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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로 만든 필리핀 전통 의상 ‘바롱 타갈로그’

아세안 라이프​ 

파인애플로 만든 필리핀 전통 의상 ‘바롱 타갈로그’​ 

 

​글: 앤 킴 (프리랜서 작가, 필리핀 문화정보 사이트 ‘콘텐츠 스튜디오 필인러브’ 운영)

 

< 사진 1 >바롱 타갈로그를 착용한 필리핀 남성

 

옷을 만드는 일은 레드 스패니쉬 파인애플(Red Spanish pineapple)의 길쭉한 잎사귀를 수북하게 모으는 것부터 시작된다. 진한 초록색의 파인애플 잎으로 천을 만드는 데 필요한 준비물은 세 가지. 고난도의 섬세한 기술과 정성, 그리고 시간이다. 파인애플 잎은 억세지만, 코코넛 껍질이나 조개껍데기 등과 같이 단단한 도구를 이용하여 겉껍질을 깨끗하게 제거하면 ‘식물 올실’을 추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인피 섬유가 바로 옷감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물에 씻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흰색이 될 때까지 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보송보송해질 때까지 햇살에 말린다. 다음은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섬유의 가닥 한 올 한 올을 비벼서 서로 연결한 뒤 길게 엮어야 한다. 이 실이 엉키지 않도록 실패에 가지런히 감아두면 비로소 제작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천을 짜는 일에는 파가보(paghaboe)라고 불리는 직립형 2단 베틀이 이용되는데, 베틀에 걸터앉아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고 나면 자연적으로 반투명하고 연한 노란색을 띤 피나(piña) 천이 완성된다. 드디어 바롱 옷을 지을 준비가 끝난 것이다. 

 

   지난 2017년 필리핀 순방 중 ‘아세안 창설 50주년 기념 갈라 만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보면 연한 베이지 컬러의 옷을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장국 전통의상을 입고 참석하는 관례에 따라 필리핀 전통의상을 입고 만찬에 참석한 것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입었던 옷은 바로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와 ‘바롯 사야(Baro’t Saya)’라는 이름의 필리핀 전통의상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격식을 갖춘 자리에 입는 필리핀 민족의상으로, 보통은 줄여서 바롱(Barong)이라고 부른다. 

 

< 사진 2 >피냐(파인애플) 섬유로 제작한
연 노란빛 원단
< 사진 3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고급 바롱

 

   ‘바롱 타갈로그(Barong Tagalog)’는 머리부터 입는 형태의 남성용 풀오버 셔츠로 가슴 부근에 화려한 수공예 자수 장식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품이 넉넉한 긴소매 셔츠이며 허리 약간 아래 길이로 입는다. 속이 비치는 얇은 직물이 사용되기 때문에 속 안에 입을 흰색 셔츠를 준비해야 한다. 하의로는 허리띠가 있는 정장 바지를 입게 되는데, 바롱 밑단을 바지 안으로 넣지 않고 밖으로 내놓고 입는 것이 예의이다. 

 

   전통 방식의 바롱은 피냐(파인애플)나 아바카(마닐라삼), 혹은 바나나에서 인피 섬유를 채취하여 제직한 직물로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피냐 직물로 만든 바롱을 최고로 여긴다. 투명한 느낌이 들 정도로 얇고 가볍지만 내구성이 강하고 착용감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물을 제조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아서 소재 자체가 희귀한 데다가 가격이 매우 고가인지라 요즘은 실크나 면, 폴리에스터 등을 섞어 만든 천을 주로 사용한다. 

 

   바롱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입기 시작한 옷이지만, 미국으로부터 독립 후 라몬 막사이사이 전 대통령이 즐겨 입으면서 대중화되었다. 21년간 필리핀을 장기집권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도 바롱 셔츠를 즐겨 입었는데, 바롱 입기를 권장하기 위해 바롱 타갈로그를 민족의상으로 지정하는 포고령(Proclamation No. 1374)을 내린 바 있다.

 

 

※기고문의 내용은 월간 아세안문화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