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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공양구, 삼보에 대한 공경을 담다

아세안 문화유산
동남아시아의 공양구, 삼보에 대한 공경을 담다
 
김미소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동이 트기 전 이른 아침, 주황색의 가사를 갖춰 입고 한쪽 어깨에 발우를 멘 승려들이 경전을 외며 맨발로 천천히 걸으면, 길을 따라 늘어선 신도들이 각기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공양물을 승려의 발우 안에 넣는 광경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는 국민의 대다수가 상좌부 불교신자인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와 같은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일부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탁발’ 수행입니다. 탁발(托鉢, Tak bat)이란 ‘발우를 받쳐 든다’는 의미로, 승려들이 의식(衣食)을 해결하기 위해 발우를 들고 집집마다 동냥을 구하며 수행하던 오랜 불교 전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탁발은 승려의 개별적인 수행의 의미를 넘어서, 상좌부 불교 신자가 일상에서 공덕(Merit)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즉, 상좌부 불교도들은 승려에게 옷가지와 음식 등을 보시함으로써 자신의 공덕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상좌부 불교에서 공덕을 쌓는(Merit-making)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는 개별적인 수행을 통한 해탈을 강조하는 상좌부 불교의 종교적 맥락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현재의 삶이 과거의 업에 의한 결과이며, 현세에서 축적한 공덕의 정도가 미래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미래는 이와 같이 업에 의해 윤회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해탈(Nirvana)에 이르는 것이었지요. 공덕을 쌓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동은 불교의 세 가지 보물(三寶, Triple gems)인 불법승(부처, 교법, 승려)에 대한 공경과 이에 대한 보시를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신도들은 탁발에 참여하는 것 외에도, 승려들이 거처하는 승원이나 불상을 모신 사원에 필요한 각종 물품과 음식을 보시함으로써 자신의 공덕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한편 동남아시아 전통 왕조 시대에 ‘보시’는 종교적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유력자의 위세를 드러내는 척도로 기능했습니다. 예를 들어, 왕이나 귀족들은 정기적으로 사원과 승원에 대규모의 공양품(offering)을 보시하여 간접적으로 자신의 위세를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그림 1). 즉, 공양품의 종류와 양이 많을수록 이를 보시한 자의 권세 정도를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림 1> 미얀마 꼰바웅 왕조 대 민돈(Mindon) 왕의 보시, 19세기 말 ⓒ영국 도서관
이 과정에서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를 수용한 왕조를 중심으로 공양품을 담는 공양구 제작이 자연스럽게 발전하였습니다. 공양구는 공양품을 담는 그릇으로의 본연의 기능을 넘어, 불법승에 대한 공경과 지극한 불심에 대한 시각적 발현으로 여겨졌습니다. 공양구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모두 발견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각 국가별로 선호했던 미감에 따라 공양구의 형태와 특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림 2> 미얀마 공양구, 19세기, Sylvia Faraser Lu, 2000, Vision from the Golden Land. (Illinoi: Art media Resources, Ltd.) p. 201. Figure. 156.
<그림 3> 태국 공양구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
 
미얀마에서는 공양구를 숭옥(Hsun ok)이라는 명칭으로 불렀습니다. 숭옥은 대나무 껍질로 만든 뼈대에 칠과 장식을 더해 완성했습니다. 미얀마의 최후 왕조인 꼰바웅 왕조(Konbaung dynasty)대에 대에 제작된 숭옥은 미얀마만의 특징이 가장 잘 반영된 공양구로 평가받습니다(그림 2). 미얀마 숭옥만의 독특한 특징은 마치 불탑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뚜껑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공양구는 칠 위에 금박을 붙이고, 그 위에 색유리와 대나무 줄기 등으로 화려한 장식을 첨가했다는 점에서 왕실 주문에 의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태국의 공양구는 형태와 재료 면에서 매우 다양한 특징을 보입니다. 19세기에 제작된 한 공양구는 금 위에 연꽃 문양을 양각한 접시가 스탠드 위에 올려진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그림 3). 강렬한 주홍색상과 표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문양, 금박을 통해 이 공양구 하나를 제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갔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림 4> 라오스 공양구
<그림 5> 캄보디아 공양구 ⓒ캄보디아 국립 박물관
 
라오스의 전통적인 공양구는 20세기 중엽 라오스 왕국의 왕이었던 시사방 봉(Sisavang Vong, r. 1946-1959) 재위시기에 발행된 지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그림 4). 이 공양구는 현존하지 않아 제작에 어떤 재료가 사용되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형태면에서는 태국의 공양구와 다소 유사하지만, 크기가 다른 두 개의 공양구를 상하로 올려놓은 점과 상단에 나가(Naga) 장식을 배치한 것은 라오스 공양구만의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캄보디아 공양구는 미얀마와 유사하게 대나무를 이용한 칠기로 제작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목재, 은, 코끼리의 상아를 감입하여 장식 문양을 넣은 독특한 공양구들도 발견됩니다.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19세기경의 공양구는 칠 위에 색유리로 장식 문양을 넣었습니다(그림 5). 장식 패턴은 방형으로 구획을 나눈 후, 여기에 격자 무늬를 그리고, 그 안에 꽃장식 패턴을 채워 넣어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이처럼 상좌부 불교를 신앙하는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공양구에는 각 국가만의 개성과 미감이 잘 드러납니다. 공양구의 형태는 다채롭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현세에서의 공덕을 쌓기 위한 동일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 이 기고문은 아세안문화원 뉴스레터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