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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 산책] 이호정 과장이 추천하는 만화 거짓의 안락함, <SPY×FAMILY>


[KF 산책]
이호정 과장이 추천하는 만화
거짓의 안락함, <SPY×FAMILY>

 

<SPY×FAMILY>는 최근 정말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화다. 만화 원작 자체가 굉장한 호평을 받고 있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며 넷플릭스를 타고 구미권까지 매우 폭넓은 그리고 광적인 팬들을 양산하며 나날이 판매고를 갱신하고 있다. 올 4분기 애니메이션 2쿨이 시작되면서 팬들은 다시 열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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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의외로 어이없는 ‘설정 과다’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 뻔뻔하네” 하고 피식 웃으면서 그냥 보다가, 이 과한 설정이 만들어놓은 상황을 즐기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코미디’, 혹은 ‘일상물’ 정도로 분류하고 있다. 심지어 ‘육아물’이라고도 한다. 일단 그 과잉된 설정은 이렇다.

남자 주인공 ‘황혼(黄昏)’은 코드네임으로, 아직도 실명(實名)이 나오지 않았다. 이 남자의 진짜 직업은 웨스탈리스(Westalis, 서국)에서 오스타니아(Ostania, 동국)에 파견된 웨스탈리스 최고의 스파이다. 동국 국가통일당 총재 도노반 데스몬드에게 접근해 그의 계획을 알아내라는 올빼미 작전(Operation ‘Strix’)을 맡아, 데스몬드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이든 칼리지에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 거짓 가족을 구성한다. 겉으로는 정신과 의사가 직업인 ‘로이드 포저’로 활동하고 있다.

황혼이 이든 칼리지에 입학시키기 위해 고아원에서 찾아 데려온 아이 아냐는 남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에스퍼)다. 이미 여러 번 파양된 경험이 있다. 가짜 아빠 로이드 포저의 딸 ‘아냐 포저’로 이든 칼리지에 합격해 다니고 있다.

여자 주인공 요르 브라이어의 진짜 직업은 ‘정원(Garden)’이라는 조직에 속한 청부살인자다. 어린 시절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과 생활하기 위해 시작한 일을 20대 후반인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나라가 동서국으로 나뉘어 상호 견제를 지속하는 상황 속에서 ‘혼기가 찬 미혼녀’가 스파이로 오해를 사는 일을 피하기 위해 가짜 가족을 구성한다. 겉으로는 베를린트 시청에서 일하는 사무직원으로, 로이드 포저와 결혼해 ‘요르 포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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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주요 인물들이 모두 극단적인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전면에 내세운 채로 가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진짜 ‘현실’은 대체 무엇인가. 로이드, 요르, 아냐 세 명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만든 가짜 가족은 현실이 아닌가.

이들의 ‘진짜’는 너무나 어둡고 힘들고 외롭다. 그런데 ‘가짜’는 너무나 포근하고 즐겁고 따뜻하다. 왜 이들은 거짓 속에서만 행복할 수 있는가. 거짓보다는 진실을 추구하고 결국은 진실 속에서 길을 찾는 일반론과 달리,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것은 아마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거짓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제 생각에는요. 세상의 많은 가정에서도 모두들 ‘연기하면서’ 생활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내는 이래야 한다’든지 ‘부모니까’라든지. 물론 이상을 추구해 노력하는 건 훌륭한 거죠. 하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이면 자기를 잃어버려서 잘 될 것도 안 되곤 해요. 제가 일하는 병원에도 그래서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이 오고 있어요. 연기만 해서는 지쳐버리기도 하니까요. 당당하면 주변에는 의외로 들키지 않고요.”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좌절한 요르에게 정신과 의사인 로이드가 하는 조언이다. 인생이 거짓으로 점철된 당당한 거짓말쟁이 황혼의 생존 비결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작가가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들이 거짓 위에 쌓아올리고 있는 행복을 보는 상당수의 독자는 아마 포저 일가가 앞으로도 이렇게 즐겁기를 바라겠지만, 이 작품은 곧 위기, 절정, 결말로 달려갈 것으로 보인다. 황혼은 웨스탈리스 최고의 스파이고, 요르는 오스타니아 쪽의 극렬 애국자다. 두 사람이 서로의 실체에 닿았을 때 이들은 절대 서로를 바로 용인할 수 없는 관계다. 나라를 위해 개인적인 인생의 비극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두 사람의 가짜 인생이 행복해질수록,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신념과 희생은 그들을 강하게 괴롭힐 것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 날개를 편다. 아마도 올빼미 작전을 통해 접근하게 되는 데스몬드가(家)는 이들의 삶에 진실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지금까지 굳게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깊은 밤 날개를 펴게 될 황혼과 포저 일가가 어떤 지혜로운 활약을 하게 될지, 후반부가 더욱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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