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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여기서 머리 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행복해요 - 베트남 출신 미용사 김재희

한국 속의 아세안 

‘전에도 여기서 머리 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행복해요 - 베트남 출신 미용사 김재희 

 

김재희

 

< 사진 1 >김재희

 

 

한국에 사는 베트남 출신 김재희 씨는 13년 차 미용사입니다. 실력 좋고 성실한 재희 씨의 미용실에는 단골손님이 아주 많습니다. 낯선 땅에서 미용사가 되는 길이 처음부터 쉽고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천직이라 말할 정도로 딱 맞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미용실을 찾은 손님이 기분 좋은 얼굴로 돌아갈 때 가장 행복하다는 재희 씨를 만나보았습니다.

 

 

Q. 미용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전부터 미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도전해 볼 용기가 없었어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잠깐 한 것 외에는 살림하느라 일을 배운 경험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한국어도 잘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미용기술을 배우겠나 싶었지요. 그런데 남편이 한번 해보라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줬어요. 결정적으로, 처음부터 미용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겠지만 일단 미용실에 가면 작은 일부터 배울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렇게 2008년부터 미용실에 출근하게 되었고, 물품 정리와 청소 등 작은 일부터 배우며 미용 인생을 시작했어요.

 

Q. 재희 씨께 머리 손질을 받은 첫 손님이 누구였는지 기억하시나요?

잘 기억나죠.(웃음) 미용실에 자주 오는 여자분이셨어요. 이전까지 저는 청소를 하거나 원장님이 커트하시는 걸 옆에서 보기만 했는데, 그 손님께서 제게 머리 손질을 받아보고 싶다고 하신 거예요. “무엇이든 직접 경험을 해야지 가만히 서서 보기만 하면 배울 수가 없어요”라며 기회를 주셨어요. 정말 엄청 떨렸어요. 잘하고 있는 건지, 이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든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커트와 샴푸를 해드렸어요. 미용을 마친 후 손님께서 “마음에 쏙 들어요. 고맙습니다”라고 칭찬해주셔서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Q.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 계신 친정엄마’를 언급하셨는데, 실례되지 않는다면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주여성과 한국 여성이 딸과 친정어머니로 결연을 맺을 수 있도록 시에서 주관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국 친정엄마(이하 ‘엄마’)’를 처음 만났습니다. 엄마는 처음 만난 그 날 이후부터 언제나 저를 친가족처럼 따뜻하게 돌봐주세요. 미용을 처음 시작한 무렵에는 엄마에게 전화해서 “엄마, 나 너무 힘들어. 미용 그만둘래.” 하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어떤 일을 해도 익숙해지기까지는 힘이 들어. 일단 한번 참고 해봐. 넌 솜씨가 좋으니까 금방 잘하게 될 거야!” 하고 격려해 주시곤 했죠. 사실 처음 미용 공부를 시작하려고 할 때, 미용실을 소개해주신 분도 엄마였어요. 제가 처음 다닌 미용실 원장님과 엄마가 친구 사이셨거든요.

 

Q. 커트, 파마, 염색, 매직 등 다양한 미용기술 중 재희 씨가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은 무엇인가요?

다른 건 몰라도 염색에는 정말 자신 있어요.(웃음) 멋 내기 염색, 뿌리 염색, 흰머리 염색··· 다 완벽히 해요.

 

Q. 한국과 다른 베트남만의 특별한 미용 문화가 있나요?

양국이 거의 비슷한데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어요. 한국은 미용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베트남에서는 자격증이 없어도 실력만 있으면 미용실을 차릴 수 있어요. 아! 그리고 한국에서는 보통 ‘미용’이라고 하면 각 분야로 영역을 나눠요. 헤어숍이면 머리 손질만 하고, 네일숍이면 네일만 하는 곳이 많은데, 베트남에서는 하나의 숍에서 ‘미용’이라고 불릴만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답니다. 하나의 공간에서 머리도 다듬고 네일도 하고 마사지도 운영하는 미용 멀티숍인 셈이죠.

 

Q. 베테랑 미용사인 재희 씨가 생각하기에, 좋은 미용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일단 끈기가 있어야 해요. 어려운 기술을 익혀야 하고, 사람을 상대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직업이거든요. 누구나 초보 시절에는 기대한 만큼 손이 안 따라줘요. 저도 미용기술을 처음 배울 때는 하루에 한 번씩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머릿속으로는 이미 멋진 미용사인데 막상 가위를 들면 생각처럼 안 되니까 스트레스가 엄청났죠.(웃음) 그런 배움의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쓴소리를 들어야 하고 자신에게 실망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꺾이지 않고 버티면 다음 단계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엔 좋은 미용사가 되려면 끈기와 참을성부터 길러야 할 것 같아요.

