함께하게 되었어요.지금은 시장이 현대화되어 괜찮지만, 예전에는 지붕이 없으니 바람 불면 날아가고 비 오면 천막 쳐야 하고…. 그때는 정말 힘들었죠.”

집마다 김치를 담그고 밥을 해 먹던 시절이었고 어느 집에나 고춧가루가 필요했다. 김장철은 특히 분주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고춧가루를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다.

“당시 우리 가게 바로 옆집이 참기름 짜는 가게였어요. 자주 왕래하다 보니 작업하는 걸 자주 봤고, 저도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1985년부터 유문석 씨는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함께 팔기 시작했다.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인지라 처음에는 실수도 잦았지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차차 제대로 된 참기름을 짤 수 있게 되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에 기록된 수천 가지 약재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이 참깨이다. 참깨는 ‘효마자(孝麻子)’라 불리기도 하는데, 아들보다 효도를 잘한다는 의미이다. 중풍과 심근경색을 예방하고, 흰머리를 검게 해주고, 근심을 덜어주는 것이 참깨의 세 가지 덕목으로 꼽힌다. 참깨의 45~55%는 기름이고 36%는 단백질이다. 그런데 참깨는 불용성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소화가 잘 안되는 음식이기도 하다. 참깨의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도록 가공한 것이 참기름이다. 참깨 한 말 즉 6kg으로 350ml들이 병 6~7개를 채울 수 있다. 흔히 색깔과 향이 진하면 좋은 참기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참깨를 오래 볶으면 색과 향이 진해지는 대신 영양가가 손실된다. 색과 향이 연한 것을 선호하는 손님도 있기 때문에 먼저 취향을 물어보고 거기에 맞추어 상품을 준비한다. 참깨는 국산과 수입산 두 종류를 사용하는데, 국산 참깨로 짠 참기름이 수입 참깨로 찬 것보다 세 배 정도 비싸다.

 

가업을 잇는 아들

밀키트나 배달 음식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전보다 참기름이나 고춧가루를 찾는 이들은 줄었지만, 가족은 일 년 내내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한다. 최근엔 멀리서도 대우고추참기름의 제품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유문석 씨는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들이 늘 마음에 걸린다.

“거기는 기름집이 없습니까, 왜 여기까지 오십니까? 하고 물어요. 다른 데보다 싸게 드리지도 못하고 그저 정성껏 짜드리는 것뿐인데 매번 찾아주시니까.”

그래서 그런 손님들이 집에서 편하게 물건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판매 쪽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직은 판매량이 많진 않아요. 그런데 앞으로 점점 온라인으로 가야죠.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잘 되겠죠.”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회사를 그만둔 것은 혹시 아버지의 뜻이었을까?

“강요는 안 했어요. 부모가 하라고 한다 해서 자식이 무조건 따라 하지는 않잖아요. 자기가 해야 하니까 한다고 했겠죠.”

식사 준비를 위해 주방을 지키던 그의 아내 신예서(申叡抒) 씨가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다가온다. 그녀는 스물네 살에 유문석 씨를 만나 결혼했다. 당시 시어머니가 고추방앗간을 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신 씨도 합류하게 되었다.

“저는 처음에는 반대했어요. 자영업이라는 게 육체적 노동과 정식적 스트레스가 많잖아요.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남이 볼 때는 앉아서 팔기만 하면 돈이 들어오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거든요. 장사가 잘되면 주위에 비슷한 가게가 들어서기도 하고, 손님들도 다 똑같진 않으니까 그분들 성향도 맞춰야 해요. ‘너는 직장생활 해라, 우리 수순 밟지 말고 편하게 살아라,’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같이 일을 하게 되니 부모로서 안타까운 부분들이 있어요. 우리도 힘들었는데 아들도 힘들게 살겠구나.”

부부 사이에는 두 아들이 있다. 큰아들이 장사를 같이하고 있고 작은아들은 회사원이다.

“작은애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인플레이션이 엄청나니까 갈수록 힘들어진대요. 자영업도 힘들지만, 경제적인 부분은 월등히 나아요. 반대하지 못한 이유에 그런 것도 있어요. 또 회사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그만둬야 하잖아요. 아이 아버지 동년배들은 이미 다 은퇴했어요. 이 일은 정년도 없고 나만 건강해서 움직이면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으니 마음은 편하죠.”

신 씨는 일을 함께하게 된 아들이 걱정스럽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오간다. 어찌 되었든 이왕 하기로 한 거 잘 되길 바랄 뿐이다. 아버지의 일을 배우랴 온라인 판로를 개척하랴 정신없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예나 지금이나 손님을 상대하는 것은 주로 신 씨의 몫이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분들한테 제가 가진 노하우를 알려드리기도 하고, 그분들에게 배우기도 해요. 참기름은 상온에, 들기름은 냉장고에 보관하라거나, 제철 나물을 무칠 때는 파와 마늘을 넣지 말고 소금, 참기름, 깨만 넣으면 풍미가 훨씬 좋다거나.”

갓 짠 참기름 냄새를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길, 시장 가방을 든 젊은 부부가 들뜬 발걸음으로 들어선다.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져 나갈 것이다.

 

황경신(Hwang Kyung-shin 黃景信) 작가
한정현(Han Jung-hyun 韓鼎鉉) 사진 작가(Photogra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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