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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향수를 한잔에, 베트남은 뉴트로 카페 열풍

아세안 트렌드​ 

추억과 향수를 한잔에, 베트남은 뉴트로 카페 열풍 

 

글 : 정리나 

(아시아투데이 베트남 특파원, 하노이 국가대 역사학 박사과정)

 

< 사진 1 >‘배급시대’를 콘셉트로 한 카페

 

1986년 ‘도이 머이(쇄신)’라는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이후 오늘날 우리에게 동남아시아의 신흥국으로 인식되는 베트남. 그러나 해 뜨기 전 어두운 새벽과 같은 ‘배급시대’는 아직까지도 베트남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꽁카페가 이 시대를 콘셉트로 했다. 요즘 베트남 하노이에는 이런 카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바야흐로 카페의 ‘배급시대’가 찾아온 셈이다. 

 

   베트남의 배급시대는 계획 경제하에 대부분의 경제 활동이 국가에 의해 보조되던 기간을 말한다. 통상 1975년 통일 이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오늘날의 베트남)이 수립된 1976년부터 도이 머이 시행 전인 1986년 말까지를 일컫는다. 국가가 쌀·고기·우유·설탕·느억맘(베트남의 젓갈)부터 옷감으로 쓸 천까지, 물자와 맞바꿀 수 있는 배급표를 나눠주면 배급소에서 물건과 바꿔 생활하곤 했다. 

 

   그러나 전후 서방세계와 고립된 베트남이 배급경제를 감당하기엔 물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배급 날이면 배급소마다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물자도 부족하거니와 상품의 질도 좋지 않았다. 노랗게 변한 우유는 유통기한이 지나있기 일쑤라 다시 끓여 마셔야 했고, 돼지고기가 다 떨어지면 집에서 돼지를 키울 수 있도록 쌀겨를 대신 나눠줬다. 돼지가 없어 1년 내내 돼지고기 배급표를 사용하지 못한 집도 있었다. 최대한 많은 물건을 받기 위해 벽돌로 자리를 맡아 놓고 다른 배급소에서 물건을 받아 오는 수법인 ‘벽돌 쌓기’도 등장했다.

 

< 사진 2 >배급시대 당시의 배급창구 모습
출처: 베트남통신사(TTXVN) 자료사진

 

    배급시대는 모든 것이 부족한 시대였다. 배급표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 조금씩 다른 궁리를 모색한 데서 사경제 부문이 싹트기 시작했고 그렇게 도이 머이로 이어졌다. 이 변동을 일컬어 베트남에선 ‘cái khó ló cái khôn(어려움은 지혜로움을 드러낸다)’이라고 표현한다. 

 

   배급표를 손에 든 인파로 북적이던 배급창구는 이제 음료를 주문하거나 계산하는 카페 계산대의 모습으로 재현됐다. 우리네 목욕탕 의자처럼 낮고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는, 컵을 올려놓을 별도의 탁자마저 사치였던 시대엔 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싸늘한 회벽, 누렇게 빛이 바랬지만 표지의 ‘맑스-레닌’ 활자만큼은 또렷한 선전책자, 직원들의 소박하고 단촐한 국방색 유니폼, 이가 빠진 유리잔 혹은 덜그럭거리는 철제 컵, 선반 위 어디서도 찾기 힘들만큼 오래된 재봉틀과 타자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들은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가 가득한 오늘날 베트남의 시계를 40년도 넘게 되돌려 놓는다. 

 

   하노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는 배급시대 풍의 카페는 중장년층과 젊은층을 모두 사로잡았다. 중장년층에게는 힘들었지만 그만큼 소중한 추억의 시절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젊은이들에게는 부모세대가 지나왔던- 그러나 자신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베트남의 ‘새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30~50대가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복고에 빠져드는 레트로(Re-tro)와 10~20대가 과거의 향수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뉴트로(New-tro)가 모두 어우러진 것이다. 학교와 거리 곳곳 호찌민 주석의 사진을 걸어놓고 빨간 현수막과 노란 글씨로 그 유지를 새기면서도, 그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빠르게 고층 건물이 올라가며 시장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 그 자체처럼.

 

 

※기고문의 내용은 월간 아세안문화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