 

< 사진 2 >미용실에서 일하는 모습

Q. 재희 씨의 미용실에는 오랜 단골손님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비결이 있을까요?​

저는 정해진 운영시간을 지킵니다. 운영시간은 손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쉬고 싶은 날 쉬고, 일찍 들어가고 싶다고 미용실 문을 일찍 닫지 않아요. 그리고 미용할 때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요. 빨리빨리 끝내고 손님을 더 받으면 당장 매출은 올라갈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 손님도 저도 만족할 수 없거든요. 욕심을 비우고 지금 제게 서비스를 맡긴 손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아요. 어떤 장소에서 좋은 경험을 하면, 언젠간 그곳을 다시 찾게 되잖아요? 제 미용실에서 좋은 기억을 안고 돌아가셨던 손님들이 “전에도 여기서 머리 했어요. 이번에도 예쁘게 해주세요” 하고 다시 찾아오실 때면 뿌듯해진답니다.

 

Q. 미용사로 일하며 경험한 잊지 못할 추억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에피소드보다는, 사람이 기억납니다. 매번 찾아와서 좋은 말을 해주던 이모가 계셨어요. (아! 친한 분이라 이모라고 불렀어요.) 다른 곳에서 일하는 분이셨는데, 매번 미용실에 오셔서 일을 도와주시고 “재희 너는 이모가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죠. 한국 생활에 관해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시기도 했고, 제가 새 미용실을 인수해서 직접 운영을 시작했을 때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응원하러 오셨어요. 저는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들만 만난 것 같아요. 한국말로 ‘인복이 좋다’고 할까요?

 

Q. 만약 한국에서 미용사가 되지 않았다면 도전하고 싶었던 다른 직업이 있나요?

아가씨였을 때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원래 낯가림이 심해서 처음 보는 사람을 상대하고 대화하는 걸 힘들어했거든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 되면 늘 보던 사람만 보고, 본인 일만 잘하면 된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성격이 좀 바뀌었어요. 미용사가 되어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자연스레 배웠나 봐요. 지금은 미용사가 천직이 됐죠.(웃음)

 

Q. 머리 손질을 스스로 하시나요? 아니면 재희 씨도 본인 머리를 손질할 땐 다른 미용실을 이용하나요?

드라이 정도는 스스로 하지만 커트랑 염색은 혼자 하기 힘들어서 친한 언니를 부릅니다. 전에 미용실에서 같이 일한 언니인데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어요. “언니, 저 머리 좀 해주세요.” 하면 금방 오셔서 손질해주십니다.

 

Q. 가족들도 재희 씨 미용실에 자주 방문하나요?

물론이죠. 가족들 머리 손질이 제 담당이거든요. 남편과 아들들도 자주 오는 편이고 시어머니께서도 종종 들르세요. 제가 처음 미용사 자격증을 땄을 때 제일 기뻐하신 분이 우리 시어머니세요. 자격증을 딴 날, 온 가족을 다 불러서 저녁을 사주시기도 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작은아들이 어렸을 때 “엄마가 미용실 차리면 나는 청소하고, 형아는 엄마 머리 하는 거 도와주고, 아빠는 카운터 일 하면 되겠다”고 말할 정도로 여기 오는 걸 좋아했어요. 온 가족이 다 같이 미용실에서 일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요. 그런데 막상 미용실을 차리니까 청소를 도와주러 오지는 않더라고요.(웃음) 이제는 본인도 컸다고 이것저것 할 게 많다는 거겠죠.

 

Q.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베트남과 한국은 2시간 정도 시차가 나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베트남에서는 아침에 시장에 가서 간단히 한 끼 먹은 후 점심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한국 사람들은 대개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아침 7시면 베트남에서는 5시인 셈이니까 처음에는 시차에 적응하느라 애썼죠.

 

Q. 재희 씨 외에도 한국이나 타국에서 생활하는 베트남 사람들, 또 아세안인들이 많습니다. 끝으로 이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의 음식, 날씨, 언어, 생활은 전부 여러분의 모국과 다르고, 그래서 문화도 달라요. 여기서 살겠다고 결심하고 한국에 오셨다면 한국 문화를 배우고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는 안 그러는데 여기는 왜 이러지?’ 하면서 투덜거리기보다, 차이를 인정하고 천천히 알아가야 합니다. 다른 문화를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기도 하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배움이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을 위한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