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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아유타야 역사도시: 전쟁의 상흔과 국가적 영웅의 탄생


아유타야는 태국의 역대 두 번째 왕조인 아유타야 왕조(1351-1767)의 고대 수도였다아유타야 왕조는 1767년 미얀마(당시 버마)의 침략으로 멸망하기 전까지 417년간 지속된 당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번영했던 왕조로서불교국가이자 크메르 왕조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적 색채가 강했다짜오프라야 강과 빠싹 강롭부리 강으로 둘러싸여 섬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그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영국과 프랑스네덜란드일본중국 등과 활발한 교역을 전개하면서유럽과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활약했다무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을 뿐 아니라한때 지금의 미얀마와 라오스캄보디아에 이르는 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종교의식과 왕실의례공연예술 등의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아유타야 왕조는 역대 타이 왕조의 최고 황금기로 불리며, 방콕 왕조의 건립 모델이 되기도 했다.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과는 달리 아유타야 역사도시를 방문하면 처참하게 파괴된 수많은 사원과 유적을 만나게 되는데이는 인접국 미얀마의 침략에 의한 것이다인도차이나반도 정중앙에 위치한 태국은 총 5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북서부 10개 주와 접하여 현재에도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이웃나라 미얀마와는 과거 수많은 전쟁을 반복했다태국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담롱(Damrong) 왕자의 저서에 의하면두 나라는 아유타야 왕조 때에만 총 22번 전쟁 치렀다고 전해진다그중 1569년과 1767년의 전쟁으로 아유타야가 함락 당한다이때의 뼈아픈 패전으로 미얀마와의 전쟁은 태국에서 패배의 역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 슬픈 역사는 한편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국가적 영웅을 탄생시켰다먼저태국의 국민적 히로인으로 칭송받는 쑤리요타이(Suriyothai) 왕비로그는 1548년 아유타야 왕조의 18번째 왕이자 남편인 짝끄라팟(Chakkraphat) 왕을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참전하여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1569년 패전으로 인해 15년간 미얀마의 속국으로 전락한 태국을 1584년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어 독립을 쟁취한 영웅도 있다그가 바로 대왕(마하랏)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태국 3대 왕 중 한 사람인 나레쑤언(Naresuan)이다아유타야 왕조의 21번째 왕인 나레쑤언은 아유타야를 재건한 것뿐만 아니라영토를 크게 확장시켜 아유타야 왕조의 황금시대를 열었다아유타야 유적지 곳곳에는 이들을 기리는 쑤리요타이 쩨디(및 나레쑤언 동상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쑤리요타이 왕비와 나레쑤언 대왕이 두 영웅의 전설이 아유타야 유적지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유네스코 세계유산 아유타야는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것과 동시에 구국의 영웅 탄생이라는 양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교수(부산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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