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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중생 속으로, 수코타이 시대의 부처유행상

아세안 문화유산
걸어서 중생 속으로, 수코타이 시대의 부처유행상
 
김미소(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행복의 여명’이라는 의미의 수코타이(Sukhothai)는 동남아시아 역사에서 타이족들이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13세기경 태국 중북부 일대를 중심으로 성립된 왕조입니다. 스리랑카와 이웃 왕조인 미얀마에서 전해진 상좌부불교(Theravada Buddhism)를 기초로 정치적 안정을 마련한 수코타이 왕실은 공덕을 쌓기 위해 대규모 사원을 건설하고, 다량의 불상을 조성하였습니다.
수코타이 시대는 대륙부 동남아시아에 있어 타이족의 문화적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태국어의 모체가 되는 타이어와 타이 문학, 타이 도자기가 이 시기에 발전하였고, 타이족 특유의 미적 감각이 반영된 불상들도 조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걷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듯한 불상인 부처유행상(佛陀遊行像, Walking Buddha Statue)도 바로 수코타이 시대 타이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이후 상좌부불교의 중요한 종교적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태국 수코타이의 사완카 워라나욕 국립 박물관(Sawankha woranayok National Museum)에 소장된 높이 1.54m의 청동불상은 수코타이 시대를 대표하는 부처유행상입니다(그림 1). 전면에서 보면 이 불상의 허벅지까지는 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무릎 아래에서 두 다리를 교차하여 표현한 모습이 마치 걷고 있는 모습을 포착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림 1> 부처유행상, 14세기, 수코타이 시대, 태국 사완카 워라나욕 박물관
불상의 동적인 모습은 측면에서 더욱 잘 드러납니다. 부처님의 얼굴은 뒤로 빠져 있는 어깨와 대비되어 마치 앞으로 향하고 있는 듯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또한 오른쪽 발꿈치를 살짝 들고, 몸의 무게 중심을 왼쪽 다리에 실으면서 걷고 있는 듯한 자세를 표현해냈습니다. 부처님의 오른쪽 어깨에서 살짝 들고 있는 발꿈치까지 둥근 활모양을 그리며 신체의 곡선감과 유연성을 강조한 점도 태국 불상에서 보이는 독특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외에도 수코타이 시대의 부처유행상에서는 타이족이 선호한 부처님의 미적인 측면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그림 2). 이는 긴 계란형의 얼굴, 부처님의 정수리 위에 혹처럼 솟아 있는 육계(usnisha) 위로 부처님의 지혜와 에너지를 상징하는 불꽃이 표현된 점, 얇고 기다란 귀, 연꽃봉오리를 연상시키는 길고 유려한 손은 수코타이 왕조때부터 타이인들의 선호로 인해 불상의 중요한 특징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림 2> 14~15세기, 수코타이 시대, 태국 람캄행 국립 박물관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불교 미술을 연구한 저명한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은 수코타이 시대 불상의 다리에서 보이는 고유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첫째, 영양(Gazel)과 같은 종아리, 둘째, 바나나 나무처럼 두꺼운 허벅지, 마지막으로 안으로 무릎이 굽은 소위 안짱다리(knock-kneed)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그렇다면 14세기 수코타이 시대에 ‘걷고 있는 모습’의 불상은 왜 조성되었을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석가모니의 생애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전의 내용을 기초로 다양한 해석들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견해는 큰 틀에서 ‘걷는 행위’가 가지는 불교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특히 태국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발자국(footprint)은 오늘날까지 그 자체로 숭배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진귀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지상 위에 한 발 한 발 걷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3차원의 조각으로 표현한 것은 불법의 전파를 의미할 수도 있고, 중생을 위해 천계로부터 강림하신 부처님의 자비심에 대한 강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역사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부처유행상의 등장과 관련한 이유에 대해 합리적 추론을 해볼 수 있습니다.
13세기의 대륙부 동남아시아는 영토 확장을 위한 끊임없는 내전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수코타이의 세 번째 왕이었던 람캄행(Ram Khamhaeng, r. 1279?~1298)은 현재 태국의 영토와 유사한 규모의 영토를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차례의 전쟁 속에서도 람캄행은 불교에 대한 신앙으로 스리랑카의 승려들을 왕실에 초청하여 불법의 전파를 꾀했습니다.
지속된 내전 속에서 불교는 타이인들의 신앙적 의지처가 되었고, 불법의 확산 또한 대규모 영토를 다스릴 수 있는 왕실의 중요한 정책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부처유행상은 타이인들의 세계에 강림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존재를 미술로 표현하고, 불법의 전파가 가지는 추상적인 의미를 더욱 효과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수코타이 시대의 타이인들은 부처유행상을 보며 심리적인 위안을 얻고, 석가모니의 모습처럼 불법을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