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다양한 축제로 꽃피운 필리핀 문화의 다양성

인터뷰
다양한 축제로 꽃피운 필리핀 문화의 다양성 
김정환 건국대학교 초빙교수
 
이번 호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필리핀의 축제를 지켜봐 온 김정환 건국대학교 초빙교수를 만나보았습니다. 그는 필리핀의 축제 200여 개를 현장 조사하였으며, 일곱 개의 필리핀 축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축제를 통해 필리핀의 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정환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섬의 개수만큼 다양한 문화와 축제의 나라, 필리핀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필리핀은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입니다. 섬의 개수가 많은 만큼 문화가 다양하고 복합적일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필리핀은 말레이계, 중국계 화교, 메스티소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다인종 국가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은 마닐라가 있는 가장 위쪽 지역인 루손(Luzon), 중간에 위치한 지역인 비자야(Visayas), 가장 남쪽 지역인 민다나오(Mindanao) 등 세 개의 지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중국계 화교는 루손 지역에 특히 많이 모여 있으며,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 올라온 원주민들은 민다나오 지역에 많이 모여 있습니다. 공식 언어는 필리핀어와 영어지만, 각 지방에서는 70개 이상의 지방 토착 언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필리핀은 인종과 언어, 종교 등 각기 다른 문화가 혼재되어 있으나, 다른 문화를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문화의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어우러지는 특징을 보입니다.
 
필리핀은 ‘축제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일 년 내내 축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다양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축제는 무엇일까요.
필리핀에서 열리는 축제는 2만여 개에 달할 정도로 많고 매우 다양합니다. 필리핀의 축제는 지역의 전통문화, 특산물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축제는 목적만 다를 뿐, 각 지역의 문화가 잘 녹아있습니다.
필리핀 소수민족의 문화가 반영된 축제로는, 칼리보(Kalibo) 지역에서 열리는 ‘아띠아띠한 축제(Ati-Atihan Festival)’가 있습니다. ‘아띠아띠한’의 아띠는 칼리보 지역의 원주민인 아띠족을 의미하며, 이 축제는 아띠족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축제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띠족처럼 보이기 위해 새카맣게 분장을 한 후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춥니다.
바기오 파낭뱅아 축제

산 카를로스 핀타플로레스 축제
바기오(Baguio) 지역에서는 꽃 축제인 ‘파낭뱅아 축제(Panagbenga Festival)’가 개최되는데, 지역 원주민인 이푸가오족의 전통문화와 무용, 음악을 선보입니다. 또 산 카를로스(San Carlos) 지역에서는 ‘핀타플로레스 축제(Pintaflores Festival)’가 열립니다. 이 축제는 화려한 문신으로 몸을 치장한 고대 전사 ‘핀타도스(Pintados)’를 테마로 한 ‘나빙카란 타투 축제’와 ‘댄스 오브 플라워’ 행사가 합쳐진 축제입니다.
[좌] 바콜로드 마스카라 축제  [우] 알레그리아 카와얀 축제
10월에는 바콜로드(Bacolod) 지역에서 가면을 쓰고 즐기는 ‘마스카라 축제(MassKara Festival)’가 열리며, 11월 세부(Cebu) 지역 알레그리아(Alegria)에서는 대나무 악기 연주와 대나무 춤 등이 어우러지는 필리핀 지역 전통 문화예술축제인 ‘카와얀 축제(Kawayan Festival)’가 열립니다.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겪은 나라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특성과 관련한 축제도 있을 것 같은데요. 스페인의 종교나 문화에서 비롯된 축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상] 세부 시눌룩 축제  [하] 일로일로 디낙양축제
오랜 기간 필리핀을 지배한 스페인의 영향으로 인하여, 필리핀은 가톨릭교 신자가 전 국민의 83%에 달합니다. 그렇다 보니 1월과 2월 사이에는 가톨릭교와 관련된 축제가 많이 열립니다. 바로 ‘산토 니뇨(Santo Nino)’라고 하는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산토 니뇨를 기념하는 축제 중 가장 대표적인 축제는 세부(Cebu) 지역에서 열리는 ‘시눌룩 축제(Sinulog Festival)’입니다. 또 일로일로(Iloilo) 지역에서도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디낙양 축제(Dinagyang Festival)’가 열립니다.
산 페르난도 자이언트 랜턴 축제
매년 12월, 팜팡가(Pampanga) 지역에 위치한 산 페르난도(San Fernando)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자이언트 랜턴 축제(Giant Lantern Festival)’가 열립니다. 이 축제를 장식하는 랜턴들은 팜팡가 지역 내 마을들에서 손수 만들며, 가장 아름다운 랜턴을 두고 경합을 벌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식 음식과 관련한 축제도 있습니다. 비간(Vigan) 지역에는 특산물인 마늘을 이용해 스페인식으로 만든 롱가니사(Longganisa)라고 하는 소시지가 있는데, 필리핀을 대표하는 소시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필리핀의 문화 중 계속해서 지켜나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을까요. 그 문화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민다나오 지역의 다바오(Davao)라는 도시에서 열린 ‘카다야완 축제(Kadayawan Festival)’에 가서 현장 조사를 하고 왔습니다. 이 축제에는 ‘듀라 카다야완(Dula Kadayawan)’이라는 전통부족 게임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듀라(dula)’는 게임을 뜻하는 말로, 우리말로 표현하면 민속놀이입니다. 각 마을의 대표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우리나라의 민속놀이인 공기놀이, 제기차기와 유사한 형태의 놀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바오 카다야완 축제
듀라를 시작하기 전에는 ‘마녹(Manok)’이라고 하는 제의식을 치릅니다. 원래 마녹은 ’닭‘을 의미하는데, 제사장이 거행하는 의례에 마녹의 배를 갈라 번제를 올리기 때문입니다. 듀라와 마녹은 지금까지도 전승되고 있는 필리핀의 전통문화라는 점에서, 계속 지켜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9년, 한국과 필리핀은 수교 70주년을 맞아 올해를 ‘한국-필리핀 상호교류의 해’로 지정했는데요. 두 나라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우선, 문화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또 각국의 문화를 서로 인정하고 수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체면을 뜻하는 히야(Hiya)를 중시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더 신경을 쓰는 편이며, 싫어도 웃으며 ‘Yes’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가끔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곤 합니다. 반면에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차이는 서로의 문화가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차이이므로, 상대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필리핀 관련한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많이 갑니다. 하지만 저는 필리핀 현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필리핀의 한 대학에 한국어과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해당 대학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셔서, 2년 후에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필리핀의 전통문화, 축제와 관련한 현장 연구는 계속해서 해나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ACH 뉴스레터를 통하여 필리핀에 대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서 필리핀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바꾸었으면 합니다. 필리핀은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이 풍부하여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과거 6·25 전쟁 참전국가 중 세 번째로 많은 군사를 보내준 나라이기도 합니다. 또 필리핀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우리나라에 쌀을 원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두가 잊고 지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필리핀을 우리나라와 동등한 나라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화와 생활습관, 민족성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양국 간 우호적인 관계가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